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을 기념하라’에서 ‘나를 기념하라’로

‘이날을 기념하라’에서 ‘나를 기념하라’로

[ 통으로읽는성경 ] 25.마지막 유월절 첫번째 성찬식(2)

조병호 목사
2023년 07월 05일(수) 14:17
유월절 번제를 묘사한 제라드 졸랭의 그림.
성찬식에는 예수님의 죽으심, 부활, 승천, 재림이 모두 들어있다

첫 번째 유월절 '이날을 기념하라'는 말씀은 1500년 후 예수님의 첫 번째 성찬식에서 '나를 기념하라'로 바뀌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시작된 첫 번째 유월절로 제사장 나라의 모든 조직과 다섯 가지 제사를 통해 '나라'의 역할을 시작하게 하셨다. 즉 유월절 어린양 사건을 시작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각 가정의 장자들을 대신하는 레위인, 제사장들에 의해 집례되는 다섯 가지 제사가 제사장 나라의 중요한 뼈대가 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종 됐던 애굽에서 나왔음을 기억하고 '유월절'을 계속 지킬 것을 명령했다. 그래서 1500년 동안 제사장 나라 거룩한 시민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기본이자 중요한 명절은 바로 유월절 '이날'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애굽에서 첫 번째 유월절을 지키고 출애굽한 다음 해 첫째 달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유월절을 정한 기일에 지키라고 명령했다. 첫 번째 유월절은 애굽에서 나와야 하므로 그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 못한 상황에서 그저 순종함으로 믿고 지켰다면, 두 번째 유월절은 종에서 해방돼 자유민이 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명절로 지킨 가슴 벅찬 날이었다(민 9:5). 이 때문에 광야에서 지킨 두 번째 유월절이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켜야 할 기념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광야 생활을 보내고 유월절을 지킬 꿈을 가지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됐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다(출 12:25). 가나안 땅에서 유월절을 기념하고 드디어 가나안 땅의 소산을 먹게 되자 그 오랜 기간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시기 위해 주셨던 만나가 그쳤다. 그때부터 가나안 땅에서 얻게 된 소출을 가지고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다섯 가지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됐다.

이후 이스라엘은 사사 시대 350년 동안 제사장 나라의 틀은 유지했으나 유월절을 비롯한 명절과 절기를 지키지 않음으로 레위기에 명시된 흉년 징계와 수탈 징계를 받는 시기를 보내게 된다. 그러다가 사무엘이 다시 제사장 나라를 바르게 세우고 제사장 나라 법대로 유월절을 지켰고, 다윗은 제사장 나라 충성도를 높이며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준비했다.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이 주신 다섯 가지 제사와 명절을 온전하게 지키기 위한 소망이 다윗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계승한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모세의 율법대로 매 안식일과 유월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번제를 드렸다(대하 8:12~13).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바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월절을 기념했다'는 것이다.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이 한 민족 두 국가로 나뉘어 분단 200년과 그 이후 남유다만 150년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이 유월절을 지켰다.

히스기야는 이스라엘 민족을 두 국가로 나눠서라도 제사장 나라를 온전히 살리려고 하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했다. 마침내 히스기야는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온 북이스라엘 열 지파 사람들에게 보발꾼들을 보내 예루살렘으로 와서 함께 유월절을 지키자고 공포했다. 히스기야가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초대한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곳이 예루살렘 성전이기 때문이었고, 예루살렘에서 온 민족이 함께 제사장 나라의 시작이 됐던 유월절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호소를 들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조롱하고 비웃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북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적은 수라도 일부가 스스로 겸손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히스기야는 기록된 규례대로 유월절 예식을 치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성결한 제사장들이 부족했고, 둘째는 백성들이 정한 시간까지 예루살렘으로 다 모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한 달을 미뤄 유월절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재정비해 오랫 동안 지키지 못했던 유월절을 다시 지킴으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백성과 나그네들까지 모두 즐거워했다(대하 30:21). 그 후 요시야 왕 때 유월절을 지키게 된다. 요시아 왕 때 지킨 유월절은 사무엘 이후 정말 오랜만에 모세의 기록대로 제대로 지킨 유월절이었다(왕하 23:21~23).

왕정 500년이 끝나고 바벨론 포로 70년 동안 제사장 나라 재교육을 받고 극상품 무화과가 돼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제국의 투자 정책과 맞물리면서 느헤미야와 에스라를 통해 제사장 나라의 '제사와 절기와 명절'을 모두 회복했다(느 8:17~18). 이후 헬라 제국과 로마 제국을 거치면서 유대는 예수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예루살렘 성전 중심을 이어갔다. 그 때문에 로마 제국은 유대를 식민지로 통치하면서도 예루살렘 성전을 존중하며 조심스럽게 유대에 대한 정책을 펼쳤다. 로마 제국이 유월절을 유대인의 명절로 존중하고 '유월절 사면'을 시행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성전과 제사의 기능이 유지됐기에 예수님도 해마다 유월절을 지킬 수 있었다. 마침내 하나님의 때에 예수님은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리던 '하나님의 일'을 행하셨다. 바로 마지막 유월절에 행하신 첫 번째 성찬식이다.

제사장 나라의 시작은 '유월절 어린양'이다. 1500년 후 하나님 나라의 시작은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하나님의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유월절 첫 번째 성찬식을 행하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 22:19)"고 말씀하셨다. 성찬식에는 예수님의 죽으심, 부활, 승천, 재림이 모두 들어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기념식을 달리 표현하면 '주의 죽으심을 주님 오실 그날까지 기념하고 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성찬식 예식을 행하는 날만이 아닌, 숨 쉬는 순간마다 기념해야 한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사도 바울의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라는 고백으로 기념해야 할 것이다.

조병호 목사 / 성경통독원 대표·통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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