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무리를 꿈꾸며

아름다운 마무리를 꿈꾸며

[ 땅끝편지 ] 말라위 강지헌 선교사<완>

강지헌 선교사
2024년 01월 05일(금) 13:26
은혜 아동지원센터.
여학생 재봉교육.
지난 두 세 달 동안 십 회에 걸쳐 써왔던 '땅끝편지' 연재는 나에게 지난 날들을 돌이켜 보고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었다. 선교사역이라 하는 것이 자칫하면 나 자신에게 시선을 고정하기 쉬운 것인데 이 글들을 쓰면서 선교는 내가 주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는 것임을 다시 한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계획했거나, 하지 않았거나 하나님의 선교는 여전히 그의 나라를 통하여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는 것이기에 나는 그 길을 가고 있다. 교단에서 정한 공식 은퇴까지 7년이 남아 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시간이리라. 이 시간동안 하나님께서 어떤 길로 나를 인도 하실지 참으로 궁금하다. 다만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기 위한 열린 마음을 준비할 뿐이다.

선교사의 사역을 잘 마무리하기(finishing well) 하기 위한 준비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존경하는 목사님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사실 그 분의 가르침은 선교사로 지내온 지난 시간 내내 나의 선교 철학 또는 지침이 되었다.

"선교사가 사역지를 떠나게 되었을 때 자신의 사역이 꼭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분의 가르침은 내가 하는 사역이 결코 성령의 하시는 일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 선교사들이 열심이 지나쳐서, 혹은 청지기의 사명이라는 미명 아래 흔히 범할 수 있는 잘못은 성령보다 앞서려는 것이나 성령이 일해야 할 부분까지 내가 전부 다 하려 하는 것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세상을 구하고 영웅이 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요즘 읽고 있는 책이 'The World Is Not Ours to Save'라는 제목이다. 굳이 번역을 하자면 '세상은 우리가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도 되겠다. 우리가 항상 배워 온 것과는 참 거리가 있어 보인다. 아니, 크리스찬이 세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러면 우리의 존재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인데?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세상은 당신들이 구하거나 저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들은 그 세상의 주인을 섬기기만 하면 됩니다(Loc 133, Kindle)." 그러면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우리가 우리들의 이야기의 영웅이 되기를 하나님이 요구하신다고 착각할 때, 우리는 우리의 부르심에 대해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계속 주장한다. 이 글은 선교사로서 꽤 오랜 기간 사역을 해 온 나의 심장을 깊숙하게 찔렀다. 가까운 예로 후원교회나 그룹을 대상으로 선교보고를 할 때 나를 중심에 두고 내가 영웅처럼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만들고 통치하는 나의 왕국을 알리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어쩌면 나를 둘러 싼 시스템이 그렇게 하기를 요구하는 것 아닐까 라는 핑계도 대 본다. 하지만 모든 문제는 내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한 것이리라.

아동 급식.
위 책의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보다는 우리가 그의 자리에 앉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이 세상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애써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세상의 주인만 잘 섬기면 될텐데… 우리는 세상 사람을 기쁘게 하는데 너무 많은 힘을 쏟는 것은 아닐까?

요즘 들어 왠 일인지 'Bridging the Gap(다리 잇기)'이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예전에 선교학 공부를 하며 읽은 책의 제목이 그것이었는데. 심지어는 말라위 보건 당국자의 연설에서도 인용되는 것을 며칠 전에 보았다. 선교사의 역할이 다양할텐데 그 중의 하나가 다리의 역할이라 힘주어 말할 때가 있었다. 물론 그 생각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를 연결해는 다리,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나님의 나라를 연결하는 다리.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그 순간을 위해 우리는 두 세상을 이어 주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 믿고 있다. 그 두 세상이 하나가 되어 연결이 되면 다리의 기능은 그 수명을 다한 것이리라. 그 때가 오면 그 다리는 철거되고 폐기되어야 하는 운명이다. 그 폐기되는 운명을 영광되게 생각하며, 그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또 그 때가 속히 오기를 위해 일하는 것이 선교사로서의 사명이리라.

환갑도 지나고, 말라위에서의 사역을 해 나가며 나는 앞으로 어떻게 잘 마무리할까 자주 생각한다. 새로이 시작된 수련병원이 말라위에서의 사역의 마지막 챕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나보다 훨씬 더 하나님과 동료 인류를 잘 섬기며 사랑하는 후임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지만 그 이후의 일은 그야말로 성령께 맡겨 드리고자 한다. 내가 만들려고 했던 다리도 없어지면 어떠하리. 왜냐하면 세상은 내가 구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니까. 난 다만 그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만 잘 섬기고 갈 거니까. 내 이름은 잊혀져야 할 것이다. 다만 하나님만 잘 섬기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되면 좋겠다. 욕심일까?

지금까지 함께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모든 영광을 그분께 올려드린다.



강지헌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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