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과 사경회에 참석한 권 부인의 열심

두 딸과 사경회에 참석한 권 부인의 열심

[ 선교여성과 교회 ] 전남 지역 여전도회 41

한국기독공보
2023년 11월 09일(목) 16:29
1920년대 광주 부인사경회에 모인 여성들.
권 부인은 조선에서 여성에게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던 시절에 태어났다. 여성교육기관도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몰랐다. 그녀는 여느 소녀들처럼 바느질과 요리법을 부지런히 익히며 자랐다. 결혼해서 시댁에서 현모양처로 인정받는 요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당시의 관습대로 부모가 정해주는 혼인했다. 남편 권 씨는 농부로 성실함과 책임감이 두루 갖춘 순박한 사람이었다. 권 부인은 남편과의 사이가 비교적 좋아서 첫 딸을 분만했음에도 불구하고 구박 받지 않았다. 아들만을 바라던 때에 흔치 않은 일이었다.

남편이 마을에서 열린 오일장에 계란꾸러미를 싸들고 나갔다. 설빔으로 차려 입힐 옷을 위 해 천이 필요한 탓이다. 그때 시장 한복판에 파란 눈의 외국인이 군중에게 연설을 하고 있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미국 선교사인 듯했다. 권 씨는 외국 사람이 조선말을 하는 것이 너무나 신기해 발길을 그리로 옮겼다.

외국인 선교사는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라고 소리쳤다. 권 씨는 선교사가 하는 말보다는 난생 처음 보는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가 권하는 조선말로 된 신약성경 한 권을 구입했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부인 앞에 성경책을 내어놓고 말했다. "임자, 이건 내가 시장에서 외국사람으로부터 산 책이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날 저녁 권 씨가 성경을 펼쳤다. 그가 펼친 곳은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남편이 성경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권 씨 부인이 말했다.

"좋군요. '사랑했다!', '누구든지!', '영생을 얻는다!' 참 좋은 말이군요. 하나님이란 분은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사랑하실까요? 제가 그 책을 읽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기필코 한글을 배워서 읽고 말 겁니다." 권 부인은 한시라도 빨리 한글을 배우고 싶었다. 문제는 가르쳐 줄 선생을 얻는 일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었다. 이웃집에서 예수 믿는 부인 한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그녀는 "교회에 나가면 당신이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다"며 권 부인을 교회로 안내했다.

권 부인이 참석했던 예배에서 조사가 '복음'에 대해 설교했다. 그의 설교는 복음과 영생에 목말라 하던 그녀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즉시 예수를 영접했다. 그녀는 교회에 참석하면서 결혼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계절별 여성성경 학교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이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사경회를 위한 등록금 모으기로 했다. 등록금은 매일 밥 지을 때 쌀 일부를 모으는 일이었다. 돈이 없는 이들을 위해 소위 성미라는 방식으로 대납하게 하는 제도였다.

1927년 겨울에 열린 부인 성경공부반은 열흘 동안에 걸쳐 이루어졌다. 권 부인은 어린 딸을 데리고 사경회가 열리는 곳으로 떠날 때 이미 뱃속에는 6개월의 임신상태였다. 두터운 솜옷으로 가녀린 몸을 겨우 가린 채 그녀는 어린 딸의 손을 붙잡고 머나먼 길을 떠났다. 이른 아침에 출발했던 그들이 선교 거점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저물던 무렵이었다. 기차표 살 돈을 마련하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지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그림의 떡'처럼 갈 길을 재촉했다.

어린 딸과 함께하는 사경회 길이 그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한글을 하나도 모르던 권 부인은 한글을 기초부터 가르쳐주는 반에 배치를 받아 배움에 임했다. 엄마가 배우는 한글을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며 함께 배우는 딸의 학습 진도가 더 빨랐다. 따뜻한 방 한쪽을 잠자리로 얻어 지낸 열흘 동안 지낸 사경희는 새벽부터 일어나 기도하고 성경읽기, 찬양과 예배로 조금도 쉴 틈 없이 꽉 차 있었다.

권 부인은 주어진 과제를 열심과 최선을 다해 임하고 한눈을 팔지 않았다. 열흘간의 수업을 마치고 꿈같은 졸업식이 거행됐다. 마음 같아서는 평생을 여기에 눌러 공부하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교장이 한글 읽기를 완전히 이수한 부인들에게 주는 수료증도 받고 사경회를 마친 졸업장도 받았다.

그녀에게 있어서 수료증보다 더 기뻤던 것은 한글에 까막눈이었던 그녀가 복음의 말씀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경회에서 그녀는 주기도문과 십계명 그리고 육아 방법에 대해서 배웠다. 효과적인 위생과 긴급 간호에 대한 교육도 받았다. 졸업식에서 권 부인은 '꽃씨'를 부상으로 받았다. 이 상품은 열흘 동안 단 한 시간도 빠짐없이 참석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일종의 개근상이었다.

권 부인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시작됐다. 교회에서 쪽 복음을 받아오면 하도 많이 읽고 읽어서 이제는 거의 외우는 단계까지 이른 것이다. 이듬해 봄. 두 번째 딸을 얻었다. 이제는 두 딸의 어머니가 된 권 부인은 1928년에 열리는 사경회에도 참석했다. 갓난아이는 들쳐업고 네 살 된 딸과 하루 종일을 걸어 사경회에 참석했다. 궁말에서 열리는 사경회장에는 이들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권 부인과 두 딸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모습에 권 부인은 가족 같은 사랑을 느꼈다. 선교사는 그녀로부터 아기를 받아 피곤해 있을 권 부인 가족이 머물 방으로 인도했다. 권 부인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 딸이 너무 착한 아이에요. 온종일 걷느라고 발이 부르텄는데도 싫은 소리 안 하고 꾹 참고 왔거든요."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