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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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기획-미리 가보는 WCC11차총회 ] 3. WCC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22년 06월 09일(목) 18:18
194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WCC 창립총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이 대회에 김관식 목사를 파송해 창립회원이 됐다.
지난 2009년 도잔소25주년 국제협의회에 참석한 조그련 고 강영섭 목사, 교단 인사들과 참석자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1947년 대구제일교회에서 열린 제33회 총회에서 다음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창립총회에 교단 대표를 보내기로 결의했다.

이 결의로 당시 NCCK 총무인 김관식 목사와 청년대표 엄요섭 목사를 함께 보내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WCC의 창립 회원교단이 되면서 그 관계가 시작됐다.

1948년 제34회 총회에서는 WCC 총회에 참석하는 김관식 목사의 교통비(배삯) 100달러를 보조할 것을 결의했다. 김관식 목사는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길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개혁교회커뮤니언의 전신 세계장로회 총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WCC 10차 부산 총회 회무 모습
#교단까지 분리할 정도의 에큐메니칼 정체성을 가진 교단


지금도 한국에서는 'WCC'하면 용공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전세계에서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용공설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의 WCC 용공설은 그 뿌리가 깊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면 WCC는 6.25 당시 그 어느 기관보다 열심히 대한민국을 구해내기 위해 UN을 압박했다.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WCC 국제문제교회위원회(CCLA)와 국제선교협의회(IMC)는 즉각 UN 등 국제기구와 미국 정부에 접촉하며 사태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WCC는 한국전쟁을 북한에 의한 남침으로 규정하고, UN의 전쟁 개입 등을 포함한 UN 결의안이 채택되는데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 WCC 용공성 시비가 대두된 배경에는 당시 정치사회적인 상황과 교단적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금주섭 박사(CWM 총무)는 "WCC의 용공성 시비가 가장 먼저 대두된 배경에는 휴전협정과 삼선개헌이 그 배경에 있었다"며, "북한의 남침에 대한 대응과 유엔 안보리의 유엔군 결성 및 파견, 그리고 전쟁 피해 복구와 구호를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고 밀착됐던 세계교회와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문제로 갈등이 생겼다"고 총회 제105회기 에큐메니칼위원회 연구자료 'WCC의 선교개념: 구원의 통전성과 일치 속의 선교'에서 기술한 바 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을 반대하고 휴전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용공으로 몰아붙였다. 반면 WCC는 600만 명의 사망자를 내고 끝날 기미가 없던 이 전쟁을 휴전하고자 하는 유엔과 미국의 입장을 지지했다. 전쟁이 끝난 후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은 종신 대통령이 되기 위해 사사오입 개헌을 감행했고, WCC가 이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내자 당시 IMC 부의장이었던 김활란 박사에게 WCC는 용공이라는 주장을 하며 탈퇴를 종용했다.

그러나 당시 WCC에 동구권 교회들이 가입하기 이전이었고, 오히려 한국의 전쟁복구와 구호를 위해 막대한 물량을 지원했다.

WCC 용공설을 두고 갈등이 심했던 시기 본보에 게재된 1966년 기사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단 내에서는 대구에 있던 총회신학교를 박형룡 교장의 책임 아래 서울 남산에 있던 조선신궁 터로 옮기는 과정에서 부지 불하와 관련, 3000만 환을 사기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복음주의 진영은 박 교장의 일선 후퇴가 보수신학의 후퇴와 자유, 진보 세력의 득세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 WCC를 용공적 자유주의라고 더욱 강력하게 비판했다. 여기에 에큐메니컬과 복음주의측으로 양분되어 있던 경기노회가 총대 명부를 각각 제출하는 일이 벌어지자 양측의 갈등은 더욱 심해졌다.

이에 1959년 제44회 총회는 교단의 WCC 가입 문제를 놓고 장로교단 내에서 지지파와 반대파로 갈라져, WCC 지지파는 연동교회에, 반대파는 승동교회에 모여 각각 통합과 합동으로 나뉘었다.

이후 1960년 제44회 총회에서는 교회의 화평을 위해 WCC 탈퇴를 결의했다. 그러다가 1969년 제54회 총회에 투표에 부친 결과 144대 79로 WCC 복귀를 가결, 10년 만에 활동을 재개하고 이후 세계교회와 활발한 교류를 지속했다.


