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9일~1월 3일

12월 29일~1월 3일

[ 가정예배 ]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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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4일(수) 16:13

월-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신앙
본문 : 수 18:1~10
찬송 : 347장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점령한 후에 그 땅을 지파별로, 기업대로 분배했는데 다섯 지파는 벌써 원하는 땅을 다 차지했다. 그런데 나머지 일곱 지파는 자신들의 땅을 차지할 생각을 하지 않고 불안과 두려움으로 인해 주저하고 있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축복도 약속하셨지만, 결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그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첫째, 거룩한 사명을 가져야 한다.
 
3절을 보면 힘을 합쳐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차지해야 하는데 왜 머뭇거리고 지체하는가? 지체한다는 것은 용기를 잃었고, 맥이 빠졌다는 의미이다. 성공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결단을 해야 한다.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을 향해서 전진해야 한다. 어쩌면 어느 정도 성취하니까 그냥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조금 살만하면 금방 사명을 잃어버리고 안주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 살만한 정도에 인생의 목표를 두어서는 안 되고, 축복받는 인생을 살겠다는 목표로 지체하거나 머뭇거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둘째, 구체적인 꿈을 그려야 한다.
 
4-8절의 내용을 보면 여호수아는 "각 지파에서 세 명씩 선정하여 그 땅으로 두루 다니며 그것을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너희를 위하여 제비를 뽑으리라"고 한다. 땅을 사는 사람이 가보지도 않고 산다면 사기를 당하기 쉽다. 그냥 막연하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두루 다니면서 확인을 하고, 조사도 하고 난 뒤에 그림을 그려야 한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나 우리의 인생을 설계를 할 때도 막연하게 해서는 안된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되 히브리서 11장 6절 말씀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며 상 받을 것과 응답 받을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셋째,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왜 나머지 일곱 지파가 하나님이 약속한 땅을 얻으려고 시도하지 않았는가? 땀과 희생이 없이 이미 기업을 얻은 다섯지파에 붙어서 적당히 살기를 원했다. 이것은 책임감이 없고 자기가 맡은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인생이다. 골로새서 3장 23절 말씀처럼 사명을 맡았으면 마음을 다하고 주님 앞에서 하듯이 최선을 다하고 성실해야 한다. 새해에는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믿고, 구체적인 축복의 그림을 그려보자.
그리고 그림대로 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 모두가 각각 체험하기를 원한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약속의 땅을 얻기에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우리의 삶에 거룩한 사명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비전을 구체화 하게 하시고, 약속의 말씀을 믿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안병경 목사
진리교회


화-빈 방 있습니까?
본문 : 눅 2:1~7
찬송 : 289장

성탄시즌에 등장하는 연극 중 대표적인 것이 '빈 방 있습니까?'라는 작품이다.
 
연극 '빈 방 있습니까'는 미국에서 있었던 실제이야기를 극화한 것으로, 1980년 성탄절 무렵 한국일보 한 구석에 실린 '월리의 성탄절'이라는 짤막한 칼럼을 보고 영감을 받은 연출가 최종률씨가 극화한 것으로 무려 34년 이란 긴 세월 동안이나 계속 공연되어 왔다. 이 연극의 클라이막스는 어느 교회 성탄 발표회에서 여관주인 역을 맡은 '덕구'라는 아이가 자기에게 주어진 아주 간단한 대사, 즉 방을 구하는 마리아와 요셉에게 단지 '빈 방 없어요'하고 돌려 보내면 끝날 간단한 대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표출된다. 그렇게 연극을 망친 후 덕구의 독백에 이런 내용이 있다(덕구는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내가 연극 망쳐 놨어요. 그치만 어떻게 고짓말을 해요…우…우리 집엔 빈 방이 있걸랑요. 아주 좋은 방은 아니지만요. 근데 어떻게 에수님을 마구간에서 낳으라구 그래요. 난 정말 에수님이 우리 집에서 태어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에수님이 내 방에서 태어나신다니! 얼마나 신나요! 그럼요, 난 내 방도 쓸구요, 걸레 빨아 갖구 방도 닦구요, 내 방 비워 놨을 거예요. 에수님…사랑해요. 에수님이 최고에요. 에수님은 내 죄 땜에 죽으셨잖아요…"
 
