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들이 빚은 '천사만두'로 지역에 온기 전해
2023.12.18 08:20

【 보령=임성국 기자】"장병들과 지역 주민들이 손수 빚은 '천사만두'가 아기 예수님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도구가 되길 바라고요, …." 군선교 사역을 펼치는 무창포교회 이수건 목사의 바람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만두 만들 '섬김이'로 나선 장병들이 하나둘 교회로 모였다. 입대한 지 두 달 된 이등병부터 분대장을 단 상병 선임까지, 어색한 발걸음 뒤 드러난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웅천읍 소재 7해안감시기동대대 무창포소초 소속 병사들은 그동안 자신들을 섬겨 준 한국교회의 따뜻한 사랑에 보답하겠다는 각오로 이날 천사만두 만들기에 동참했다. 20대 청년들이 쓰기엔 어색한 산타모자까지 스스럼없이 써 즐거운 성탄 분위기도 만들어 냈다. 지역 주민에게 나눌 만두 빚기에 팔을 걷어붙였지만, 모양내기는 쉽지 않았다. 못생긴 것 같고 피가 터질까 걱정이지만 사랑이라도 듬뿍 담아낼 작정이다. 지난 10월 선박으로 밀입국한 중국인 22명을 체포해 포상까지 받은 강한 청년들이라고 하기엔 무색할 만큼 부드러운 '만두 요리사'로 변모한 것이다.

웅천읍 주민들도 이날 장병들의 헌신에 힘을 보탰다. 만두 빚는 손자 같은 섬김이들의 굵고 어색한 손길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럼에도 그 손길이 기특한 모양인지, "이쁘다, 잘한다" 칭찬 일색이다. 장병 옆에 앉아 친절히 만두 빚는 법을 알려 준 이봉금 할머니(84세)는 "손자 같은 장병들이 천사만두를 빚어주니 고맙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귀한데 나누려는 그 사랑의 마음 가지고 남은 군생활도 잘하면 좋겠다"고 했다. 옆에 손 빠른 한 할머니도 거들었다. "만두를 잘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는데, 여기 장병들은 착하고 예쁜 아내 만나 결혼할 것 같다"고 말해 교회 식당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곧 아흔을 맞는 송제순 할머니(89세)는 장병들 덕에 올해 성탄절은 유난히 따뜻할 것 같다고 감사했다. 그는 "성탄절을 맞아 만두 빚는 장병들의 마음이 귀하다. 훈련으로 바쁠 텐데 섬김의 수고 덕에 지역 주민들은 즐거운 성탄절을 보내게 됐다"고 전했다.

만두 빚기가 시작된 지 1시간이 지났을까. 찜기에 들어간 첫 만두가 속살을 드러냈다. 장병들도 주민들도 부풀어 올라 잘 익은 만두를 보니 기쁜 모양이다. 만두 맛보기는 빼놓을 수 없는 과정. 속이 보일 정도로 투명한 만두를 집어 든 주민들이 장병들 입 속에 넣어 주며 흐뭇해했다. 지역 주민들이 좋아할 만큼 간도, 모양도 훌륭했다.

이날 장병들과 지역 주민들이 빚은 만두는 총 1500개. 바닷일을 하는 어부, 수산 시장 일 등으로 바쁜 마을 주민 250가구에 나누기로 했다. 이수건 목사의 지휘 아래 재빠르게 분업도 이뤄졌다. 어르신들은 만두를 담은 용기에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 문구 스티커를 붙였고, 장병들은 빚은 만두를 찜기로 옮기는 일 등을 감당했다. 모락모락 오른 김 때문에 장병들의 안경 렌즈가 뿌옇게 흐려졌지만, 렌즈를 닦아 가기를 반복해도 신이 났다. 행복도 모락모락 피어오른 듯 입가까지 미소가 금세 번졌다.

천사만두를 든 정화성 상병은 "마을 주민 모두가 천사만두를 드시고 힘내셔서 따뜻한 성탄절을 보내면 좋겠다"며 "춥고 어려움 속에 있는 이웃을 돌아보고 더불어 사랑을 나누는 성탄절이 되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섬기고 나누는 일에 힘쓰는 용사가 되겠다"고 전했다.

2015년부터 성탄절을 맞아 시작된 천사만두 나눔 사역은 군선교 사역을 위한 기도와 후원에 감사한 보답의 마음을 담았다. 특별히 한국교회의 사랑을 받은 장병들이 그 사랑으로 성장해 지역을 섬길 새로운 주역이 되길 바라는 간절함이었다. 이는 과거보다 풍족해진 군생활 속에서도 자칫 사랑의 마음을 잃지 않도록 MZ세대다운 가치 있는 일을 지속하길 원하는 이수건 목사의 지혜로운 사역 방식이 더해진 결과였다.

이수건 목사는 "사랑받기에 익숙한 장병들이 오히려 받은 사랑에 감사하고자, 나눔과 섬김의 사역, '천사만두' 나눔에 동참하게 돼 기쁘다"며 "성탄절을 맞아 빚은 작은 만두가 장병들의 인생에 감사를 담는 전환점이 되고, 가장 낮은 자를 섬기러 오신 예수님 나심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게 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하나둘 용기에 담긴 천사만두를 마을 주민들에게 배달할 시간이 됐다. 장병들은 만두 용기를 큰 아이스박스에 담아 식지 않도록 하고, 따뜻한 채로 전할 임무도 부여받았다. 더욱이 이번 성탄절에는 지역 주민의 협력으로 병사들과 만든 붕어빵, 서울 새문안교회의 후원으로 준비한 손장갑 선물까지 더해진 탓인지 마음은 분주하고 손길은 바빴다.

장병들이 방문한 첫 가구는 연평해전에 참전한 故 한상국 상사의 아버지가 거주하는 곳이었다. 아들과 같은 장병들이 만든 만두를 받아 든 한진복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너무 고맙지, 우리 아들이 만든 만두 같아서 너무 맛있어. 전국에 있는 모든 아들들이 따뜻한 성탄절을 보내면 좋겠어." 이 땅에 없는 군인 아들을 대신한 장병들의 따뜻한 사랑이 성탄절의 의미를 묵상케 하는 기회가 됐는지, 한 씨는 만두 배달 후 떠나는 장병들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 같은 작은 섬김에 기뻐하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한 중대장 서진광 대위는 장병들이 기특하기만 하다. 서 대위는 "추운 겨울, 성탄절을 맞아 지역 주민들에게 따뜻한 만두를 드릴 수 있도록 나눔에 앞장선 용사들이 참으로 대견하다"며 "이번 행사를 계기 삼아 장병들이 전역 후에도 더 많이 섬기고 나누는 인재들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마을 골목골목을 다니며 만두를 나누던 장병들은 무창포 수산 시장도 찾았다. 경기 불황의 여파로 어느 때보다 조용했지만, 장병들의 방문으로 자리를 지킨 상인들은 활기를 되찾는 분위기였다. 장병들이 직접 건넨 천사만두와 붕어빵, 장갑까지 선물로 받은 한 상인은 "나라 지키는 것도 고마운데, 사랑까지 나눠줘 우리 장병들 너무 고맙다"며 "그 어느 해보다 따뜻하고 행복한 성탄절 보내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기쁨과 사랑이 가득한 성탄절. 값없이 주신 예수님의 사랑처럼 받은 사랑을 나누고자 특별한 각오로 성탄절을 맞이한 장병들의 작은 손길로 무창포 마을은 그 어느 해보다 따뜻한 온정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임성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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