제자리를 찾는 선교

제자리를 찾는 선교

[ 땅끝편지 ] 카자흐스탄 방승수 선교사 ③

방승수 선교사
2024년 07월 16일(화) 01:44
나제즈다교회를 교인들이 스스로 건축하는 모습.
좌충우돌하는 사이 2006년 10월 사역하던 신학교가 폐교를 당했다. 계속되는 테러로 인해 외국인이 운영하는 정부인가 신학교를 강제로 폐교시킨 일이 발생했다. 당시 쉼켄트 지역에 두 신학교(장로교, 순복음)가 있었는데 동시에 폐교 통보를 받았다. 두 번의 재판에서 승소했으나 검사가 판사를 바꾸는 기이한 일까지 벌이면서 결국엔 폐교시켰다.

그동안 양육한 제자 4명에게 목사안수를 주고(2007년 3월) 새로운 나제즈다(소망)교회를 개척했다. 2004년 개척 방식과는 다르게 교인들 스스로 세워가도록 했다. 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있었지만 하나하나 대가를 치르면서 스스로 헤쳐 나갔다. 조금씩 성장해 예배실 공간이 협소해졌고 건축 역시 스스로 하도록 하였다. 카자흐스탄은 이슬람 국가는 아니지만 국민의 72%가 무슬림이기에 이슬람을 제외한 타종교 특히 기독교회가 건축 허가를 받기란 결코 녹록지 않다.

결국 건축 허가를 받아 완공까지 4년 2개월이나 걸렸다. 교인들이 헌금해 스스로 건축을 시작했다. 막히면 기도하고 열리면 다시 건축하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믿음도 함께 쌓아갔다. 어떤 이는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헌금했고 자동차를 팔아 헌금하기도 했다. 교인들이 한마음 한뜻 되어 자신들의 예배당을 건축했다. 노동이 필요할 땐 모든 성도들이 몸으로 나섰다. 결국 성공적으로 교회 건축을 마쳤고 이후 아동부실과 휴게실도 스스로 건축했다. 지금 그 교회는 아름답게 잘 성장하여 자립단계에 들어섰다.

나제즈다교회의 현재 모습.
비자 문제로 더 이상 쉼켄트에 거주할 수가 없게 됐다. 가족과 헤어져 홀로 720km 떨어진 알마티로 가게 됐다. 1년 3개월을 홀로 생활하면서 차기 사역을 위해 기도했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다. 쉼켄트에서 시도했던 교육센터에 대한 마음만 가득했다. 1년 이상의 사역 중단으로 생활비가 절반으로 줄면서($900-당시 총회 규정 $1800) 생활고까지 겪었다. 거기다가 쉼켄트에서 요로결석으로 연 4~5차례 응급차에 실려가 입원하고 시술받기까지 온통 문제뿐이었다.

비자문제, 사역문제, 생활비문제, 건강문제 등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하나님! 너무 힘듭니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자를 최악의 상태로 몰고 가셨다. 선교사를 내려놓고 철수하고픈 마음까지 들었다. 도대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었다. 기도에는 침묵하셨고 철저하게 필자를 외면하셨다. 모든 것이 끝나는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실낱 같은 희망의 소식이 있었다. 당시 카자흐스탄 정부는 영주권(장기비자)을 누구에게나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몇몇 선교사들은 영주권을 거절 당해 철수하기도 했다. '하나님! 저에게 영주권을 허락하시면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 하지만 만일 영주권이 거절당하면 떠나라는 뜻으로 알고 미련 없이 선교사 포기하고 철수하겠습니다.' 결단하고 영주권을 신청했다. 보통 3개월이면 영주권이 나오는데 3개월이 지났는데도 연락이 없었다. '아! 이제 카자흐스탄을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로구나!'라고 생각하고 포기했을 때 6개월이 지나 영주권이 나왔다. 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만 이렇게 인내심을 요구하실까. 하나님께서는 아직 이 땅에서 필자를 통해 하실 일이 있으시구나!

방승수 선교사 / 카자흐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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