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아줌마(티후아나)' 같은 인자함으로

'후안 아줌마(티후아나)' 같은 인자함으로

[ 땅끝편지 ] 멕시코 최남영 선교사편(3)

최남영 목사
2024년 01월 30일(화) 00:45
멕시코 국경에서 함께 한 최남영 이은정 선교사.
멕시코시티 대성당.
멕시코 말로 '쏘깔로'는 배꼽이라는 뜻이다. '중심'이라는 뜻도 갖는다. 멕시코시티 중앙광장을 '쏘깔로'라 부른다. 그 광장 안에 동서남북 방향과 거리 표시판이 있고, 남쪽 끝 타파출라 1148Km, 동쪽 끝 칸쿤 1607km, 북쪽 끝 티후아나 2775km로 기록돼 있다. 중심에서 볼 때, 티후아나는 가장 먼 변방 국경도시이다.

변방의 의미를 단지 주변부로 이해하는 것은 다분히 사람들의 자기중심적인 관점일 수 있다. 우리가 봐 온 세계지도는 한국과 아시아가 중심이고, 아메리카 대륙은 저 멀리 변방에 있다. 멕시코 지도는 당연히 이곳이 중심이고, 한국은 동방 끝 신비의 나라일 뿐이다. 살다보면 자기중심이 변한다. 내 자리가 우주의 중심이 된다. 긍정적 착각이지만 사실이다. 한없이 멀게 만 생각하는 멕시코, 아프리카 끝, 저 아르헨티나 끝, 아마존 정글에 가서 살면서도 내 자리가 되는 이유다.

중심부를 떠날 때 내 마음도 편치 못했다. 가까운 주변도 아니고 너무 먼 변방이잖은가. 회색 빛 흙먼지로 뒤덮은 도시의 첫 인상도 썩 내키지 않았다. 공항에서 우리를 픽업하신 선배 선교사의 차는 도심을 지나 골짜기 계곡 길을 따라 제일 높은 산동네로 계속 오른다. 비포장 흙먼지 길을 터덜대며 맨 꼭대기 동네에 이르렀을 때 교회와 선교센터가 있었다. 시무룩해 하는 자녀들 표정을 살피며 우리가 여기서 버텨낼 수 있을까 잠시 절망적인 심정에 빠졌다. 떠나기 전, 티후아나로 이사한다고 하니까 현지인 이웃이 한사코 말린다. 마약 많고, 도둑 많고, 지저분하고, 위험하고…. 안전하지도 않은 곳에 왜 가느냐는 거다. 변방 국경도시의 특성이다. 실제로 와서 본 국경 담장은 군 복무시절 DMZ 3.8선처럼 엄중하고 삼엄했다. 떠나는 우리를 근심스런 얼굴로 배웅하던 이웃의 말이 잠시 스쳐갔지만 선교사의 지상명령이다. 사명이라면 아골 골짝 빈 들이든, 저 변방 끝인들 왜 못가랴.

하룻밤을 지나고 맞이한 티후아나의 아침하늘은 너무 달랐다. 맑고 푸른 하늘과 강렬한 햇빛이 온몸을 감싸며 눈부시게 화창한 날이다. '아 이게 캘리포니아가 제일 자랑으로 여기는 날씨 기후로구나.' 지도상 태평양 연안을 끼고, 캘리포니아는 LA에서 샌디에고로 내려오면서 멕시코 국경을 만난다. 태평양의 긴 해안선은 국경을 가로질러 티후아나를 만나고, 거기부터 바하 칼리포니아(멕시코의 주)가 된다. 날씨와 기후, 태평양 바다는 높다란 국경 담장과 상관없이 공평한 세상이다. 선교센터가 가장 높은 산동네인 덕분에 시야가 멀리까지 닿았다. 울창한 나무 숲과 푸르른 공원은 안보이지만, 태평양 바다가 보였다. 더 멀리 국경 담장 너머로 샌디에이고시까지 내려다 보였다. 변방이라는 마음의 부담이 녹아 내렸다. 어느새 아이들의 동심은 널찍한 선교센터 마당에서 즐겁게 뛰어 놀고 있었다.

한국의 예능방송 인기 프로그램 '선을 넘는 녀석들' 제작팀이 첫 방송을 티후아나에서 진행했다. 삼면이 바다이고, 북쪽이 가로막힌 한국 땅에서 국경선을 직접 건너는 일이 없으니, 선을 넘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다. 제작진은 이런 사실을 간파했고, 몇몇 예능인들이 긴장한 채 아슬 아슬 국경 넘기를 호기심으로 바라 보았다. 샌디에고시와 티후아나시를 통과하는 국경 문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트레픽이 심하다는 이 국경문은 들어오고 나가는 차들로 언제나 긴 행렬을 이룬다. 몇 년 전, 트럼프대통령 시절 멕시코 경계선 3000km전체를 콘크리트 담장화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시범 사례로 9m 높이의 모형 강화 콘크리트 장벽을 티후아나 국경 건너편에 선보였다. 직접 방문 시찰까지 했지만 수 억 달러 의회예산에 가로막혔다. 이에 멕시코 정부에게 떠넘기겠다고 큰소리로 공언했지만 이쪽에서는 코웃음만 쳤다.

1900년대 초 이곳은 변방의 허술한 국경 마을이었다. 본래 티후아나(Tijuana)의 이름은 티아(Tia) 후안나(Juana)였다. 후안나 아줌마라는 뜻이다. 먼 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이 길을 지나 미국으로 올라가고, 멕시코로 내려왔다. 그 당시 작은 마을 길가에 티아 후안나 아줌마의 '란초(주막)'가 있었다. 오가는 나그네들, 지친 여행객들이 잠시 머물러 쉬어 가던 곳이다. 세월이 지나 도시가 커지고, 도시명을 정할 때 사람들은 그때 주막의 인상 좋고, 친절한 후안나 아줌마 이름을 기억했다. 티아(Tia) 후안나(Juana)의 이름을 따서 티후아나(Tijuana)가 됐고, 그렇게 만들어진 유래가 흥미로웠다. 어느날 역사 박물관에서 후안 아줌마의 후덕한 외모를 보았고, 나그네를 대접하던 친절한 얼굴 모습이 참 인자해 보였다. 그녀의 평범한 삶이 잔잔한 영향력이 되고, 훗날 도시 이름이 된 미담이다. 아름다운 스토리에 감동되어 후안나 아줌마의 친절한 티후아나 정신을 닮고 싶었다. 오늘도 변방 도시 티후아나 땅에서 오가는 나그네를 돕고, 친절한 이웃이 되어 살아가는 선교사가 되고 싶었다.



최남영 목사 / 총회 파송 멕시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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