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칼뱅 배출한 파리 몽태규 대학

장 칼뱅 배출한 파리 몽태규 대학

[ 땅끝에서온편지 ] 프랑스종교개혁이야기<4>

이극범 목사
2017년 06월 02일(금) 16:58

장 칼뱅은 고독한 성격의 공부벌레였고, 고향 노와용에서는 이미 주교의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다녔다. 그는 고향 노와용을 떠나 14세에 파리에 도착해 그의 삼촌 샤르 코뱅을 찾아가 고등교육을 받아 당대 유럽의 고급 언어인 라틴어와 고전어 히브리어 그리스어를 접하는 인문주의 학자의 길을 걸었다.

어느 교회사 학자는 "루터는 단단한 바위산을 다이나마이트로 폭파시킨 사람이라면 칼뱅은 루터가 깬 바위에 글자를 새긴 사람이다"라고 했다.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라고 본다. 개혁자 칼방의 글 솜씨는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던 1536년 27세의 나이로 불후의 명작 '기독교 강요'를 출판했다. 이는 주기도문, 사도신경, 십계명을 오로지 성경으로만 해설한 위대한 작품이요,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그의 학창시절은 거칠고 힘든 광야 생활과 같았다. 개혁자 칼뱅은 그의 파리 몬태규 대학시절을 이렇게 고백한다. "학교 기숙사는 이가 득실거리고 음식이 형편 없고 학점이 미달하거나 게으른 학생에게는 가혹하게 채찍질까지 해 악명 높은 학교였다. 가난한 기숙사 학생들은 4시에 일어나 공부를 시작했으며 식당에서 주는 계란은 대부분 썩은 것들이었고 고기를 먹지 못하게 했으며 썩은 계란과 빵 한 조각만 먹게 했기에 너무 엄격하여 많은 학생들이 죽거나, 정신병에 걸리거나, 시각장애인이 되기도 하고 중풍병에 걸렸다. 더욱이 어둡고 습한 복도에는 외국언어인 라틴어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러나 칼뱅은 부지런히 공부해 라틴 고전과 논리학과 아우구스티와 같은 교부들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서들을 강독하는 과목을 모두 숙달했다. 그가 학업을 마치고 학위를 받았을 때 그의 나이 18세였다. 병약하여 자주 복통과 심한 두통에 시달렸지만 그의 향학열과 젊은 지성은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게 했다. 그는 고독한 사람이었으나 학문의 세계를 통해 여러 친구들을 사귀게 되어 큰 힘이 되었다. 개혁자 칼뱅은 독일에서 출판되는 루터의 논문을 구입하여 읽게 되었고 파리대학의 르페브르 교수의 인문주의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성경을 프랑스어로 번역한 사촌 올비에탕과의 로마 교회와 성경의 진리에 대해 폭 넓은 석학의 길을 이미 걷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졌으며 성경을 해석할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정통했을 뿐 아니라, 유럽의 고급 언어인 라틴어를 자기의 모국어인 프랑스어보다 더 자유스럽게 구사할 줄 아는 학자로 준비되고 있었다.

에라스무스, 칼어뱅, 존 낙스 등 저명한 인문주의 학자들을 길러 내고 있는 파리 꼴레쥬 드 몽테규 대학은 현재의 프랑스 국립대학 파리 소르본(universite Sorbonne Nouvelle)이므로 한번 방문하기를 바란다. 현재 학교 건물들은 팡테옹 광장(place du Pantheon)에 위치해 있으며 입구는 세뜨봐가(rue des Sept-Voies / 현 rue Valette, 파리 5구)에 위치한다.

이극범 목사/총회 파송 프랑스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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