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끝편지 ] 4. 멕시코 최남영 선교사편
최남영 선교사
2024년 02월 22일(목)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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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선교를 명 받고 시작된 선배 선교사와의 사역은 내 숟가락 하나 더 올려놓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만큼 선배선교사의 기존 사역은 탄탄했고, 해오시던 일이 많았다. 이미 현지인 교회를 4개씩이나 개척하셨고, 늘 순회하며 돌보아야 하는 일과 여러 사역이 진행 중이셨기 때문이다. 혼자 벅차하시는 일을 함께 동참했고, 가시는 곳마다 어디든 열심히 동행하는 것 만으로 배움이 컸다. 세대가 다른 이유로 컴퓨터 교실, 인터넷 활용은 내가 맡아 진행했고, 그때까지 늘 손으로 작업해오던 편지 메일이나 문서작업을 컴퓨터로 대체했다. 당시 선배 선교사가 PCK 선교사 회장직을 맡고 계셨기 때문에 회장단 회의나 문서를 주고 받을 때 이메일을 사용해야 신속하고 편리했다. 그분이 컴퓨터에 익숙치 못하셔서 내 메일로 대신 담당했는데 협력 중에 제일 잘한 사역이라 자부한다.
8년간을 한솥밥 공동체로 지내면서 공동식사, 공동사역에 익숙해졌다. 일곱 식솔을 거느리며 한 공간에서 더불어 사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매일 아침과 오후로 아이들 학교 픽업하는 일이 큰 일이었다. 눈치 볼 일도 많고, 미안해 할 일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배려해 주시던 선배 선교사가 늘 고마웠다. 서로의 마음이 항상 같을 수는 없지만 후배 사랑은 각별했다. 지금은 은퇴하시고 먼 타도시에서 은퇴 후 일을 하고 계시지만 연말이면 꼭 찾아 오셔서 함께 식사를 하곤 한다.
깊은 산 속에 옹달샘이 흐르면 사람이 찾아온다고 한다. 초기만 해도 지역 선교사가 많지 않아 변방 끝 산동네일지라도 우리 선교지를 찾아오는 손님이 적지 않았다. 여름방학 중 단기선교팀으로, 토요1일 단기봉사팀으로, 혹은 지인들, 동료선교사들, 같은 도시에 거주하는 한인교민들까지도.. 선교센터는 모든 만남의 중심이 되었다. 그때마다 기다란 공동식탁은 언제나 잔치자리가 되었다.
어느날, 한인 교민들 몇 분이 현지인 예배를 참석했다. 오랫동안 한국말 대화 자리도 없이 외롭게 살다가 대가족 한국선교사 가정이 새로 왔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어른은 어른대로, 애들은 애들끼리, 만나면 반가웠고, 찾아오면 얘기는 멈추지 않았다. 만남이 반복되면서 선교사 본심이 발동했다. 지금까지 이 도시에 한인교회가 없어서 현지인 예배를 참석하긴 했지만 예배보다는 사람 만남이 언제나 우선이었다. 은근히 성경공부를 권유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드디어 첫 한인교회 예배가 시작됐다. 이후 전도의 놀라운 계기가 된 것은 물론이다.
멕시코의 변방 국경도시의 또 다른 특징은 정착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새로 오는 사람들 중에는 머물기 보다 잠시 왔다가 기회가 되면 떠나는 이가 많다. 국경 너머는 샌디에이고, LA라는 거대도시가 있지 않은가. 심지어 티후아나 도시에 있는 한국 기업체 직원들, 가족들도 대부분 국경 너머에 자리잡고, 출퇴근하기 때문에 우리 한인교회와는 무관하다. 오랫동안 도시 안에 한인 커뮤니티가 형성되지 못하고, 한인교회가 일꾼을 세우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산업화의 시대적 요구는 티후아나시를 거대도시로 성장케 했고, 더 이상 변방이 아닌 중심으로 변했다. 많은 일자리 덕분에 도시 유입인구가 급성장하며, 현대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됐다. 국경 변방은 또 다른 기회의 땅이 되었고, 선교의 최고 황금어장이 되었다. 저 갈릴리 변방 무리들이 하나님 역사 중심으로 우뚝 세워진 것처럼.
최남영 선교사
총회 파송 멕시코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