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계절에 만나는 “왜 (다시) 사는가?”라는 질문

부활의 계절에 만나는 “왜 (다시) 사는가?”라는 질문

[ 최은의 영화보기 ] 라쎄 할스트롬의 '베일리 어게인 A Dog’s Purpose'(2017)

최은
2024년 03월 15일(금) 10:00
'베일리'는 개 이름이다. '베일리 어게인'에서 이 강아지는 매번 다른 품종으로 다른 임무를 띠고 다시 태어난다. 프랭크 카프라의 영화 덕에 미국인들에게는 특히 친숙할 이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헌신적이고 착한 사람의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 '멋진 인생 (It's a Wonderful Life, 1946)에서 주인공 조지 베일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고 다리 위에 올라섰다가 천사를 만나 새로운 삶을 선물로 받는다. W. 브루스 카메론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영화 '베일리 어게인'은 이 이름을 강아지에게 주었다. 영화를 연출한 스웨덴의 거장 라쎄 할스트롬은 '개 같은 내 인생'(1985)과 '하치 이야기'(2009)에서 이미 특별한 강아지 사랑을 보여준 바 있다.

'베일리 어게인'의 주인공 베일리는 첫 번째 짧은 생을 마감한 후 가장 먼저 이든이라는 소년의 친구로 다시 태어났다. 짓궂고도 매력적인 레드 리트리버 베일리는 농장에서 팔리기 직전에 탈출해 나왔다가 트럭에 갇혀 탈진해 있을 때, 이든과 그의 엄마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되었다. 베일리와 이든은 이날 이후 남은 생을 둘도 없는 친구로 함께하게 된다. 자라서 고교 풋볼선수가 된 이든이 풋볼을 사랑하게 된 것은 베일리와 바람 빠진 공을 갖고 놀기 시작하면서부터였고 여자 친구 한나를 처음 만나는 순간에도, 술을 이기지 못한 아빠가 난폭해져 엄마를 폭행하려 할 때도, 이든을 괴롭히던 친구가 집에 불을 질러 위험에 빠졌을 때도, 베일리는 이든의 곁에 있었다.

세 번째 생에서 베일리는 경찰견인 셰퍼드 '엘리'로 태어나 두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총에 맞아 쓰러진다. 그 다음엔 여대생 마야의 마음을 읽어주는 유일한 말벗, 웰시코기 '티노'였다. 그리고 마지막엔 대형견 세인트 버나드 종으로 태어나 마당 강아지가 되었다가 결국 버림받은 '와플스'다. 유기견 와플스는 거리를 떠돌다가 중년이 된 한나와 이든의 재회를 돕고, 다시 이든의 충직한 벗이 되어 '버디'라는 새 이름을 얻는다. 이렇게 베일리는 이 영화에서 총 다섯 번의 견생을 경험하며 이든 곁으로 돌아왔다.

'1인칭 강아지 시점'인 이 영화에서 이야기의 전달자는 베일리이고, 우리는 땅과 가까운 높이에서 개가 보는 대로 보고 듣게 되는데 베일리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영화의 첫 대사는 무려 "삶의 의미는 뭘까?"였다. 스스로 질문하고 사색하는 강아지였던 베일리는 무척 짧았던 첫 번째 삶에서 아주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남았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런데 태어난 목적이 즐거움이었을까? 아냐. 그렇게 단순할 리가 없어."

영화의 원제는 "A Dog's Purpose"이다. 베일리는 어쩌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베일리 어게인'은 일종의 우화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서가 380여 년 전에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정리해 놓았으므로 정답을 이미 알고 있을 뿐 아니라, 한때 릭 워렌의 저서 '목적이 이끄는 삶'에 열광했던 우리에게 베일리의 질문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정답을 아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삶으로 답을 증명해내는 것이라면, 베일리는 우리에게 몇 가지 의미 있는 삶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나는 왜 태어난 걸까?"라고 자꾸 묻는 강아지 베일리는 그 답을 자신이 관계 맺는 가족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찾으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그들의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세심하게 관찰하며 냄새를 맡는다. 베일리가 보기에 어떤 사람은 화가 나고 우울해 보였고, 어떤 사람은 슬프고 외로워 보였고, 어떤 사람은 강한 그리움을 품고 있었다. 베일리에게는 그것이 눈에 보일 뿐 아니라 후각과 촉각으로 가장 먼저 느껴졌다. '개 답게' 말이다. 이 영화는 또한 이 '개 같은'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들을 찾고 의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볼 계기가 된다. 하여 세 가지 차원의 질문과 탐색이 가능하다. 한편으로는 베일리처럼 내 삶의 의미를 나의 목소리로 묻고, 동시에 타인의 필요에 대해 오감을 동원해가며 더욱 민감해져 보기도 하고, 타인의 도움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 나와 이웃들의 근본적인 갈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래서 베일리는 삶의 목적을 발견했을까? 마지막에 베일리는 이렇게 시작하는 문장을 말한다. "내가 개로 살아가면서 깨달은 것은 이거야..." 베일리가 얻은 답을 여기서 폭로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다만 베일리가 묻는 질문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점에 주목해 본다. "나는 왜 태어났지?"라고 묻던 베일리가 한 번 두 번 다시 아기 강아지가 되면서 이렇게 묻게 된다. "어? 왜 나는 '다시' 태어났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고 '자랑'했던 바울처럼, 우리에게 새 날이 매일 주어지는 것이 은총이고 기회라는 것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강아지 베일리의 '거듭 태어남'은 친숙해서 더욱 신선한 도전이다.



최 은 영화평론가·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부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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