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12월 8~13일

[가정예배] 12월 8~13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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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04일(목) 11:27

월-하나님 뜻대로 신앙생활하기
본문 : 막 16:1~8
찬송 : 425장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 때 그것이 나의 뜻인지 하나님의 뜻인지 분별하기가 참으로 어려울 때가 많다. 많은 크리스찬들이 신앙에 열심을 내기는 하나 어떤 때는 자기 열심이 지나쳐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신앙생활을 할 때가 있다. 심지어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모습이 오늘 본문 속에 나오는 세 여인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그들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 보여주는 헌신은 눈물겹도록 지극정성을 다한 것이었다. 그들은 안식일 전에 예수님을 장사지내기 위한 모든 준비를 해둔다. 향품을 사고 장례에 필요한 여러 물품을 샀을 것이다. 그것은 미리 예상하고 있지 않았기에 다급하게 준비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한 후 안식일이 지난 첫날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 예수님의 시신을 넣어둔 무덤을 향해 간다. 그리고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주리요"라고 말한다. 주님을 향한 고민과 열정과 정성을 충분히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을 그들은 놓치지 있다. 성경을 통해 한 번도 주님은 당신의 장사지냄을 부탁하신 적이 없다. 주님은 공관복음이 공동으로 증언하는 대로 세 번의 수난예고를 통해 당신이 십자가에 고난 받을 것과 아울러 3일 만에 부활할 것을 고지하셨다. 그러므로 주님의 장사지냄은 처음부터 사람들이 걱정할 것이 아니었다. 주님은 하나님의 뜻과 주님의 예언대로 부활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즉, 생명의 부활이 주님의 뜻이지 죽음의 장사가 주님의 뜻은 아니었던 것이다. 열성적인 세 여인에 의해 주님은 생명의 부활이 아닌 죽음의 상징으로서의 장사지내져야 할 운명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신앙생활에서 있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우리는 늘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게 된다. 그것도 엄청난 열정과 정성을 쏟아 부어가면서 말이다. 우리가 길을 갈 때에 방향이 옳다면 시간이 걸려도 그 목적지에 도달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틀린 방향으로는 아무리 열정을 쏟아부어도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신앙생활은 결국 인간적인 목적만 달성하는 길로 가게 되어 있다. 그것도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말이다. 틀린 길을 가면서 빠르게 달리게 된다면 점점 목적지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자기 열정과 열심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과 점점 더 멀리 가게 됨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분별하는 영을 주셔서 내 생각과 경험과 의지대로 믿음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하시는 길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원인섭 목사
현저교회


화-계약의 백성으로서의 삶
본문 : 출 19:7~15
찬송 : 279장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얻는 경험들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계약'이다. 계약은 일방적이 아니라 신앙적이고 인격적인 의미에서도 상호 의사가 존중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셨고 그들의 의사를 물어보셨다. 모세는 하나님의 의사를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서 전달했고, 장로들은 백성들과 함께 자신들이 어떻게 응답해야 될 것인가에 대해서 의논을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약에 의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계약의 내용을 제시한 그대로 따르겠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계약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삶이 있다.
 
첫째, 성결하게 하며 옷을 빨게 하신다. 우리 삶의 태도를 바꾸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담겨져 있다. 깨끗하게 준비하여 내 앞에 나오라는 것이다. 세상에서도 예식에 맞는 옷을 당사자 뿐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 모두가 입어야 하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이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시며 가서 빨래를 하고 오라는 것은 단지 더러운 옷감을 깨끗하게 하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이는 하나님 앞에 나오는 성도들의 '바른 자세'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삼일을 기다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기도하고 나면 기도한 것들이 눈앞에 주어져야 성미가 차지만 주님은 약속을 하고 나서 3일을 기다리라고 하신다. 기다린다고 하는 것은 기대를 갖는 것이고 꿈을 현실화하는 소망의 기쁨을 얻게 하는 시간이다. 소풍가는 날보다 기다리는 날들이 훨씬 더 좋은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며 기다리는 시간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침범하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한 그 영역을 인정하겠느냐는 말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인정할 수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계약이 이루어 질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하여 입으로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인정하고 절제하며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와 같이 외형적으로도 준비가 되고, 마음으로도 준비가 되고, 삶으로도 준비되기를 원하셨다. 그것이 준비되었을 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계약이 완성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사느냐 죽느냐' 하는 계약이다. 이 하나님과의 계약 속에서 새로운 결단을 통해 돌아와 하나님과 함께 계약의 백성으로서 누릴 축복을 기다리며 기뻐하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과의 계약의 백성으로서 삶의 태도를 가지고 기다림과 절제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안병경 목사
진리교회


