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에서 출발한 선교

마이너스에서 출발한 선교

[ 땅끝편지 ] 일본 강장식 선교사<6>

강장식 선교사
2022년 11월 29일(화) 08:14
제암리교회기념관 앞에서 일본인교우들과 함께.
나가사키 순교자 기념탑 앞에서 가족사진.
"아이구! 일본에 왜 또 왔어. 그렇게 오지 말라고 했는데!" 초등학생 아들 둘을 데리고 총회 파송 일본선교사 대회에 처음으로 참석했을 때 선배 선교사가 반기며 한 말이다. 그리곤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에 와서 자식도, 조국도, 믿음도 빼앗겼다는 사람 무지 많아. 알아 들을 라나…."

환영인사말 농담 치고는 진지하게 들렸다. 일본의 풍토와 문화와 관습에 농도 짙게 절여져 '일본화'가 진척되면, 한국적 정서를 가진 정감 있는 아들과 딸의 모습은 사라질 것이고, 학교와 사회에서 만나는 99%의 넌 크리스찬과 어울려 살다 보면 믿는 자식의 자리를 벗어날 것이고, 일본정신을 요구 받는 사회생활 분위기 따라 살다 보면 자기 정체성을 숨죽이며 감추게 되어져 애써 기른 자식이 민족과 조국의식도 없는 어정쩡한 자식이 되고 만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필자의 어린 두 자녀의 미래를 걱정해서 한 말이라 고맙기도 했지만, 지나친 말로 여겼다. 그런데 15년 넘어 이곳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보니 후배선교사들에게 필자가 해주고 싶은 말이 되어 버렸다. '일본화'라는 매우 독특한 일본의 작용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력하다는 것을 그 선배 선교사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비기독교적 문화와 가치관이 팽배해 지는 세속화는 물론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개인주의, 현세기복주의, 황금만능사상이 강하고, 교회와 복음에 대한 몰이해와 부정적 선입관은 일본선교의 골리앗과 같은 큰 장벽이다.

많은 이들이 아는 바와 같이 일본 기독교인은 총인구의 1%대이다. 일본의 기독교 역사가 미국보다 70년, 한국보다 230년 길다. 일본에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한 것은 천주교는 473년 전에, 개신교는 163년 전이었다. 이 장구한 일본 선교의 역사와 헌신을 알기에, 한국 교우들은 필자를 비롯해 일본 선교사들에게, "일본은 왜 그렇게 전도가 안되고 교회 부흥이 어렵습니까?"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기독교 복음에 대한 일본의 불수용성은 다른 타문화권에서 찾아 보기 매우 어려운 현상이다.

기독교 금교령이 내려진 1614년 이전에는 당시 추정인구 1200만 명 중에 3% 이상을 차지하는 37만 명 정도의 천주교 신자가 있었다고 한다. 몇 지방 영주는 기독교 나라를 표방하기도 했다. 금교령 아래에서도 여전히 확산되는 기독교에 대해 막부가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강한 통제와 잔인한 박해를 하면서 기독교는 일본에서 반체제 종교의 위치로 전락하고 만다. 기독교가 사교라는 생각을 철저히 주입시켰고, 다른 종교도 통치를 위한 수단의 하나로 취급하였다. 순교가 사교의 광적인 부정적인 유산이라는 인식에 물든 이 토대 위에서 기독교선교는 시작되었다. 프로테스탄트 선교는 제로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마이너스로부터 출발했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가운데 일본기독교는 전쟁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죄과를 범하고 말았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순교와 헌신의 피와 땀을 이 열도에 쏟아 부었다. 현재 일본에는 약 600개의 기독교계 학교가 있으며, 학생수는 5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종교 자체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으나 교육과 윤리에서는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세계적으로 그 예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미미한 선교적 결과이지만, 오묘하신 성령께서는 복음의 씨앗을 삼켜버리는 것 같은 깊고 넓은 늪과 같은 이 열도 구석구석에서 우리의 상식을 넘어 역사하신다.

어느 날 신학교에 진학해서 목회자의 길을 걷고 싶다며 일본 청년이 교회를 방문했다. 기독교와는 전혀 접촉 없이 장례회사 직원으로 일하며 30대까지 잘 살아 왔다고 한다. 장례준비만 하고 되돌아가면 되는 자신을 어느 크리스찬 유가족들이 더 있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거절을 거듭하다가 손님에 대한 예의상 할 수 없이 유가족들 틈에 끼여 처음으로 찬양과 기도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그 순간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마음 속에서 가득 차 올라 교회를 찾아가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고, 4년 전에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아주 작은 교회에서 봉사를 하여서 성직자의 어렵고 힘든 현실을 너무도 잘 알지만, 하나님과 더 가까이 지내는 길은 목회자가 되는 것뿐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고 들은 바도 없지만, 처음 들었던 찬양과 성경 말씀이 순식간에 그의 영혼을 사로잡은 것이다. 말씀과 찬양을 통해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머물면 '일본화, 세속화'라는 강력한 물결이 밀려와도 우리 자녀들과 교우들의 영혼은 흔들릴 수 없음을 믿고 그 열매를 보아 왔다. 일본은 토양적으로 깊고 넓은 늪과 같아 외부로부터 뿌려진 그 어떤 씨앗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고 변형시키고 마는 곳이지만, 영혼들을 찾아가셔서 구원해 내며 복음의 증거자들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선교는 지금도 역사하고 있음을 이 메마른 땅에서도 자주 본다.

강장식 목사 / 총회 파송 일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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