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를라이 선교여행기

서를라이 선교여행기

[ 땅끝에서온편지 ] 땅끝에서온편지/네팔 김정근 선교사(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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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7일(월) 18:16

서를라이 선교여행기

오늘은 그간 양육해온 네팔 형제 디네스 씨 부부가 섬기는 서를라이 슬라가교회를 방문하여 교회 형편을 둘러보고, 최대의 지원자인 부모님과 형제자매를 중심으로 격려를 해드리는 날이다. 또한 주일학교 학생들과 교회 중심인사들을 만나서 음식을 나누고 교제하며 예배하러 가는 날이다. 그래서 그런지 기도하고 준비했지만 들뜬 마음은 사뭇 흥분을 가라앉게 할 수가 없다 서를라이는 네팔수도 카투만두에서 남동쪽에 있으며, 덜렁거리는 로컬버스로 8~10시간 걸리는 인도 국경과 가까운 곳이다. 연중 아열대기후로 여름 기간 동안 열대를 방불케 하는 더운 곳이다. 도로변에는 아름들이 나무들로 정글을 이루고, 그외 온통 평야 같은 넓은 옥토에서 열대과일과 옥수수 감자 밀 보리 등이 풍성하게 재배된다. 또 다른 방문 목적은 한 장로님께서 회갑할 경비로 선교헌금을 하였는데 이를 통해 100여 명이 예배할 수 있는 예배당을 건축하는 일을 의논하기 위해서다. 지난 2개월 동안 몇 번이고 건축예정지인 서를라이 슬라가교회에 가고자 하였으나 지금도 여전한 치안의 불안과 위험으로 가지 못하다가 더 늦으면 일을 그르칠 수 있어서 '죽으면 죽으리다!' 순교를 각오하고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덜컹 거리는 트럭을 개조하여 만든 로컬버스를 타게 되었다. 에어콘이 없어 창문을 열어야만 하기에 대부분 비포장 도로의 먼지와 소음과 싸워야 했다. 버스 지붕은 생명을 걸고 겨우 올라탄 승객으로 꽉 메워졌고, 발을 딛고 서기 힘든, 숨쉬기 조차 거북한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이상한 땀 냄새 등 네팔의 향기(수채구멍에서 나는 냄새같은)를 만끽해야만 했다. 차에서 내 품는 시커면 매연과 먼지는 40도의 무더위와 함께 숨을 콱콱 막히게 하였다.
 
나는 선교사이다. 그리고 꼭 필요한 곳에 사랑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가는 것이다. 못견디게 어려운 상황도 믿음으로 넘어서는 것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걸어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는가? 이 모든 것을 수용하고 포용하며 그것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나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 순간, 지금은 하늘나라 가셨지만 가끔 내 꿈에 나타나 말씀하시던 부모님이 생각났다. 가난했던 시절, 원망투성이였던 나는 그 어려웠던 때가 지금은 선교의 자양분이 된 것에 감사와 찬송을 드리게 되었다.
 
깡촌이었던 고향은 110여 년 전 미국선교사에 의해서 복음이 전하여져 '복음촌'이 됐다. 지역 주민의 삶의 중심은 교회였다. 교회와 담장 사이를 두고 있던 우리 집은 성경을 토론하는 곳이었다.
 
동치미, 고구마, 국수 삶아놓고 목에 힘을 주어가며 주장하시던 모습, 성령에 이끌리어 눈물 흘리시며 간증하시던 모습, 때로는 토라져 몇주씩 말씀도 하지 않으시던 모습까지 귀하고 그립다. 새벽 밤낮을 통하여 교회 종을 치시던 어버지는 가난 대신 '기독교는 창조하는 것이다'란 말씀을 물려주셨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믿음으로 마음 여미며 나를 일어서게 하신 말씀이다. 그래서 고향을 찾을 때마다. 좋은 믿음의 환경을 주셨던 하나님께 감사하며, 벽에 기대어 곡성 좋게 부르시던 아버지의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하는 찬송이 지금 귓전을 두드린다.
 
그 교회에서 네팔 서를라이에 힘껏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가 일어날 줄을 누가 알았을까?! 정말 놀랍고 풍성한 마음이 옴 몸을 휘감는 것을 느끼며,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전기에 감전된 듯 전율을 느꼈다.
 