#통일을 위한 WCC의 협력


1975년 WCC 제5차 총회(케냐 나이로비)가 열리기 직전 WCC는 11월6~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국 문제에 관한 비공식 모임을 통해 세계교회 지도자들이 본격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한국 기독교인들이 조직을 만들어줄 것을 요청해 '한국민주사회건설세계협의회(WCDKㆍ후에 한국민주화기독자동지회로 변경)'가 결성됐다. 의장에는 김재준, 사무총장 지명관, 사무차장 겸 대변인 박상증, 회계 손명걸이 맡았으며, 중앙위원회 위원은 북미의 이상철 이승만 손명걸 김인식 홍동근, 일본의 오재식 지명관 김용복 최경식, 유럽의 박상증 장성환 이삼열 신필균, 한국의 이태영 강문규 등으로 구성했다.(당시 모임에 국내에 있던 김관석 안병무 문동환은 출국금지로 참석하지 못했다). 면면에서 보듯 이승만, 김인식, 홍동근, 지명관, 김용복, 이삼열 등이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이거나 배경을 갖고 있는 인사들이다.

이삼열 박사(전 유네스코 아태무형유산센터 사무총장)는 "당시 한국이 민주화가 되지 않아 당시 독일에 있었던 나처럼 해외에 있는 인사들이 민주화운동을 많이 했다"며, "우리 교단 인물들이 많이 있었지만 교단을 구분하지 않고 한국의 민주화라는 대의를 가지고 함께 노력했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WCC 국제문제위원회는 1984년 10월 28~11월 2일 일본 도잔소의 YMCA 컨퍼런스센터에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정의: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전망'에 대한 회의를 개최했다. WCC는 처음으로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을 도잔소 회의에 공식으로 초대했으나 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나 조그련은 모임을 지지하는 서한을 보내 한반도 평화정착의 염원을 알려왔다.

1984년에는 한국, 미국, 캐나다 교회협의회가 제3차 한·북미교회협의회를 개최했으며, 1986년 9월 2~5일 스위스 글리온에서는 WCC 국제위원회 주최로 열린 글리온 제1차 협의회가 열려 남과 북의 교회가 첫 만남을 가졌다. 이 모임은 1988년 11월 23~25일 제2차 글리온 모임, 1990년 12월 1~4일 제3차 글리온 모임, 1995년 3월 28~31일 제4차 글리온 회의로 이어졌다.


# 10차 부산총회 개최, 예장이 선봉장


지난 2013년 부산에서 개최된 WCC 제10차 총회는 북반구 서구 중심에서 남반구로 중심축이 이전하고 있는 세계 기독교의 잠재적 지도자로서의 한국교회 이미지가 부각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제10차 총회 준비는 한국교회가 격렬한 반WCC 운동 속에서도 하나가 되어 준비에 만전을 기해 역대 최고의 총회 중 하나로 평가받는 총회로 역사에 남겼다. 당시 WCC 총회 한국준비위원회 위원장 및 상임대표대회장에 김삼환 목사가 추대되고, 홍보실장으로 천영철 목사가 사역했을 정도로 우리 교단은 당시 10차 총회의 호스트인 한국교회 내에서도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WCC 내부에서는 실무자로 예장 총회 소속인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 총무 금주섭 목사(현 CWM 총무), WCC 디아코니아 및 아시아국장 고 김동성 목사가 사역하고 있었다.

당시 개회예배와 개막식에는 본교단 총회를 대표해 증경총회장들과 총회장 및 임원들, 사무총장, 교단 산하 7개 신학대학교 총장, 여전도회 전국연합회와 전국남선교회연합회 임원들, 총회 총무단까지 참석했고, 총회 기간 중에는 전국의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이 WCC 총회가 열리는 부산 벡스코를 찾아 WCC회의와 관련 마당 전시 등에 관심을 보였다.

교단 제56회 총회장이자 한국교회 현대사의 증인인 고 방지일 목사가 저녁 수요예배에서 설교를 했으며, 교단 소속 목사인 장윤재 목사(이화여대 교수)가 평화 주제회의 스피커로 참여하기도 했다.

본보의 기자들도 대회 기간 WCC 커뮤니케이션팀으로 참여해 총회 기간 중에 매일 제작되는 신문 '마당'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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