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끝편지 ] 멕시코 최남영 선교사 편(6)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24년 03월 07일(목)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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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촌'이라 하지만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 쪽의 본심은 언제나 불편하다. 우리의 반일감정까지는 아니더라도 국가 간 오랜 감정은 좋지 않다. 어느 정치 지도자도 미국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특히 트럼프 재임 때 반미 감정이 최악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 텍사스까지 8번 프리웨이를 지나가본 사람은 안다. 지명의 90%가 멕시코 말(스페인어)이다. 길 이름 뿐인가? 도시 안의 지명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애리조나 주 국경도시 노갈레스는 도심 중심을 가로지른 국경장벽 양쪽 다 '노갈레스'로 부른다. 억지로 선을 그엇지만, 사람살이까지 갈라 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생긴 '치카노'라는 말도 있다. 미국에 동화되지 않고 특정 정체성을 공유하는 멕시코계 미국 이민자 공동체다. 땅을 되찾을 수는 없지만, 자신들의 문화, 예술을 지키려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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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국경은 더 민감한 일들로 삼엄했다. 중미 카라반(과테말라, 온두라스인들로 구성)의 수 천명 무리가 무작정 국경행으로 사회적 큰 이슈가 됐다. 그들은 멕시코 남쪽 과테말라와의 국경을 무력(군인들이 처음에는 막는 듯하다가 소극적 자세로 방관했다)으로 통과하고, 걸어서 미국 국경까지 오는 것이 목적이었다. 4300㎞의 엄청난 거리를 도보로 올 수 있는가? 매스컴 보도의 우려와 비웃음에 아랑곳 없이 대규모 행렬이 움직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1주일 만에 티후아나 국경까지 당도했다. 비영리 이민단체에서 주선한 대형 트레일러가 동원된 것이다. 갑자기 티후아나 도시가 술렁거렸다. 수 천 명의 인파가 국경 쪽 도로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니까 너무 당황스러웠다. 비상이 제일 크게 걸린 곳은 미국 국경문 검문소였다. 갑자기 무장한 국경수비대 요원들이 증파되고, 돌파 저지를 위한 여러 가지 장애물들이 쌓였다.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군중 인파를 향해 최루탄 가스 연기가 난무하고, 전 세계로 타전하는 기자와 카메라맨들까지 그 모습은 아수라장이었다. 수 천 명의 인파라고 하지만 오합지졸 각개전투일 뿐이다. 몇 번의 돌파시도를 감행 했지만, 잘 훈련된 국경수비대를 뚫고 나갈 수는 없었다. 직접 몸으로 몇 번씩 부딪혀 보고 나서야 국경 장벽이 얼마나 철옹성처럼 단단하고 강경한지를 깨달았다. 서로의 대치 소강 상태로 전환되면서 티후아나 시정부는 이들이 머물 장소가 시급했다. 대형 운동장에 수 천 개의 텐트가 급히 세워지고, 먹고 마시고 배설할 화장실까지 필요했다.
직접 목격한 저 길거리 카라반 난민을 선교사로서 외면할 수 없었다. 법을 무시하고 도발한 자와 협력할 수 없다는 처음 생각과 달리, 우리 교회도 발벗고 나섰다. 준비한 의류, 식료품, 물과 음료를 싣고 운동장 옆에 마련된 지원센터를 찾아갔다. 그 안에 어마어마한 구호품들이 쌓인 것을 보고 놀랐다. 이 많은 구호품이 어떻게 지원된 거냐고 물었다. 국경 건너 샌디에고 교회와 단체가 돕고, 티후아나 교회들이 주로 돕고 있단다. 아이러니칼 하지 않는가? 미국 국경수비대는 결사적으로 막아내고, 미국 교회는 온정을 베풀다니….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고 물으시던 주님의 질문에 교회가 먼저 가서 자비를 베푼 셈이다. 아직 교회가 희망적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