우리 삶 속에 아기 예수님은 찾아오신다. 그런데 우리의 삶의 분주함이 아기 예수께 '빈 방 없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는가? 사업상의 바쁜 일정에 늘 쫓기는 가장이라는 이유로, 애들 학원비며, 등록금이며 온갖 세상 걱정, 근심에 쌓인 주부라는 이유로, 진학준비 때문에, 학원 진도에 쫓기는 학생이라는 이유로, 취업준비로 바쁘다는 이유로 우리는 늘 주님 모실 빈방이 없다. 이게 우리들의 모습 아닌가?
 
정작 아기 예수는 우리에게 오셨지만 우리는 아기 예수를 내 맘 중심이 아니라, 말구유 같은 곳에 누이고 있다. 그럼에도 구원을 향한 행보에야 무슨 영향이 있으랴마는 단지 우리 구주를 알아보지 못하고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보여지는 탓에 마음 속에 눈물이 흐른다. 그렇게 갈 곳 없는 아기 예수는 짐승들의 먹이통을 침대 삼아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여러분은 주님 모실 빈방이 있는가? 어디 예수님 들어갈 만한 빈방 없는가? 주님 모실 마음의 빈방을 준비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다.
 
오늘의 기도
 
오늘 우리의 삶과 마음에 주님 모실 한칸의 작은 방도 없이 살아감을 봅니다. 모든 자리에 우리 주님 오심을 맞을 방을 준비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원인섭 목사
현저교회


수-임마누엘의 생활
본문 : 마 1:23
찬송 : 104장

미국의 유명한 설교가였던 존슨 목사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큰 아들 하워드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크리스마스 이브 날 집안 분위기는 침울하기만 했다. 그때 둘째 아들이 불쑥 이렇게 말했다. "하워드 형이 하늘나라 가서 처음 크리스마스를 지내겠지?" 막내가 이렇게 답했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마! 하늘나라에선 매일 크리스마스래."
 
어린 막내의 말을 듣고 존슨 목사는 얼굴을 번쩍 들었다.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그러므로 어떤 자리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곳이 어디든 주님이 함께 하면 두려울 것이 없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언제나 영원한 실제요 현재이다. 이 현재이신 예수님이 오늘 믿는 성도들과 성령으로 항상 함께 계신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은 33년 간 함께 하신 그분을 만나고, 보고, 말하고, 교제하며 살았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고 하신 말씀은 바로 '임마누엘'의 성탄을 표현한 것이다.
 
죄인들에게 임마누엘은 영원한 위로요 소망이요 구원의 복음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역사 속에 있는 자기 백성과 함께 계신다. 예수님은 '흑암에 앉은 자들'에게 큰 빛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앉은 자들'에게 비추는 생명의 빛이다. 그러므로 믿는 성도들은 임마누엘의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어두운 세상에서 목자 없는 양 같은 인생들에게 '임마누엘', 이 보다 큰 기쁨의 소식이 있을까? 하지만 임마누엘이 누구에게나 기쁜 소식은 아니다. 죄에 머물기를 원하고 세상 것에 분주하여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없는 이들에게는 이것이 오히려 심판의 소리가 된다.
 
오늘 임마누엘의 소식이 기쁨이 되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나팔 소리가 더디 울리기를 바라고 있다면, 잘못된 자리에 있음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것이다.
 
