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1월 17~22일

[가정예배]11월 17~22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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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3일(목) 14:39

월-감사의 매력
본문 : 요 6:1~11
찬송 : 588장

갈릴리의 어느 허름한 집 부엌에서는 한 아낙이 도시락을 싸고 있었다. 최근 동네에 퍼진 소문에 '어느 귀한 분'이 동네를 방문하여 그분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는 날 이라지만 자신은 생계를 위한 일 때문에 갈 수가 없어 자기 어린 아들이라도 보낼 참이다.
 
도시락이래야 어부들이 너무 작아 버린 것을 주워 말린 생선 두 마리와 늘 바빠서 모양도 내지 못하고 만든 보리떡 다섯 개를 작은 바구니에 넣고 보자기로 싸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아낙은 이렇게나마 먹을 것을 쌀 수 있는 것과 그것을 들려 어린 아들이라도 보낼 수 있는 것이 눈물이 나도록 감사했다.
 
어린 아들은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동네 어른들을 따라 나섰다. 그분이 멀리 보이는 곳에 이르러 보니 정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장소에 와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다. 그분의 말씀은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점심 때가 되자 사람들은 저마다 싸온 음식을 먹었지만 어린 아들은 사람들의 도시락을 보니 자기 도시락을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너무 초라해서 꺼내지 못하고 차라리 어른들이 챙겨주는 것으로 배를 채웠다.
 
저녁때가 되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어린 아들은 아직 꺼내지 못해 먹을 것이 들어 있는 자기 도시락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어린 아들은 멀리 그분 곁 가까이에 있는 안드레 아저씨를 찾아갔다. 안드레 아저씨도 배고프기는 마찬가지 일터, 아저씨라면 자기 도시락이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다. 또 이 초라한 도시락이지만 평소에 삼촌 같았던 아저씨에게 도시락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척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안드레 아저씨는 그 도시락을 그분께 갖다드렸고 그 분은 자기의 그 초라한 도시락을 높이 들고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그분의 감사기도에는 자기 도시락을 만든 엄마의 감사와 안드레 아저씨에게 드리며 드렸던 자기의 작은 감사도 들어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는 세상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그 작은 도시락이 제자들이 들고 있는 바구니마다 빵과 고기가 가득 차게 만든 것이다. 그 날 그 자리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 놀라운 광경을 똑똑히 보고 또 원하는 대로 배부르게 먹었다. 한 가난한 집의 부엌에서 시작한 감사가 빈 들판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을 배부르게 한 것이다.
 
예수님은 그 어린 아들의 도시락에 담겨 있는 은밀하고도 깊은 감사를 이미 알아채고 계셨던 것이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던지 때마다 일마다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리며 살게 도와주세요. 작고 초라한 것에도 감사의 기도를 올릴 수 있는 깊은 감사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여임 목사
아가페드림교회


화-성장하는 삶
본문 : 눅 18:18~23
찬송 : 263장

나무가 많은 열매를 맺으려면 튼튼하게 자라나야 한다. 묘목을 심는다고 금방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몇 해 지나서 나무가 어느 정도 자라나면 꽃도 피고 열매도 맺게 된다. 사람도 튼튼하게 자라나야 성장하여 실한 열매를 맺게 된다. 북한이나 동남아의 가난한 나라들의 경우를 보면 어린 아이들의 사망률이 매우 높다. 영양실조로 인해서 아이들의 성장이 멈추게 되고 마침내 병들어 죽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도 튼튼하게 성장해야 성년이 되어야 자녀를 낳고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다.
 
영적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지 않고 있으면 즉시 의사이신 예수님께 나아와 고침을 받아야 한다. 영어로 성장이란 동사는 'grow'이다. 이 단어 속에 성장의 네 가지 비결이 나온다. 'grow'란 말은 gospel(복음), regular prayer(정규적 기도), obedience(순종), witness(증거)의 약자이다.

첫째, 복음(gospel)을 듣고 받아들일 때 성장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이다(롬 10:17). 우리는 언제든지 TV와 라디오를 틀면 24시간 내내 설교말씀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홍수 때 식수가 모자라듯 이런 설교의 홍수 속에서도 참된 복음을 듣기가 쉽지 않다. 성경은 복음이다.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 성장하기를 바란다.
 
