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와 배움이 선교의 길 열어

친교와 배움이 선교의 길 열어

[ 땅끝편지 ] 체코 이종실 선교사6

이종실 선교사
2021년 02월 25일(목) 10:48
코빌리시교회의 '다민족 교회의 밤' 행사를 체코 국영방송이 취재하고 있다.
프라하 코빌리시교회 슈토레크 목사와의 만남은 내 인생의 이정표가 됐다. 설교와 목회, 심지어 마지막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 조그마한 일에서부터 행동 하나 하나에 이르기까지 체코 개혁교회의 전통이 배어있는 그를 통해 나는 개신교의 정체성과 선교과제가 무엇인지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동역을 시작하기 전 교제했던 6년 동안 그는 내 인생의 롤 모델로 마음 속에 자리 잡았다.

그는 누구에게나 좋은 목사가 아니었다. 그는 체코 개신교회 안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었다. 그의 동료가 되고 그의 상관이나 부하가 되고 그의 교인이 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마치 '게토(ghetto)화된 체코교회'에게 그는 '공공의 적'처럼 비춰질 정도였다.

그의 목회 슬로건이 '문턱 없는 교회'였다. 사회학자와 종교학자들 그리고 모든 언론은 '체코 사회가 유럽에서 가장 탈 기독교화됐다'고 말한다. 체코교회는 1420년에 '예배는 라틴어가 아닌 자신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자국어(체코어)로 해야 한다.', '성만찬은 예수님이 시행한 그대로 떡과 잔을 모두 받아야 한다'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고유의 신앙고백을 발표했다. 오늘날 세계 개신교들의 공통된 신앙전통이 바로 1420년의 이 신앙고백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교회를 자유롭게 지상에 세운 것은 1420년부터 무려 500년 후인 1918년, 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독립하면서 부터다. 500년 동안 인정받지 못한 '기독교 이단'으로 지상에서 생존하면서 그들은 스스로 게토화되고 폐쇄적인 집단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체코 교인들과 함께 가족같이 친밀한 분위기에서 살면서도, 문득문득 '개혁 교도들의 종친회' 같은 느낌을 받아 그들과 분리되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슈토레크 목사는 교회의 폐쇄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끊임 없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전도가 되지 않고 자신들끼리만 성만찬을 하는 예배 모습을 그는 '손님 없이 우리끼리 배 터지게 먹고 마시며… 기독교 전통은 대본을 따르는 연극놀이에 불과하다'고 설교했다. 교회는 자신을 보호하는데 모든 관심을 기울여 자발적으로 게토화됐고, 그 결과 사회에서 신뢰를 상실했다고 항상 비판했다. 그의 목회적 씨름은 마치 초대교회 사도들이 직면했던 논쟁의 현대판 같았다. 500년 동안 기독교 이단으로 낙인찍히고도 지켜온 자신들의 신앙전통에 조금도 곁을 내어주지 못하는 교회 정서와 이것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내려는 슈토레크 목사 간의 대립은 인간관계와 교회 활동에서 언제나 갈등으로 표출됐다.

나는 선교 현장에서 '할례'가 아닌 '믿음'의 재발견이 이방인 전도에 동력이 된 초대교회의 논쟁처럼, 체코교회의 게토화된 폐쇄성 극복이 체코 선교의 동력임을 알게 됐다. 이 시각이 열리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슈토레크 목사의 목회적 씨름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당시 외국인 체류자들의 급증이 사회적 이슈가 됐기 때문에, 나는 코빌리시교회를 다민족 교회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체코 교인들의 정서적 감정선을 넘지 않으면서 동의를 이끌어 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이 제안을 구두 합의가 아니라 당회 의결을 거쳐 교회 비전과 실천으로서 공식화하기 위해 많은 토론을 거쳤다. 2000년 1월 코빌리시교회 당회와 필자는 '프라하 코빌리시교회의 체코-한국 기독교인들의 협력 상황에 대한 선언문'을 양 교단에 공문으로 발송했다. 2003년 6월 슈토레크 목사는 세상을 떠났지만 이 사역은 그 선언에 따라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체코어를 하는 아프리칸과 다른 유럽인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아시아인들이 예배와 성만찬과 세례를 함께하고, 아프리칸과 한국인 교인들이 공동의회 투표에서 당회원으로 선출되기도 한다. '문턱 없는 교회당'의 실천을 지켜보던 이웃 초등학교 교장이 '문턱 없는 교회'가 세상의 위로와 소망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하여 어느 날부터 교회를 출석하다가 세례를 받았다. 세상이 성육신 없이 복음을 들을 수 없었듯이, 탈 기독교화된 사회는 교회를 통하지 않고 복음을 믿을 수 없음을 날마다 체험하고 있다.

이종실 목사 / 총회 파송 체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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