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이 여성 지도자로 거듭나는 세상

기생이 여성 지도자로 거듭나는 세상

[ 선교여성과 교회 ] 전남 지역 여전도회 40

한국기독공보
2023년 11월 02일(목) 13:51
윤이는 아홉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기생을 길러내는 권번(券番)에 팔려왔다. 윤이 위로 네 명의 자식이 있는 가정의 형편이 어려웠다. 음란한 술집 문화가 윤이의 영혼을 좀먹었지만 이것저것 가리며 살아갈 형편이 아니었다.

윤이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기생사회는 돈만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유일한 탈출구라고 가르쳤다. 수년 동안 윤이는 웃음을 팔아 기생 신세를 벗어날 재산을 모았다. 자유인의 신분이 됐지만 이미 한번 팔려간 영혼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살면서 과거 편하게 돈을 벌었던 시절을 그리워했다. 그때 농사일에 전념하던 어머니가 전도부인의 전도를 받아 그리스도에 관한 놀라운 비밀을 듣게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 단순한 복음의 메시지는 윤이 어머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치 2000년 전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이 그리스도를 만나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영생수를 사모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기꺼이 낯선 전도부인의 예배에도 참석했다. 그날부터 어머니는 한번도 빠짐없이 예배에 출석해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였다. 얼마 후 어머니는 매우 열렬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했다. 그 지역을 순회하던 선교사와도 곧 인사하는 사이가 됐다.

어느날 선교사가 사역에서 돌아와 집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선교사가 윤이 어머니를 찾아왔지만 어머니의 얼굴은 온갖 걱정이 가득했다. 그녀는 "선교사님, 저와 함께 우리 집으로 가주시겠습니까?"하며 간곡히 부탁했다. 어느새 선교사는 시골 마을로 향했다.

선교사는 윤이를 만났다. 윤이는 인력거를 타고 어느 돈 많은 양반의 첩실로 떠나기 직전이었다. 어머니가 선교사에게 말했다. "선교사님! 이것은 분명히 큰 죄에요. 이 아이는 예수 믿는 신자가 아니랍니다. 회개는 커녕 더 깊은 죄 속으로 빠지고 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나요?"

선교사는 윤이에게 "부디 예수를 믿고 새로운 삶을 살라"고 권면했다. 그러자 윤이가 대답했다. "그럼 나더러 어떻게 살라는 거예요. 나는 다른 직업은 몰라요. 다른 선택은 없어요. 나를 부른 부잣집 양반은 채색 비단옷과 은가락지를 준다고 약속했어요. 내가 부자가 되면 돌아와 회개하고 예수를 믿을게요."

선교사는 있는 힘을 다해 말했다. "그런 식으로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어요. 오늘이 바로 당신이 구원받는 날입니다. 당신은 지금 죄를 더 쌓으러 가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이 주님께 돌아와야만 하는 구원의 날입니다." 선교사는 소리쳤지만 소 귀에 경 읽는 것과 같았다. 윤이는 어머니와 선교사의 간절한 호소를 외면한 채 양반댁으로 가고 말았다.

그로부터 수개월이 흘렀다. 어머니의 교회에 와서 예배를 인도하던 선교사는 놀라운 광경을 목도했다. 윤이 어머니 곁에 다시 보지 못하리라 여겼던 윤이가 함께 앉아 있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어머니와 한목소리로 찬양을 부르고 있었다. "주여, 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어머니와 함께 부르는 윤이의 고운 찬송이 작은 교회당 안에 가득했다.

윤이 어머니는 말했다. "선교사님, 이제 제 딸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앞으로 윤이는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남의 집 첩살이는 절대로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돌아왔답니다. 제 딸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어머니의 표정이 한없이 밝아 보였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된 윤이는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사회적 경멸과 냉소를 감당해야만 했다. 길거리에 나설 때마다 윤이의 과거를 아는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눈길을 보냈다. 윤이는 수치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주님으로 인해 마음의 자유를 얻었다.

윤이 어머니는 선교사에게 "우리 윤이가 좋은 남편을 만나 결혼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며 간절한 소망을 나누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후 윤이 어머니가 선교사 사택으로 달려와서 말했다. "제 딸의 혼례식이 있으니 와 주시겠어요?" 선교사는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주님,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주님께서 하실 수 있다는 사실만 알았지, 그 일을 이루시리라곤 차마 믿지 못했습니다. 저의 믿음 없음을 용서하세요."

윤이네 초가집 뜰에 들어서자 면사포를 쓰고 한쪽에 곱게 앉은 윤이가 보였다. 반대쪽에는 양반 같아 보이는 젊은 사람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선교사는 은근히 두려움과 걱정, 그리고 기대와 희망이 복잡하게 섞인 감정으로 그에게 말을 건넸다. "청년이 기생 출신의 여성과 결혼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저는 이 여성의 가족과 오랜 친구입니다. 당신은 분명 이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려는 것입니까? 진심을 듣고 싶어요."

청년이 답했다. "네 선교사님. 제 부모님도 허락하셨습니다. 저는 지금 예수교를 열심히 공부하는 중에 있습니다." 선교사는 청년에게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조상 숭배는 물론이고 제사도 그만둬야 하는 것을 아십니까"라고 물었다. 청년이 답했다. "네. 만일 제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믿게 되면 비록 부모로부터 쫓겨난다 해도 제 아내와 더불어 예수님을 따르겠습니다."

결혼식 동안 선교사는 기도의 응답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환희에 가득 차 있었다. 혼례가 끝나고 윤이는 신랑을 따라 시댁이 있는 나주로 떠났다. 윤이가 시집을 간지도 몇 해가 되었다. 선교사는 광주에서 개최된 부인사경회에서 윤이를 만났다. 윤이는 나주 시찰에서 부인조력회의 대표로 성경학교에 참석한 것이었다. 그동안 신앙생활을 착실하게 한 결과 남대리(L. T. Newland) 선교사로부터 세례도 받았고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며 교회를 섬길 뿐 아니라 교회 내에서 인정받는 여성 지도자로 서게 되었다.

선교사의 기쁨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도 어느덧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은 물론 그녀의 시어머니도 신실한 신자가 되어 며느리인 윤이와 함께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 광주에 와 있었다. 실로 사람의 지혜와 한계를 넘어서는 주님의 놀라운 은혜요, 믿음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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