둘째, 정규적 기도(regular prayer)를 해야 한다. 형식적인 기도에서 탈피하여 매일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다니엘은 매일 세 번씩 기도 했습니다. 그가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기도 때문이다.(단6:10)

셋째, 순종(obedience)하면 성장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 웰빙 문화가 확산 되듯이 사람들이 건강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진다. 몸의 성장과 건강을 위해서 음식이 필요하듯이 믿음이 성장하려면 순종이 필요하다. 순종은 믿음의 열매이다.
 
넷째, 증거(witness) 해야 성장한다. 몸의 건강을 위해서 우리가 꼭 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건강과 성장도 영적 운동, 즉 주님을 증거하는 일을 꾸준히 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위의 네 가지를 통해서 성장하는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성장하는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복음을 듣고 받아들이며 정규적인 기도와 순종과 증거를 통해서 날마다 성장하는 삶을 사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재기 목사
정자교회


수-나는 그가 아닙니다
본문 : 요 1:19~23
찬송 : 88장

사람이 자기 자신을 바로 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세례요한은 말라기 선지자 이후 무려 400년 동안이나 선지자가 나타난 적이 없던 어두운 시대에 혜성같이 등장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으며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음을 선포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당시 유대 지도자들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어 "네가 누구냐?"고 물었다. 이 질문은 "당신이 누구며, 무슨 권세로 사람들을 가르치고, 책망하고, 세례를 베푸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때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대답한다. 원문의 의미상 매우 강한 부정을 담은 대답이다. 짐작건대 사람들은 세례요한이 진짜 메시아이기를 바랐던 것 같다. 계속해서 사람들은 "그러면 네가 엘리야냐?" "네가 그 선지자냐?"라고 거듭 묻는다. 세례요한은 그때마다 추호의 주저함도 없이 "나는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단호한 부정만 하지 않았더라면, 상당한 인정과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아니라"고 대답한다.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될 만큼 성공적일 때 자신을 부인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인정과 칭찬과 박수를 받을 때, 과연 나도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기보다는 너무 심한 자기 긍정, 의심스럽고 불완전한 자기 의를 내세우기에 분주한 이 시대 속에서 "무익한 종이라 할 것을 한 것 뿐이라"는 고백과 함께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겸손함을 회복하자.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세 번의 질문에 세 번의 "나는 아니라"는 답을 들은 사람들은 답답한 듯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고 다그친다. 그때 세례요한은 "나는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라고 대답한다. 사람이 아니고 소리란다. 소리가 무엇인가? 소리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요, 도구다. 소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리에 담긴 메시지가 중요하다. 우리 삶의 주인공,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직 주님이시다.
 
우리는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할 그의 백성들이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자기를 부정하는 십자가의 삶을 가르쳤고, 친히 본이 되셨다. "나는 그가 아니라", "나는 그를 위한 소리라",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만한 자격도 없다"고 했던 세례요한의 고백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겠다.

오늘의 기도
 
세례요한처럼 주님을 위한 소리로 받은 사명을 잘 감당케 하시고 겸손하여 오직 주님만 드러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권혁성 목사
송정교회


목-놀라운 비밀
본문 : 눅 21:34~36
찬송 : 365장

예수님께서는 늘 깨어 기도하셨다. 새벽 미명에 일어나서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만왕에 왕이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늘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다. 아무런 죄도 없고 부족함도 없으신 능력이 무한하신 예수님께서 늘 기도하셨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절대 기도를 경홀히 여기지 않는다. 사도들은 전심전력을 다 하여 매일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 말한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시간이 더 없어진다. 정말 정신없이 바빠지게 되는 것이다. 왜일까? 내가 내 힘으로 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도하면 여유가 생긴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
 
우리들은 다 먹고 사는 일에 바쁘다. 또 헛된 일 때문에도 바쁘다. 더 나아가 죄악의 길을 가느라 그렇게 바쁘다. 그러나 놀라운 비밀이 하나 있다. 기도하면 시간이 남는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바쁘게 살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 기도의 무릎을 꿇으면 세상 앞에 무릎 꿇지 않아도 된다. 기도의 눈물을 쌓으면 세상에서는 환난과 실패와 불행에 매여 밤새도록 잠 못 자고 울 일이 없다. 왜냐하면 형통하기 때문이다. 시간에도 물질에도 건강에도 가정에도 여유가 생긴다.
 