신자이면서 신앙생활에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 같지 않게 살면 안 된다. 가령 신앙생활 가운데 기도가 없다든지, 찬송과 예배와 기쁨, 감사, 사랑, 평화, 친절이 없다든지, 말씀과 은혜의 나눔이 없다면, 임마누엘의 생활이 아니다. 삶을 통하여 임마누엘이 나타나도록 성령에 사로잡힌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오늘의 기도
 
임마누엘의 하나님, 우리의 신앙으로 이웃과 함께하는 복된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태익 목사
담양읍교회


목-부지깽이를 의지하지 말라
본문 : 사 7:1~9
찬송 : 543장

모 항공사 40대 여성 부사장의 철없는 행동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결국 그 항공사의 회장인 그녀의 아버지가 머리 숙여 사과하는 모습을 보았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을까?
 
그녀는 돈, 재벌, 권력의 힘을 너무 믿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아버지가 나서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많다. 돈, 권력,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것들이 비일비재하다.
 
남쪽 유다 아하스왕 시절이었다. 당시 그 지역에는 앗수르가 번성하여 이웃나라들을 침략 약탈하고 있어서 많은 나라들이 불안에 떨고 있었다. 북이스라엘 왕 베가와 아람왕 르신은 두 나라 연합하여 앗수르의 침공을 막으려는 계획을 세웠고 유다왕 아하스에게도 연합할 것을 제의했다. 아하스가 이 제안을 거절하자 두 번에 걸쳐 남쪽 유다를 침략했고 많은 피해를 입혔다. 이 때 유다왕 아하스는 이 두 나라의 연합군을 물리치기 위해서 앗수르와 손을 잡았다. 이때부터 앗수르의 종교, 성전, 잘못된 풍습들이 들어와서 유다의 국운이 쇠퇴하는 빌미가 되었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와 그의 아들 스알야숩을 통하여서 아하스왕에게 말씀을 선포하게 했다.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라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찌라도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부지깽이를 써 본 사람들은 알고 있다. 부지깽이의 끝부분, 불을 쑤셔서 타다가 꺼진 검게 그을린 부분이 얼마나 힘이 없는지. 건드리면 툭하고 부러져 버리고 만다. 그것이 연기 나는 부지깽이다. 이것은 지팡이와 막대기가 될 수 없다. 이것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유다 나라에 있어서 북왕국 이스라엘, 아람, 앗수르는 연기나는 부지깽이에 불과하다. 나라를 맡기고 의지할 지팡이가 아니다. 그런데 유다왕 아하스는 이 쓸모없는 부지깽이를 잡고 의지하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믿음에 굳게 서면 모든 것을 굳게 세워 주실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어려울수록 하나님을 더욱 굳게 잡고 의지해야 한다.
 
오늘 나는 무엇을 잡고 있는가? 혹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들을 붙잡고 그것을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믿음의 사람들은 연기 나는 부지깽이를 우리의 손에서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을 붙잡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되어서 우리의 의지가 되시고, 우리를 세워주시고, 지켜주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그동안 내가 잡고 의지했던 부지깽이를 내려놓습니다. 하나님을 잡고 의지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지팡이와 막대기가 되셔서 우리를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휘동 목사
포항송도교회


금-그리스도인의 감사
본문 : 합 3:17~19
찬송 : 310장

한해를 마무리 하고 새해를 맞으며 먼저 하나님 아버지께 진실된 감사를 드리자. 우리들 자신이 남들이 당하는 불행을 당하지 아니하여서 혹은 우리의 가업이 번창하거나, 우리의 자녀들이 건강하여서 드리는 상대적 감사가 아니라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절대적 감사를 드리자. 이 기쁨의 감사는 나와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고 이웃과 사회, 그리고 온 인류를 구원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인생의 깊은 통찰을 통해 얻어지는 진실한 감사이다.

