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도 없이 아이가 죽었다

소리도 없이 아이가 죽었다

[ 기독교 영화보기 ] 영화 <소리도 없이>를 보고

김지혜 목사
2021년 01월 13일(수) 10:00
영화 '소리도 없이'에서 태인(유아인)과 창복(유재명)은 트럭행상 계란 장수이자 전문 '청소부'이다. 라면을 끓이며 1인 1계란 이상은 먹지 않아도, 하루 일과가 끝나면 계란 몇 알을 마을 어귀에서 행상하는 할머니에게 드린다. 이 '착하고' 성실한 두 사람은 범죄 조직 범행의 전후처리도 한다. 범죄에 직접 가담하거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생계를 위해 일상적으로 곳곳에 튄 피를 깨끗이 닦아내고 시체를 산에 파묻으며 '기도'로 마무리한다. 이들은 정말 착한가?

표면적으로 지극히 평범하고 안온해 보이는 일상에 범죄가 소리도 없이 침윤한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시골길 풍경은 아름답고 평온하지만, 예기치 않게 유괴한 11살짜리 아이 초희(문승아)가 도망치지 않도록 묶어 나르는 장면이다. 귀여운 장난감과 놀이기구가 그득해 놀이방처럼 보이는 공간은 납치한 아이들을 거래하기 전에 잠시 머물게 하는 곳이다. 납치와 협박, 폭력과 살인, 장기매매 같이 반인륜적 범죄를 무심하게 저지르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태인과 창복을 보면, 안도감이 들기도 하고 초희와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까지 이른다. 아뿔싸!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이 뒤엉키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영화적 장치들이 영리하고 섬뜩하다.

영화 '소리도 없이'의 홍의정 감독은 유년시절 친하게 지내던 동네 아저씨에게서 영화의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개를 좋아하던 아저씨는 사실 개들을 개장수에게 팔아넘기던 사람이었다. 그는 선인인가, 악인인가? 차악은 악이 아닌가? 질문을 던지는 이 영화의 원제는 본래 '소리도 없이 우리는 괴물이 된다'였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며 선택한 작은 악들이 모여 마침내 괴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새해를 열며, '16개월 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에 대한 대중의 공분이 거세다. 겉으로 보기에 선한 사람들처럼 보였던 입양가정에서 아이에게 심각한 폭행을 저질렀으며, 더욱이 그들이 흔히 교회에서 마주하는 기독교 신앙인들이었다는 데 충격이 크다. 아이를 직접 가해한 부모들의 책임이 가장 클 것이나 아이를 보호해야 할 기관과 전문가들이 책임을 방기했다는 것 역시 문제이다. 무신경함, 무사안일주의, 관행이나 방조 같은 것들이 끼어든 안일한 일상적 선택들이 아이의 죽음에 일조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또 있다. 2016년 잔혹한 아동학대 범죄가 연이어 드러나면서 전국이 떠들썩했고, 지난 해 중순 여행가방에 갇혀 죽음을 맞은 아동의 학대사망 사건이 이슈화되었으며 2018년 기준 아동학대가 2만 4천여 건에 이르지만, 아직까지 대책이 전무하다. 정치권 등 뿐 아니라 모두가 저마다 방조한 책임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목소리를 내는 것의 힘을 믿는다면, 소리 없는 침묵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소리도 없이 우리가 괴물이 되는 사이,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한나 아렌트의 유명한 개념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은 독일 나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이 유대인 학살을 저지를 때, 사유 없이 직무에 충실했던 평범한 소시민적 모습을 지적한다. 아이히만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거대 악은 히틀러와 같은 악마가 아니라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악들이 떠받치면서 빚어지는 것이란 그의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리처드 니버는 신앙인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하나님이 지금 어떻게 일하고 계신가?"를 묻고, 그 질문에 응답하는 개인의 행위가 타자의 행위, 나아가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야 함을 말한 바 있다. 16개월 세 살 아이가 식탁에서 '지저스'나 '아멘'을 따라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다. 창복이 시신 앞에서 죄책이나 책임의 면피의 목적으로 한 것도 기도라 할 수 없다. 세상의 주권자로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신앙인의 기도란, 나의 안팎의 크고 작은 악과 끊임없이 씨름하며 주어진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서 적절한 책임적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다시는 소리 없이 죽어가는 정인이들을 보고 싶지 않다.



김지혜 목사/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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