수-빛으로 살자
본문 : 엡 5:8~14
찬송 : 502장

요즈음 세상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든지 모른다. 진학문제 취업문제 결혼문제 실직문제 등 우리 삶을 힘들고 답답하게 하는 일들이 끊이질 않는다. 사회적으로 그렇다. 올 한해를 돌아보면 안타깝고 무서운 일들이 참 많았다. 그 중에서도 300여 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침몰사고는 세월호만 침몰시킨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송두리째 침몰시켰다. 돌이켜 보면 사람의 한계, 세상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소설가 황석영은 '어둠의 자식들'이란 소설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무리 발버둥쳐보아도 짙게 드리워진 어둠의 굴레에서 헤어날 수 없는 존재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소설의 메시지에 공감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살고 있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야. 노력해 보았자 소용없는 곳이야. 원래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야"라고 말하며 체념하거나 포기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다르게 말씀하신다. 죄로 물든 이 세상은 어둠의 권세가 지배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빛을 보게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세상이 어둡지만 주의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다.
 
빛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빛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을 환하게 밝힐 수 있는 빛이다. 우리가 제대로 구실을 한다면 세상은 어둡지 않다. 아니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빛의 권세 앞에 굴복하고, 어둠은 사라지게 되어 있다. 우리가 어두워져 가는 세상을 탓하지 말고 빛으로 어둠을 물리쳐야 한다.
 
에베소서 5장 9절 말씀에서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했다. 이 열매는 어둠의 권세로는 절대로 맺을 수 없다. 빛의 자녀들, 하나님의 자녀들만 맺을 수 있다. 우리가 좀 더 선하고 의롭고 진실해져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사회와 시대에 공급해주어야 할 꼭 필요한 열매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루하루를 살아내기가 너무 힘겹다고, 각박하다고 말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빛이 되어 세상이 날로 밝아지고 아름답게 되게 하소서.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휘동 목사
포항송도교회


목-그리스도인의 겸손
본문 : 빌 2:5~11
찬송 : 87장

이 아름다운 성탄의 계절 주님의 오신 목적과 그분의 겸손한 성품을 본받기를 원한다. 1500년경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매우 신비스러운 미소를 띤 아름다운 여인이 도시에서 꽤 이름난 화가를 만났다. "그림값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제 초상화를 그려주시겠습니까?" 여인을 본 화가는 거만한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 "나는 너무 바빠 당신의 초상화를 그릴 시간이 없소. 저기 길 건너 초라한 곳에 가면 일거리가 필요한 화가가 있으니 그 사람에게나 가보시오."
 
그 후 몇 개월이 지난 후 세계를 놀라게 한 그림이 완성되었는데, 그 '일거리가 필요한 화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였고, 그 신비스러운 미소를 간직한 여인은 모나리자였다. 주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가르치신다.
 
빌립보서의 저자 사도바울은 5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서두를 정하고 그 내용에 대하여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본문은 주님의 겸손하시고 아름다우신 성품에 대한 최대의 찬사,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섭리와 경륜을 그 짧은 글로 이해시키고 전달하여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하나님 아버지와 세상에 대하여 그분이 보여주신 태도와 겸손하신 성품이 꽃내음 같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겸손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것은 이웃과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나의 태도가 아무리 겸손하다 하더라도 상대방에게는 교만으로 비춰질 수 있을 뿐 아니라 내 자신이 겸손하다고 생각되어지는 순간 이미 겸손이 아닌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겸손에 대한 말씀과 겸손할 수 있는 방법까지 기록해 두었다. 1.옛날 어려운 때를 기억함으로(신 15:15) 2.스스로 높은 체 하지 아니하므로(잠 30:32) 3.말석에 앉으므로(눅 14:10) 4.자긍하거나 높은 마음을 품지 아니하므로(롬 11:18~20) 5.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므로(약 4:10) 6. 피차 복종하므로(엡 5:21) 7.남을 존경하므로(롬 12:10) 8.서로 마음을 낮은데 처하며(롬 12:16) 9.여호와를 찾으므로(습 2:3) 오늘 본문에서도 겸손의 열쇠를 이야기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앤드류 머레이는 '겸손을 위한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주의 크신 선하심으로 저의 온갖 형태의 교만을 알게 해주시고 그것을 마음에서 제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니다. 그 교만이 악령에게서 온 것이든, 제 자신의 부패한 본성에서 온 것이든 제 마음에서 완전히 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빛과 성령이 거하실 수 있게 하는 그 겸손의 깊고 깊음과 그 진리를 깨닫게 하옵소서. 아멘."
 