본서의 저자 하박국은 선지자였을뿐 아니라 제사장이었다. 그가 처한 상황은 요시야 재위 B.C 640-609년 말기에 바벨론, 메대, 스기디아 연합군에 의하여 니느웨가 함락된 이후 참담한 현실 가운데 있었다. 선지자는 도처에 횡행하는 악을 보고 하나님께 불만을 토로할 뿐 아니라 왜 그와 같은 죄악을 거룩하신 하나님이 침묵하시는지에 대하여 따지고 있다. 때로 우리도 자신이 당하는 역경에 대하여 원인을 알지 못하여 고통중에 처할 때가 있다. 하박국 선지자는 자신이 풀수 없는 어려운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과 씨름을 한다. 우리도 그렇게 씨름하자. 선지자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하여 악의 존재를 이용한 하나님의 공의와 능력을 깨닫고 본문의 말씀처럼 감사의 시를 올리고 있다.
 
하박국 선지자의 믿음은 현실적으로 우리의 모든 것, 즉 먹을 음식마저 없을 때라도 하나님 안에서 그 구원을 기뻐할수 있다고 말한다. 욥만큼 시련을 당한 사람은 흔치 않다. 욥은 자신이 당하는 역경의 원인을 잘 알지 못하여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하나님께 원망을 한다. 하나님은 욥을 만나주시며  욥은 시련과 연단에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음을 깨닫고 깊은 믿음의 자리로 인도함을 받게 된다.
 
그는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고백한다. 하박국 선지자나 욥은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섭리와 경륜을 자신들이 처한 고난을 통하여 깨닫게 되었으며 오히려 회개와 감사를 통한 영광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믿음에서 나오는 감사이다. 비록 우리의 가업이 번창하지 못하며 자녀들이 잘 풀리지 않아도, 기대한 만큼 소득이 없어도, 직장에서 밀려나고, 건강하지 않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바로 이런 것이어야 한다.
 
오늘의 기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내어주신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남엽 목사
서대문구교경협 경목


토-그 꿈 이루어 주옵소서
본문 : 창 37:1~11
찬송 : 490장

야곱은 늘그막에 얻은 아들 요셉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보통의 집안에서도 부모로부터 온갖 사랑을 다 받는 막내들이 버릇이 없다. 요셉 또한  참으로 버릇이 없는 젊은이 가운데 하나였다.
 
첫째, 열일곱 살이나 된 요셉은 고자질쟁이였다. 야곱은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했다. 17살이면 당시에는 결혼을 할 나이다. 아버지 야곱이야 요셉의 모든 것이 좋으니 그 고자질 듣고 형들을 혼내곤 했을 것이다. 그러니 형들의 입장에서 보면 요셉은 미운 오리 새끼였다.
 
요셉의 두 번째 못된 성질은 이기적이었다는 것이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과 배려로 인해 혼자만 채색옷을 입고 다녔다. 채색옷은 위에서부터 발목까지 내려오는 길고 화려한 옷이다. 형들은 목동 일을 할 때에 요셉은 긴 옷을 입고 다니며 일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러저러한 일들로 인해 형들의 심기는 매우 불편했다. 형들은 요셉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다"고 쓰여 있다. 이 말은 '서로 인사도 안했다'는 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요셉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버지와 형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고 이를 자랑하고 다녔던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청년 요셉에게 하나님께서는 꿈을 주셨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주의해야 한다. 세상은 '꿈을 꾸라' '꿈을 가지라'고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꿈은 내가 꾸고 싶어서 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는 것이라고.
 
신앙의 꿈은 다르다.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 주옵소서"가 정답인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서는 꿈을 꾸라고 말하는 것이 맞다면, 기독교 신앙에서 볼 때는, '하나님 저에게도 요셉처럼 꿈을 보여 주세요'가 맞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무엇이겠는가? 우리 한 명 한 명을 이 땅에 내려 보내시면서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일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내려 보내시면서 온 인류의 구원을 꿈꾸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그 꿈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 가셨다.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꿈도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우리 모두 주님 주시는 그 꿈을 향하여 한 걸음씩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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