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현장에서 배우고 겸손해야

선교사, 현장에서 배우고 겸손해야

[ 땅끝편지 ] 말라위 강지헌 선교사<8>

강지헌 선교사
2023년 12월 22일(금) 09:17
몽골치과팀 진료
태어나고 성장하며 모든 것이 익숙한 한국을 떠나 낯선 곳에서 선교사의 입장에 선지 벌써 27년이 훌쩍 넘어섰다. 지난 날들을 돌이켜 보면 현지인들에게 내가 얼마나 이상하게 보이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하니 낯이 뜨거워진다. 교단 선교사 훈련을 받으며 들은 선배 선교사의 가르침이 기억난다.

"선교사는 영원한 손님입니다. 언제나 거실에 있어야지 안방에 들어갈 생각은 절대 하지 마십시오."

그 가르침을 들을 때 이해는 되었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그림은 그릴 수 없었다. 하지만 여러 나라에서 사역을 하면서 그의 가르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고, 얼마나 필수적인 것인가에 대한 깨달음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실수를 하는 것은 아마도 나의 미숙함 때문이리라.

말라위에서의 처음 사역은 개발기관에서의 것이었다. 개발기관은 아무래도 지역 주민들의 생활여건과 수준을 개선해 주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인지 주거나 생활방법에 대한 프로젝트들이 많이 있을 수밖에 없다. 상황이 그러하다 보니 현지의 것에 대한 연구나 관찰 없이 성급하게 한국적인 방법들을 주입하려는 경우들이 생긴다. 예를 들면 말라위 사람들의 취사방법을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한국의 전통적 취사와 난방 방법을 보급하려 했던 것이 있다. 취지와 목적은 좋았지만 현지의 것에 대한 충분한 관찰과 논의가 없었던 것이라 현지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폐기된 것이 있다. 그것의 이름조차 한국 명칭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치 한국인 선교사가 개척한 현지 교회 직분들의 명칭이 집사, 권사, 장로, 사모 같은 것과 다른 것이 없어 보인다. 얼마나 불편했을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느 책에서 배운 것은 어떤 부족이 아무리 가난하고 어렵게 살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이미 수천년을 그렇게 생존하고 있는 것이니 그들의 생존방법을 무시하지 말고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에 둔감한 것은 한국 기관이나 선교사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다른 나라의 사역자들 또한 자국이 우월하다는 자만감에 빠져 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선교사뿐 아니라 사업을 하는 사람이나 개발 사역자가 빠지기 쉬운 오류 중의 하나가 자신의 것이 우월하다는 확신일 것이다. 그 우월감은 결국 현지 상황에 적합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들이 종종 생기게 된다.

몽골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 아시아인이라기 보다는 유럽 사람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1800년대에 쓰여진 어느 유럽 탐험가의 책 서문을 몽골 어느 부족의 왕자가 쓴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서문은 "유럽 사람으로서의 우리 몽골 사람들은"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또한 러시아와의 오랜 관계와 영향력으로 많은 몽골사람들의 매너는 매우 유럽적이다. 하지만 외모가 한국인과 매우 흡사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실수하는 경우도 생기는 것 같다. 한국 선교사는 아무래도 수직적인 관계에 익숙하다 보니 선교지의 현지인들에게도 그러한 관계를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경우는 몽골에서도 예외는 아니었고, 그런 태도가 몽골인들을 불편하게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수직적 사고방식은 현지인들에게 한국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압력을 가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어느 때인가 치과에서 일하는 제자들에게 이제부터는 선생님이라 부르지 말고 이름을 부르라고 한 적이 있다. 한동안 그들이 이름을 부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너무 불편하다고 다시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돌아간 적이 있다.

다시 말라위로 돌아가 본다. 말라위 사람들에게 장례식은 가장 중요한 문화적 행사 중의 하나이다. 그들의 장례문화는 모든 마을 사람들과 친지들이 다 슬퍼해 주고 도움을 주는 것이 마치 한국의 장례문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개발기관에서 일을 할 때 마을 사람의 장례식에는 거의 다 참여하고 부의금을 냈던 기억이 난다. 또한 직원들이 장례식 간다고 하면 거의 무조건 보내 줘야 했었다. 그것은 도시로 나와 치과사역을 시작하고도 마찬가지였다. 몇 명 되지 않는 직원들 중에 한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일에 차질이 생기니, 한명이라도 장례식이 있어 출근을 못하는 날은 불편하게 지내는 수밖에 없다. 웬 장례식은 그리도 많은지. 그래서 한번은 말라위에서 오래 사역을 하고 있는 유럽 출신 선교사에게 질문을 했다. 그의 대답은 "장례식에 대해서는 자기도 어쩔 수 없이 아무 말 안 하고 보내준다"라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는 장례식으로 인한 결근에 관한 한은 나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다.

선교사로서의 내가 확신으로 인한 오류를 얼마나 많이 범하는지 모른다. 기술적이거나 지식적인 부분은 가르치려 노력하고 있고, 그래야 하겠지만 그것을 넘는 영적이고 형이상학적 부분조차 내가 가르치려 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다. 좀 더 많이 질문하고 배우려 노력하는 자세를 지키려 노력할 뿐이다.



강지헌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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