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가 답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답이다!

[ 1월특집 ] 2022년에 바란다 2.신학

김지철 목사
2022년 01월 05일(수) 08:10
김지철 목사
늘 그렇게 생각해 왔다. 나 자신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신학도와 목회자로서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문제에 대한 '답'이라고! 그렇다면 그분의 기초 위에 세워진 기독교 신학은 오늘 우리가 당면하는 시대적 위기에 대한 '답'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 답은 모든 세부 분야에 대한 적확한 답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우리의 문제를 다루기 위한 원칙과 방향성, 그리고 가치관을 제시하는 대답이어야 할 것이다.

2022년을 맞이하면서 기독교 신학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응답해야 하는 도전 앞에 서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온 우울함과 기후변화의 위기 속에서 기독교가 제시하는 '희망'의 본질을 어떻게 구체화해야 하는가? 무종교로 치닫는 한국 사회 속에서 기독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길은 무엇인가? 인공지능 AI가 고도로 발전하는 정보 기술 사회 속에서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진정한 '인간됨'의 의미를 어떻게 보여줘야 할 것인가? 75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적대적인 남북한의 분단을 극복하는 '화해와 용서'의 길을 어떻게 제시해야 할 것인가? 현실 한국교회에 냉담한 마음을 품은 젊은이들에게 들려줘야 할 인생을 위한 메시지는 어떤 것인가? 과학과 종교의 충돌에서 신학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올해 3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치와 교회의 관계를 가늠하는 잣대는 무엇인가?

기독교 신학은 방법론적으로 두 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하나는 '이성의 문'이며, 다른 하나는 '신비의 문'이다. 신학을 통해 땅과 하늘의 세계가 조화를 이루며, 지성과 계시가 함께 만나야 한다. 그래야 하늘의 신비를 붙잡는 동시에 땅에 두 발을 딛는 생동감 넘치는 신학이 창출될 수 있다. 신학의 핵심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금의 신학은 종교학에 머물고 있지 않는가 자성해 본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신학의 고유한 특징인 2인칭적인 고백을 망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상아탑에 머물면서 3인칭적인 진술과 지식 정보 제공으로만 신학의 역할이 축소되어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 땅에 혁명적인 충격을 가져오신 예수와 달리 인간과 세상을 향해 도전하고 변화시키는 역동적인 신학이 희미해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독교 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첫째, 신학은 다시 철저하게 실천적인 학문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첫 신학자는 사도 바울이었다. 바울이 쓴 로마서와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등은 당대 교회 성도들이 직면한 사회 현장 속에서 출현하였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고뇌하고 갈등하며 절망하고 있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가장 구체적인 응답임을 선언하였다. 신학의 범주가 한 인간의 실존과 공동체의 정체성, 가정과 이웃과의 인간관계, 사회적 갈등과 거대한 권력과의 관계, 그리고 우주적인 영역까지 확장되는 것임을 각인시켰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신학도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현장 속의 이야기를 담아냄으로써 실천적인 대답을 주어야 한다.

둘째, 신학은 융합하는 학문이어야 한다. 때로 성서학은 교의학을 모르고, 교의학은 성서학을 외면하는 무지와 안일함을 극복해야 한다. 성서학과 교의학이 상아탑에 갇힌 사변적 학문으로 몰락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서로 다른 분야의 학자와 신학도들이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대답으로써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함께 들려줘야 한다. 예수의 복음을 기독교적인 언어로 제한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며 끊임없이 소통해야 할 것이다.

셋째, 신학은 인문사회학적인 시야를 아울러야 한다. 일찍이 칼뱅은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것과 인간을 아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라고 한다면, 신학은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질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성찰인 것이다. 그렇기에 신학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인문 사회학적 논의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가장 고뇌하며 사랑하신 대상이 바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넷째,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인정하는 순간에 그리스도인은 삶의 주인이 바뀌는 영적인 혁명을 경험한다. 그래서 신앙인은 그리스도에 종속된 '작은 그리스도'(마틴 루터)가 된다. 그리스도인은 그분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할 엄연한 당위성을 가진다. 따라서 신학은 신앙인이 '작은 그리스도'가 되어 자신이 속한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오늘의 위기적 상황과 문제를 신학화하는 노력을 가속화해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의 탁월성은 자신들에게 닥쳐오는 실존적인 위기와 극도로 힘든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침투와 인도하심을 느끼고 체화했다는 데에 있다. 그들은 그 어떤 상황과 주제든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모든 사물을 해석할 줄 아는 눈을 가졌다. 이것이 그들의 지혜신학이었고, 영성이었다. 그들이 깨달은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창조주시며, 인간을 용서하고 회복하시는 구원의 주시며, 시간을 이끄시는 역사의 주시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중심에 바로 예수 그리스도 곧 이 땅의 문제에 '대답' 자체로 오신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계셨던 것이다.

여섯째, 신학은 세상과 현장 속에서 분투하고 있는 교회와 더욱 진솔한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교회가 신학의 고뇌를 품고, 동시에 신학이 교회를 바르게 이해하고 섬길 때에야 이 시대에 신학과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사명을 더욱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신학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소통해왔던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는 신학이 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 그 기억을 새롭게 창출하는 신학이 되어야 하는 책임을 부여받고 있다. 그래서 옛 시대를 걷어차고 다가오는 새로운 시간을 선포하며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는 예수님의 공생애 첫 메시지는 지금도 계속 유효하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마지막 보루인 신학교에 이런 신학적 변혁이 일어나길 바라며 소망을 품는다.



김지철 목사(미래목회와말씀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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