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우리 부자 됐다"

"와~ 우리 부자 됐다"

[ 땅끝편지 ] 파라과이 신현광 선교사 (4)

신현광 선교사
2021년 09월 21일(화) 08:26
2002년 신현광 선교사 가족 사진.


학교 사역을 시작 할 때 어려움이 많았다. 교회와 학교, 사택은 한 울타리 안에 있었다. 몇 년 동안 교실이 부족하여 우리 집 거실을 벽으로 나눠 2개 학급의 교실로 사용하였다. 우리 집은 침실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용공간이 되었다. 두 딸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울타리 밖을 나갈 일이 없었다. 학교를 가고, 심지어 주일에 교회를 가도 울타리 안이었다. 이들의 큰 기쁨은 가끔 이 울타리를 벗어나 브라질에 가는 것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국제여행이 아니다. 우리 집에서 4km만 가서 다리를 건너면 브라질 도시 '이과수'다. 우리 동네다.

어느 공휴일 아침 아이들의 옷과 신발을 사러 브라질에 가기로 했다. 작은 딸은 우리보다 미리 준비하고 승합차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브라질에서 새 옷을 입어보고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니 우리도 좋았다. 새 옷을 사자마자 작은 아이는 또 승합차에 미리 가서 앉아 있었다. 신발가게에서 운동화를 신어보며 "이거 딱 맞아, 편해" 하며 발을 바닥에 탁탁 디디며 좋다고 했다. 이번에도 먼저 자동차로 가는 아이를 보니 걸음걸이가 좀 이상해 보였다. 점심은 파라과이에 있는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식당에 도착했을 때 작은 아이가 심하게 절뚝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너 왜 그래?" 내가 물었다. 작은 아이는 놀라서 울면서 "아니, 아무렇지도 않아" "어디 보자" 무서워서 피하는 아이를 안고 신발을 벗겼다. 아무것도 없었다. 양말을 벗기자 "아이고 이놈아~"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발바닥에 압정이 아주 깊숙이 박혀 있었다. 내가 손으로 잡아 빼려는데 쉽게 빠지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 압정을 빼냈다. 우리 집을 교실로 사용했기 때문에 압정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날 아침 브라질에 가는 것이 너무 좋아 서두르다 발에 압정이 박혔다. 자기 혼자 빼려고 하니 아파서 뺄 수 없었단다. 병원에 가면 브라질에 가서 새 옷과 신발을 살 수 없으니 참기로 했단다. 우리 마음이 더 아팠다.

한 해가 지나면 학년이 올라가고 또 다른 교실이 필요하였다. 학교의 골조를 세우고 한 칸씩 벽을 세우며 교실을 만들었다. 몇 년 후 각 학년마다 모두 교실을 마련한 후에야 더 이상 우리 집 거실을 교실로 사용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우리 집은 너무 낡고 오래되어서 비가 새는 집이었다. 벽에 금이 가고 전선이 낡아 불이 붙어 타들어가는 일이 있었다. 교실로 사용하기 위해 막아 놓았던 벽 때문에 좁고 답답했다. 식탁도 없이 헌 문짝을 나무상자 위에 올려놓고 식탁보를 덮어 사용했었다. 그동안 집을 수리하는 일은 우선수위에서 밀렸다. 경제적 이유로 엄두를 못 내다가 큰 결심을 하고 수리를 했다. 거실의 막힌 담을 헐고, 처마 밑 빨래하던 조그만 공간에 간이 지붕을 덮고 식당을 만들었다. 거실을 가로막았던 담을 헐고 나니 아주 넓어 보였다.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이들은 "우와~ 우리 부자 됐다!"고 외쳤다. 사실 나도 좋았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 불편한 마음이 생겼다. 자기 자신이나 가족이 좀 편하다고 생각되면 죄의식을 가지게 된다. 주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이 고생할 때 마음은 편안하다. 고국을 방문했을 때 "선교사님 얼굴이 좋아지셨네요"라는 말을 들으면 무슨 죄를 지은 것처럼 죄송했다.

편안한 것이 불편했다. 비가 새고, 좁고 답답하고 식탁을 문짝을 덮어놓고 사용할 때에는 편안하던 마음이 집수리를 하면서 불편한 마음이 생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교회가 좋아지고 학교에 시설이 많아질 때에는 기쁘고 편안한데 말이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도 함께 같이 기뻐하지 못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 아닌가? 함께 기뻐해야겠다. 그날 저녁에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 우리 진짜 부자 같다!"



신현광 목사 / 총회 파송 파라과이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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