그런데 사건은 터지고야 말았다. 멀리 앞에서부터 멈추어선 차량행렬은 움직일 기색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소식은 3km앞에서 차량끼리 부딪쳐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4시간을 도로 위에서 기다려야 했다. 교통사고 사망자 처리를 위해 트럭 운전자들이 도로를 막고 정부에 사망자 보상금을 엄청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하면 우선 도로 상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경찰을 불러서 사실을 말하고 토론하여 결론이 나면 우선 국가에서 선보상하고 후 가해자에게 보상을 국가가 구상하는 방식인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무더운 도로 위에서 에어콘조차 없는 차 안에서 4시간씩이나 기다리면서도 누구 한 사람 고함치지 않고 무표정하게 체념하듯이 기다리며 참는 것이다.
 
이런 때 왜 쌍소리와 욕이 나오지 않는건가? 너무나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착각을 했다 이것이 이들의 문화인 것이다. 정망 대단한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네팔인들에게 새로운 문화를 심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들은 모든 것을 자비로 포용하는 다원주의의 바탕에서 모든 신을 힌두의 신중의 하나의 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사건은 네팔 사람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조금 바꿔 놓았다.
 
낯선 이국 땅 교통체증이 난 도로 상의 더위와 웅성 되는 사람들 사이에 함께 서 있다가 한국의 아이들과 고향과 부모들과 사랑하는 동역자들이 생각이 나 애틋함과 그리움이 밀려왔다. 나그네 된 나를 맛본 것이다. 이렇게 13시간 만인 오후 7시에 서를라이에 도착하였다, 마중 나온 디네스가 안내한 곳은 제일 좋다는 여관이었다. 정전이 되어 촛불도 켜 놓지 않은 깜깜한 방이었다. 샤워라곤 개념이 없었고 역한 냄새가 나는 화장실에 딸린 곳에서 세면을 해야만 했다.
 
하루 종일 덜커덩거리는 차에 이리 박히고 저리 처박히며 땀 흘렸으나 세수를 제대로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가져다 주는 네팔 달밧은( 네팔 정식/안남미 쌀밥에 녹두스프를 얹어 먹음) 먹을 수가 없었다. 천정에서 도마뱀이 떨어지면서 다리를 타고 기어갔다. 40도의 더위는 식을 줄을 몰랐고 달려드는 모기는 왜그리 극성인지 아프듯 피곤하여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벽녘에 몸에 힘이 빠지고 자지러져 잠에 골아 떨어졌다. 새벽 4시가 되더니 힌두 사원에서 푸자(예배)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얼굴이 부어올랐다. 몸이 간지러워 계속 긁게 되고. 피부병같이 알레르기가 도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침식사는 다행이 찌아 한잔(네팔인이 즐겨 먹는차/ 아침식사로 먹으며 홍차맛의 차에 갓 짜서 배달 온 우유를 널어 먹으면 아침식사가 된다.))을 먹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하나님은 아직도 나에게 남아있는 힘들을 철저하게 없애시고 네팔인들과 같이 만들어 가시며, 낮아지게 하시고 이들의 생활을 체험케 하시며 눈높이를 맞추어 가시는 것이다. 세상 모든 길은 순리를 지향한다. 즉 높은 곳을 향하여 좀더 높이 좀더 좋은 자릴 원한다. 위를 향한 삶인 것이다. 그러나 깨끗하고 신선하고 아름다운 삶은 아래를 바라보며 역행하는 삶인 것이다. 이것이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인 것이다. 성공하여 승리하신 길인 것이다. 자발적인 청빈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풍성히고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체험하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어려움과 고통을 주셨고 준비시키셔서 만남과 영혼구원을 보게 하셨고 기쁨으로 일하게 하셨다. 몸은 쇠잔하였으나 오후 7시 야간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13시간 걸려서 다음날 9시 카투만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할레루야! 그러나 몸살과 설사로 일주일을 고생하게 하셨다. 영광의 상처를 주신 것이다. 오래 간직할 선교여행이 된 것이다.
 

네팔선교사 김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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