오늘의 기도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어서 날마다 겸손한 주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남엽 목사
서대문구교경협 경목


금-문제는 있다 그러나 해결책도 있다
본문 : 왕하 3:4~20
찬송 : 400장

북이스라엘에 늘 조공을 바치던 모압이 어느 날 배반을 하고 돌아섰다. 이에 북이스라엘이 남유다와 에돔에 도움을 요청해 연합군을 형성해서 모압을 치러 올라간다. 그런데 전쟁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마실 물이 떨어졌는데 골짜기도 메말랐다.

첫째, 언제 누구에게나 문제는 있다. 그러나 해결책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 북이스라엘 왕은 불평하고 절망스러운 말을 내뱉는다. "하나님께서 우리 연합군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는가 보다." 이에 반해 유다 왕은 "어디 선지자가 없느냐"라면서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물으면 해결책이 있다고 믿었다. 눈을 돌려 보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선지자 엘리사가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알게 되고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둘째, 하나님과의 관계를 조율하면 응답이 들린다. 세 나라의 왕이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갔더니 엘리사는 뜬금없이 거문고 타는 이를 부른다. 이 전쟁통에 어인 거문고란 말인가. 엘리사 선지자는 아무리 전쟁터라 하더라도 우선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함을 말하고 싶었다. 거문고는 현악기이다. 현악기는 줄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쓸모 없는 악기이다. 또한 현악기는 조율되어 있지 않으면 깡통에 불과하다. 엘리사 선지자가 거문고를 타도록 지시를 내린 것은 하나님과의 연결고리를 먼저 점검하라는 말이요,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하는지를 먼저 살피라는 뜻이다.

셋째, 해결책은 멀리 있지 않다. 거기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엘리사가 지시한 대로 거문고를 연주하였더니 하나님의 응답이 들려왔다.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깊이 파라." 그 골짜기는 어떤 골짜기인가. 메말라 아무리 땅을 파도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곳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가축과 짐승까지도 마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누가복음 5장을 보면, 밤을 새워 그물을 던졌으나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한 사내 네 명이 등장을 한다. 그러나 그 아침 예수님은 그들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고,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정도의 물고기를 잡게 된다. 사람의 한계가 하나님의 한계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람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할 수도 없던 그 환경에 주님이 개입하시니 물고기를 잡게 되고, 물이 흘러넘치게 되었다. 주님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답이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길 원하신다. 거기에 주님 주시는 해결책이 있음을 믿고 나의 심령을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하도록 조율하시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마음과 일치하게 우리의 마음을 조율함으로 주님 주시는 지혜로 어려움을 풀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소종영 목사
가장제일교회


토-물가에 심어진 나무
본문 : 렘 17:5~8
찬송 : 324장

본문에는 두 가지의 대조된 나무가 나온다. 하나는 사막의 떨기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이다. 이 두 나무의 처지는 극과 극이다. 사막의 떨기나무는 사람이 살지 않는 황량한 광야에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물가에 심어진 나무는 더위나 가뭄 걱정 없이 풍성한 결실을 한다. 나무의 운명은 이처럼 심겨진 곳이 광야이냐, 물가이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먼저 우리 모두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복 받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하나님께 복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사람이다. 본문 7절에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다"고 하신다. 이 말씀에 이어지는 말슴이 바로 물가에 심어진 나무이다. 물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은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한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유일한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둘째로, 교회를 가까이 하는 사람이다. 물가의 나무가 더위와 가뭄의 걱정이 없고 결실을 그치지 않는 이유는 강변으로 뻗친 뿌리를 통하여 물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물은 나무의 성장과 결실에 매우 중요한 영양분이다. 물가의 나무가 더위에도 잎이 청청하고 가무는 해에도 결실할 수 있는 것은 가까이에 물이 있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되려면 영적인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물가를 가까이 해야 한다. 그러면 영적인 영양분을 공급하는 물가가 어디일까? 그곳은 바로 교회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은혜의 통로이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만드신 목적은 교회를 통하여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여 그들의 영혼을 건강하게 양육하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영적 성장을 하려면 은혜 주시는 교회를 가까이 하고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나무가 어디에 심어지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듯이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저주의 삶을 떠나서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며 교회를 가까이 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어떤 환난에도 흔들리지 않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며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며 사모하며 늘 가까이 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태익 목사
담양읍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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