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끝편지 ] 멕시코 최남영 선교사편(7)
최남영 선교사
2024년 03월 05일(화)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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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로 바뀌었고, 2005년 100주년 기념 행사에 대한 관심이 각계각층에서 커져갔다. 이 행사 준비의 숨은 공로자가 더 있다. LA에 거주하던 이자경 작가(한국인 멕시코 이민사, 1998)다. 이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유카탄 조 선교사의 도움과 직접 발로 뛰며 후예가족들을 취재해서 완성한 분이다. 100주년 행사 준비를 앞두고 티후아나 선교센터에서 우리 가족과 함께 6개월을 함께 거주하며, 한인후예 자료기록들을 추가로 준비해서 보완하고 정리했다.
행사를 위해 대한민국 정부와 동포재단의 깊은 관심과 한국 대사관이 앞장서서 적극 홍보에 나섰다. 신문, 방송기자들이 몰려오고, 특히 MBC의 3부작 특집 '에네껜' 시리즈가 방송되면서 관심도가 최고조로 올랐다. 대한민국과 멕시코 양국 정부는 문화교류 차원으로 4개 도시(메리다, 멕시코시티, 과달라하라, 티후아나)에서 치뤄질 거창한 행사 진행 계획을 발표했다. 문화공연과 자료전시, 국제교류 심포지엄까지 다양한 행사 계획이다. 그와는 별개로, 100년전 이 땅에 흩어진 한인 후예들의 삶과 애환들이 조명되면서, 신문 방송사와 주최측에서는 역사적인 조사 자료, 전시를 위한 사진들을 요청해왔다. 두 분 선교사들이 각각 현장에서 오랫동안 직접 준비해서 보관해 온, 보물 같은 상당수의 자료들이 빛을 발하게 된 순간이다. 그런데,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는 말이 있던가? 공은 행사 주관자들의 몫이고, 선교사들의 숨은 공로와 수고, 노력은 과연 누가 알아주었을까? 이 지면을 통해서라도 밝힌다.
2005년 멕시코 한인이민100주년 기념행사는 성대했다. 멕시코 선교사로서 이 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첫번째 기념식이 열린 유카탄 메리다를 처음으로 직접 방문했다. 1905년 제물포항을 출발한 1033명이 긴 항해 끝에 첫 발을 딛고, 여러 농장으로 흩어진 도시다. 멕시코 지역 분위기와 사뭇 다른 모습에 놀랐다. 멕시코의 맨 남쪽 유카탄 반도는 고대 마야 문명의 발상지이자 중심지였다. 근처 팔랭케 마야 유적지는 마야 문명의 핵심인데, 유카탄에서 벨리스, 과테말라, 온두라스까지 광대한 도시형태를 만들었고, 이 당시 얼마나 크게 번성했는 지를 충분히 실감케 한다. 이런 다양한 마야 유적지와 커다란 피라미드가 유명 관광지 칸쿤 해변까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지금도 마야인 후예들은 마야어를 쓰고, 자신들의 문화를 유지해가려는 노력이 멕시코 본토와 달라 보이는 이유다. 참 신기한 것은 조선의 노동자들이 흩어진 농장 일터가 바로 이곳 유카탄 반도, 마야인 후손 땅과 일치하는 점이다. 마야인의 뿌리가 한국인이라는 좀 억지주장도 없지 않거니와, 마야인의 생김새가 서양인과 어울리지 않게 작달막한 동양인 모습이다. 100년전 한국인의 얼굴 모습을 생각해보라. 흡사하지 않은가. 그런 인연 때문이었을까. 당시 결혼 상대가 많지 않은 한인 이민자 중 마야인 처녀 총각을 만나 짝을 이룬 가정도 적지 않다. 100년 후 이들은 과연 어떻게 달라졌을까?
최남영 선교사
총회 파송 멕시코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