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과 같이 세우시는 하나님(렘 33:1~9)

처음과 같이 세우시는 하나님(렘 33:1~9)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11

강성열 교수
2021년 10월 27일(수) 09:29
여전히 시위대 뜰에 갇혀 있는 동안에 야웨께로부터 두 번째 메시지를 받은 예레미야는 그를 향하여 기도할 경우 장차 닥칠 일에 관한 비밀스런 추가 정보가 자신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받는다(1~3절). 바벨론을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신 야웨께서는 예루살렘을 시체들로 가득 채우실 것이지만(4~5절), 정해진 때가 되면 다시금 그 성읍을 안전하게 지키실 것이요, 열방은 포로민들의 귀향과 더불어 예루살렘이 회복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6~9절).

1~3절: 예레미야가 처해 있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1절 서두의 언급, 곧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라는 언급은 33장이 32장을 잇고 있는 본문임을 잘 보여 준다. 왜냐하면 32장은 2절에서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을 때 예레미야가 유다 왕의 궁중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혔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 그는 두 번째로 야웨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1b절). 33장에서는 예레미야에게 "야웨의 말씀"이 세 번 임하는 바(1, 19, 23절), 이는 야웨의 말씀이 먼저 개인적으로 예레미야에게 임했고, 나중에 예레미야가 그것을 일반 대중에게 전했음을 뜻할 것이다.

그 말씀에서 야웨 하나님은 자신에 관한 정보를 세 가지로 정리하여 전해주신다. 땅을 만드시는 야웨, 그것을 빚어서 제 자리에 세우시는(establish) 야웨, 그 이름이 야웨이신 분 등이 그렇다(2절). 그런데 이 세 가지 정의 중에서 맨 첫 번째의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개역 개정판이 '일을 행하시는'으로 번역하는 히브리어 낱말은 '그것을 만드시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바, 많은 학자들과 다수의 영역 성서들은 히브리 성서의 헬라어 역본인 70인역을 따라 '땅을 만드시는'(made the earth)으로 번역함으로써, '오사흐'가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강조하는 표현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예레미야는 이처럼 땅을 창조하시고 세우시며 야웨라는 이름을 가지신 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사자 양식(messenger formula, "야웨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을 통하여 전달한다(2절). 야웨의 말씀은 3절에 잘 인용되어 있다. 야웨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야웨 자신을 향하여 부르짖으라고 명하신다. 그리하면 그에게 응답하시겠고 그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하신다(3절). 야웨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신 이 말씀은 야웨께 부르짖으라는 초청과 그에 대한 응답의 보증이라는 두 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음이 분명하다.

4~9절: 다시금 사자 양식(4a절)을 통하여 전달되는 야웨의 말씀은 갈대아인들이 헐어버린 예루살렘 도성 안의 집들과 유다 왕궁을 겨냥하고 있다. 4b절에 의하면, 유다 백성은 바벨론 군대의 침략을 받았을 때 갈대아인들의 공격을 무력화시키기 위하여 불에 타기 쉬운 예루살렘 도성의 가옥들과 유다 왕궁을 헐어버렸다. 바벨론 군대의 진격 속도를 늦추고 예루살렘 성벽의 방어 체계를 견고하게 위한 목적에서였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갈대아인들이 예루살렘 도성을 함락시키기 위하여 만든 흙 언덕들(siege~mounds, "참호")과 칼을 대항하여 싸우려는 목적에서였다.

흙 언덕들과 칼이야말로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기 위해 사용한 가장 강력한 두 종류의 전쟁 도구들이었기에, 유다 백성은 이 두 가지 공격 무기에 맞서 싸우기 위하여 스스로 자기 땅의 집들과 왕궁을 무너뜨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노력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도리어 그들은 진노에 사로잡힌 야웨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야웨께서는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셨으며, 예루살렘 도성을 그들의 시체로 가득 채우셨다(5a절). 그 까닭은 그들의 모든 악행이 야웨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는 바람에 그가 그 도성을 돌아보지 않으셨기 때문이다(5b절). 그 결과 마침내 예루살렘 도성은 사람도 짐승도 없는 황폐한 곳이 되고 말았다(10, 12절).

그렇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이전에는 탐욕에 사로잡힌 거짓 예언자들과 제사장들이 백성의 상처를 제대로 치료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6:14; 8:11), 그들 자신의 온갖 죄악이 그들에게 치료받을 수 없는 심판과 재앙을 초래했었다(8:15, 22; 14:19; 15:18; 30:12~15). 그러나 이제는 야웨께서 중상을 입은 예루살렘 도성을 치료하여 낫게 하시고(30:17), 유다 백성으로 하여금 평안과 진실을 마음껏 누리게 하실 것이다(6절). 그는 또한 30:3, 18; 31:4에서 약속하신 것처럼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시고,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우심으로써 그들을 예전의 모습으로 다시금 회복시켜주실 것이다.

더 나아가서 야웨께서는 유다 백성의 모든 죄악에서 그들을 깨끗이 씻어 정결하게 하시고, 그들이 자신을 거역하여 저지른 모든 죄악을 용서하실 것이다(8절). 바로 앞의 32장에서는 심판(32:36)에 이어 바로 야웨께서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그들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겠다는 약속(32:37~41)이 주어지지만, 여기서는 그들을 정결하게 만들고 그들의 모든 죄악을 용서하는 야웨 하나님의 은총이 그 중간 과정에 작용할 것이라는 약속을 추가하고 있다. 이러한 중간 약속은 이미 31:34b의 새 언약에서도 분명하게 주어진 바가 있다.

이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도성은 두 가지 극적인 운명의 전환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첫째로 이전에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었던(18:16; 25:9b) 예루살렘이 이제는 세상의 모든 나라 사람들 앞에서 야웨 하나님의 기쁨이 될 것이요, 그의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다. 둘째로 그들은 야웨께서 자기 백성에게 베푸신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그가 예루살렘 도성에 베푸신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게 될 것이다(9절). 전에는 이방 나라 사람들이 야웨 하나님의 기적적인 구원으로 말미암아 두려움에 사로잡혔지만(출 15:14~16), 이제는 도리어 야웨께서 예루살렘에 주실 복과 평안으로 인하여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이라는 얘기다.

강성열 교수 / 호남신학대학교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