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눈물로 마음 나누던 소녀

기도의 눈물로 마음 나누던 소녀

[ 땅끝편지 ] 동티모르 이대훈 선교사 6. 의미로 담는 선교

이대훈 목사
2022년 03월 08일(화) 08:03
나의 마음을 무척이나 아프게 했던 페비아나 까엣(2010년)
선교현장에서의 만남은 기대로 남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기대처럼 기분 좋은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크고 작은 만남이 끊임없이 과제를 안겨준다. 선교사들과 만나 얘기를 나누다 보면 나의 사역 내용이 많기는 하다. 그것은 끊임없이 현장을 만나고 현장의 요구에 응답하다 보니 하나 둘 모아진 응답의 산물이다. 그러나 필자는 한 마디 한다. "하는 데까지 합니다. 나에게도 안 되는 것은 안 됩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현장의 소리에 경청하고 나의 문제로 수용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대화와 수용 가운데 한 가지 기준이 있다면 '쉽게 약속하지 말자. 그러나 약속을 했다면 반드시 지키되, 그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참여한다(지속적 수용성)'이다.

페비아나 까엣(Feviana Caet)!, 지금은 몇 살이나 되었을까? 이제는 스무 살이 넘은 아가씨가 되었겠다. 이 아이는 나의 마음을 무척이나 아프게 했고, 마음이 아파서 이 아이의 인생에 들어갈 수 있다면 뭔가라도 하고픈 절박함을 갖게했던 아이였다. 2010년 페비아나를 처음 만났을 때 이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그때 키가 고작 내가 쪼그리고 앉은 정도의 높이였다. 흔히 결핵성 후만증(척추 후만증;곱추병)은 척추가 휘어 등이 구부러지고 튀어나오는 증상을 말하지만, 페비아나가 가진 질병은 이와 반대 증상으로 가슴뼈가 앞으로 돌출한 상태였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나타난 증상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부모가 말한다.

처음 만났을 때 이 튀어나온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는데 얹은 손바닥에 아이의 숨 쉬는 것이 '팔딱팔딱' 그대로 느껴왔다. 기도하면서 눈물이 나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 그리고 한국에 전화를 걸어 의사한테 상태를 말하며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했을 때, 답변은 "선교사님, 이 아이 칼 대면 죽습니다"였다. 기도하며 생명이 연장되기를 바라는 것 외에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생각할 때마다, 기도할 때마다 안타까워 눈물로 마음을 나누었던 아이였다.

그리고 5년 뒤 지역에 교회 봉헌식이 있어 갔다가 이 아이를 다시 만났다. 키는 5년 전이나 별 차이가 없었지만 외모에서는 더 자란 모습이 보였다. 반갑기도 했지만 다시 가슴이 저려왔다. 그리고 부모에게 위로라고 한 말이 "페비아나가 원하면 딜리로 보내세요. 공부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했다. 페비아나를 생각하면 무작정 뭐라도 해 주고 싶은 안타까운 마음에 약속을 했고, 어떻게든 그 약속을 지켜주고 싶다. 이미 성인이 되었을텐데.

나의 메일 서명란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기록돼 있다. "인생은 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의미로 산다."(Life not be lived on bread alone, but on meaning.)

선교사로 인생을 살다 보니 과연 '선교사다운 선교사는 어떤 선교사일까?'라는 질문이 생겼다. '나는 어떤 선교사로 마무리될까?, 어떤 선교사로 비쳐질까?' 생각하다 보니 구체적으로 어떻게 떠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선교현장에서 고민하며 참여하는 모습에서 '의미'를 찾고 또 그 '의미'를 남기며, '의미'로 장식하는 인생이기를 바라는 바람이 생겼다. 이 '의미' 때문에 선교사로 살고 있는 것이라 확신한다. 선교현장에서 내가 가진 그 '의미'로 인생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 누군가를 만난다면 나는 그래도 나의 인생에 아쉬움이 없겠다는 생각이다.



이대훈 목사 / 총회 파송 동티모르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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