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 주는 것보다 받는 것, 더 깊은 교제의 시작

도움 주는 것보다 받는 것, 더 깊은 교제의 시작

[ 땅끝에서온편지 ] <5> 도움선교와 관계선교

김봉춘 목사
2018년 03월 06일(화) 11:26

나를 만나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산 것은 아니었다. 물론 행복의 기준이 다양하겠지만 사회적인 평가를 하더라도 어렵고 곤란한 삶을 살거나 숨진 분들이 있다.

한 명은 보르노르의 '감바트'이다. 내가 처음 보르노르 다닐 당시에 나를 도와 주었고 나도 그를 많이 의지하였다. 내가 마을을 처음 가던 날에 마을 사람을 사귀려고 두 세명의 젊은이가 지나가고 있길래 '일부러' 내 차를 길가 구덩이에 빠뜨려 버렸다.

흔히 선교사는 도움을 주면 교인이 될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다양한 도움을 제공한다. 그리고 교인이 되지 않으면 선교지 국민 전체를 폄하한다. '국민성이 나쁘다'느니, '은혜도 모른다'느니. 그러나 이런 도움의 댓가로 교인이 된 사람은 도움이 끝나면 떠나거나 혹은 남더라도 도움을 계속 제공해야 하는 부담자가 된다. 나는 여러 번 이런 경우를 보고 경험하였기에 역발상으로 접근해 보았다. 즉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으며 접근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덩이에 '빠뜨린' 차를 밀어 달라고 지나가던 3명의 장정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물론 액셀러레이터를 70%만 밟았다. 몇 번을 힘겹게 밀게 한 후에야 구덩이에서 빠져 나왔고, 이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몇 번 만나면서 결국 친해졌다. 그 중에 한 명인 감바트는 교회에 무슨 일이 생기면 늘 나타나서 도왔다. 화장실 파는 일, 지붕 고치는 일, 난방공사, 창틀 고치는 일, 울타리 수리 등등 감바트는 모든 일에 봉사와 섬김으로 자원하여 도왔다.

교회에 오면서 술과 담배는 몰래 필 정도로 변하였고, 길가에서 술에 취해 잠자는 일은 멈추게 되었다. 세례를 받은 후에는 찬양대원으로 봉사하였다. 그러던 감바트가 어느 날 보이지 않았다. 간암으로 갑자기 별세한 것이다. 소식을 듣고 급히 그의 집으로 갔으나 이미 세상을 뜬 후였다. 그의 시커매진 얼굴에 손을 얹고 기도하였다. 7, 8년동안 교회의 모든 일에 기쁨으로 섬겨 주던 감바트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내가 마을에 불안하지 않게 정착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친구였다.

또 한 명은 '사라' 아주머니이다. 초기에 교회 경비를 맡아 수고했는데 대개의 경우 교회 관리자는 선교사에게 일정액의 보수를 받고 지킴이 역할을 한다. 사라는 아무런 사례비도 없이 자원하여 교회를 돌보던 가족이었다. 그런데 사라가 하루는 여름에 온 단기팀이 두고 간 문방구 일부를 훔쳐 팔아버린 것이다. 마을 아이들이 단기팀이 두고 간 목걸이 볼펜을 걸고 다니고 있어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마침 한 동네 아주머니가 나에게 '사라'가 교회 문방구를 팔았다고 일러 주었다. 나는 듣자마자 문득 "아, 그거요? 내가 팔아 달라고 부탁한 건데요"하고 대답하였다. 사라가 마을 사람들에게 집단 따돌림 당할 뻔 한 상황이었다. 사라에게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기로 다짐을 받았다. 그 후로 사라는 교회의 잔 심부름을 기쁨과 진심으로 섬기는 교인이 되었다. 지금은 밀가루 하역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몇 달 전에 역전시장에서 누가 나를 부르길래 뒤돌아 보았더니 그 아주머니였다. 나의 뒷 모습을 보고 알아보고 부른 것이다. 생활이 어려워 울란바타르 시내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

그 외에도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선교사와 만나고 사귀고 도움을 주고 받으며, 선교사의 영역 주변에서 복음을 접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돌아보면 그 과정에서 현지인이 선교사를 돕는 경우가 더 많다. 선교사가 뜻밖의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근처에 있는 현지인이 가장 직접적이고 빠른 도움을 준다. 그런데 묘한 것은 선교사가 도우면서 만나 교인이 된 사람들 보다 선교사가 도움을 받으면서 교인이 된 사람이 더 오래가고 더 깊은 교제를 하게 되더라는 경험이다.

'선교=도움 주는 것'이라는 공식이 다 맞은 것이 아니라는 사례이다. 한국 선교의 본성은 '도움선교'이다. 수 많은 선교사들이 돕는 현장의 모습을 사역으로 소개하고 홍보도 한다. 그런데 도움도 세련미가 있어야 한다. 짧은 경험에 의하면 '관계선교'가 더 효과적이고 열매도 있다는 간증을 나누고 싶다. 그리고 관계를 위해서는 충분한 언어를 익혀야 한다. 통역을 통해서는 마음의 교감을 나누는 친구를 만들기 어렵고, 또 관계선교를 할 수가 없다. 최근에 나는 가족단위의 교제를 더 많이 한다. 싱글로 만난 사람은 결혼하면서 관계의 절반은 멀어지곤 하였다. 그러나 가족 단위로 교제하고 만나면 더 깊은 삶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감바트 가족과 좀 더 일찍 가족 단위로 교제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김봉춘 목사
총회 파송 몽골선교사
울란바타르 한인교회
몽골연합신학교
(UBTC)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