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와 아픔을 이겨낸 체코 신앙인들

박해와 아픔을 이겨낸 체코 신앙인들

[ 땅끝편지 ] 체코 장지연 선교사<9>

장지연 목사
2023년 10월 24일(화) 13:20
모라비안형제단박물관을 관리하는 다니엘 지찬 장로(우측)와 함께 한 필자.
고둘라 숲속 예배처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는 필자.
필자가 한국의 교인들에게 체코 내 개신교인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1%라고 얘기하면 다들 놀라는 반응이다. 체코의 개신교회 역사가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오래 됐는데, 예상보다 개신교인의 수가 너무 적은 것 같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런데 체코 개신교회가 그동안 겪어온 굴곡진 역사들을 공부하게 되면, 왜 그런 결과가 나오게 됐는지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된다.

체코 개신교회는 1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약 300년 동안 신앙의 자유를 뺐긴 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 상황에서 체코의 개신교인들은 가톨릭으로 개종하든지 아니면 조국을 떠나야 하는 선택지에 놓이게 됐고, 체코 개신교회는 자연스럽게 약화됐다.

1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체코 개신교회는 신앙의 자유를 되찾아 재건의 길을 걸었지만, 1948년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41년 동안 핍박과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필자는 체코 목회자들을 통해 목회자 자녀는 취업에 제약을 받는 등 얼마나 많은 유무형의 핍박이 이뤄졌는지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목사는 어릴 적 가정에서 신앙 모임이 금지됐음에도 불구하고 몰래 집회를 열었다고 한다. 모임을 가질 때면 두 가지를 준비했는데, 그것은 꽃과 선물용 사탕이었다. 왜냐면 경찰이 수상히 여겨 검문할 경우 재빨리 생일 축하 모임인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서 였다.

구 소련이 해체되고 체코에 민주 정부가 들어선지 30여 년이 지난 현재 체코의 개신교회들은 부흥을 이루기보다 세속화의 물결에 맞서 고전하고 있다. 그루터기같은 1%의 신앙인들은 선조들이 지켜온 복음의 가치를 귀히 여기며 신앙을 지키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오스트라바 인근에 체코 신앙인들이 치열하게 그들의 믿음을 지키고자 애썼던 흔적이 유적지로 남아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두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스트라바에서 자동차로 40분 가량 걸리는 곳에 수흐돌 나드 오드로우(이하 수흐돌)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 모라비아형제단 박물관이 있음을 우연히 알게 됐다. 그리고 박물관을 방문해 그곳 책임자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1700년 대 초 수흐돌을 비롯한 인근 마을의 개신교 신앙인들이 가톨릭의 박해를 피해 집과 토지 등의 소유를 포기한 채 신앙의 자유를 찾아 350km 넘는 거리를 걸어서 독일의 작센 지방에 위치한 헤른후트까지 이르게 됐다. 체코인들은 여러 곳에서 모여든 사람들과 함께 신앙공동체를 세웠다. 난민들이 세운 공동체인 셈이다.

헤른후트 공동체 안에선 지속적으로 복음의 열정이 솟아올랐고 마침내 세계 각지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스스로 선교사의 길을 선택했다. 우리는 이들을 '모라비아형제단' 또는 '모라비안 선교사들'로 기억한다. 이들은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 에스키모인, 아프리카 대륙에 이르기까지 어느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섰다. 그들은 세상에 빛을 비추되 은밀히 행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루터나 칼빈처럼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아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의 말씀을 실천했다.

필자는 모라비아형제단에 대해 얕은 지식만 갖고 있었는데, 근대 개신교 선교운동의 선구자들이 됐던 이들의 뿌리를 찾게 됐다는 사실에 묘한 흥분을 느꼈다. 이후 필자의 사역지를 방문하는 개인 혹은 교회가 있으면, 이곳 수흐돌 마을로 안내해 체코의 개신교 역사와 모라비아형제단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나는 자연스럽게 모라비아형제단 전도사가 된 셈이다.

신앙의 자유를 빼앗긴 상황에서 모든 소유를 포기하고 고국을 떠나야만 했던 체코의 개신교인들이 있었는가 하면, 체코 내의 숲속같은 은밀한 장소에서 모임을 이어간 개신교인들도 있었다. 오스트라바에서 자동차로 1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고둘라 숲속 예배처'가 있는데, 이곳엔 체코 신앙인들이 치열하게 그들의 신앙을 지킨 흔적이 남아 있다.

가톨릭화로 인해 체코의 개신교인들은 신앙의 자유와 함께 예배당도 빼앗기고 말았다. 그들은 은밀히 모여 예배를 드릴 장소를 찾았고, 체코와 폴란드 국경 부근에 몇 곳의 숲속 예배처가 생겨났다. 당시에는 길이 나있지 않았고 그들만 알 수 있는 표식이 있었다고 한다.

마침내 신앙의 자유를 찾게 돼 더 이상 숲속에서 모일 필요가 없게 되자 숲속 예배처들은 방치됐다. 그중 고둘라 숲속 예배처는 마을에 위치한 교회가 선조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기념비를 세우고 유적지로 관리하는 곳이다. 지금도 이곳에는 많은 체코 개신교인들이 찾아와 야외 예배를 드리는데, 필자도 한국인들을 이곳으로 안내해 예배를 드리며, 체코 신앙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이처럼 체코에는 수많은 굴곡진 종교개혁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지금은 1%라는 미약한 수지만, 이들이 낙심치 않고 선조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복음의 진리를 잘 지키고 부흥을 이루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장지연 목사 / 총회 파송 체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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