누가복음 21장 34절 보면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성도는 영적으로 둔해지면 안 된다. 예민해야 한다.
 
농부가 매일 밭에 일하러 가기 전에 하는 게 있다. 낫의 날을 가는 것이다. 둔해져 있는 낫을 가지고 나가면 일이 배로 힘들다. 그러나 날선 낫을 가지고 나가면 콧노래를 부르며 일할 수 있다. 성도는 심령의 날이 서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능력 있게 살 수 있다. 영적 날이 둔해지면 아무것도 아닌 잡초 같은 문제와 씨름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능력의 사람은 기도의 사람이다. 기도하면 문제 앞에서도 두려움이 없어진다. 마음이 담대해진다. 벌벌 떨지 않는다. 가정생활이 왜 힘이 드는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인생이다. 소년이라도 피곤하고 장정이라도 자빠지는 것이 인생이다. 기도하지 않아 영혼에 병이 들면 아무리 건강해도 소용이 없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몸이 약해도 건강한 사람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없어도 부자다. 기도하는 사람은 낮아도 높은 자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지는 것 같지만 이기는 사람이다. 기도로 승리하시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바빠서 기도하지 못한 우리의 어리석은 분주함을 용서하옵소서. 바쁠수록 기도하게 하시고 기도의 사람으로 세상을 이기는 삶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을 기도합니다. 아멘.

주광식 목사
홍광교회


금-추수의 원칙
본문 : 갈 6:7~9
찬송 : 591장

리더십의 대가 존 맥스웰은 미국의 정계, 재계, 교계의 인정받는 리더 1000여명의 개인 시간 관리를 조사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그들은 자기 시간의 75%를 자신의 장점을 더 극대화시키는 데 투자하고, 20%는 새 것을 배우는 데 투자한다. 그리고 나머지 5%를 약점을 보완하는 데 투자한다." 심는다는 것은 곧 투자다. 그런데 투자를 하는 데 있어서도 원칙이 있어야 한다. 이익이 되는 것에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추수의 원칙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무엇을 심어야 우리의 삶에 유익한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를 연구해야 한다.
 
추수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먼저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두 가지 법칙을 주셨다. 하나는 영적인 법칙이고 또 하나는 자연의 법칙인 농장의 법칙을 주셨다. 스티븐 코비의 '원칙중심의 리더십'에 보면 "농장에서 봄에 씨를 뿌리는 것을 잊어버리고 여름 내내 놀다가 가을이 되어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가꾸어 하룻밤 사이에 풍부한 수확을 하게 되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농장에서는 일을 미루거나 벼락치기를 통해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은 매일 매일 씨를 심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심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본문 8절 말씀에 "육체를 위하여 심지 말고 성령을 위하여 심으라"고 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타락한 육체의 본성을 따라 규모없이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즉 육신적인 염려, 세상적인 것에 대한 관심, 썩어질 것만을 얻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을 말한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자기의 삶을 성령님께 맡기고 성령의 열매를 거두기 위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삶은 인간 내면세계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또한 성령이 기뻐하시는 씨앗을 심어야 한다. 그것은 복음의 씨앗이다. "복음은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시다"라는 것이다. 이 복음을 이 땅에 심어야 한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행 1:8)"고 하셨다.
 
그리고 추수의 원칙에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무엇을 심든지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였다. 추수의 원칙대로 성령의 씨앗을 심고 열매를 바라보며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자.

오늘의 기도
 
지난날 미움과 불신의 씨들을 심었던 것을 회개하게 하시고 성령으로 사랑과 복음의 씨앗을 심고 낙심하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승원 목사
푸른숲교회


토-예수님 제자 자격 요건
본문 : 요 6:66~69, 마 4: 18~20, 요 21:18~19
찬송 : 323장

예수님 제자 자격 요건은 무엇일까? 베드로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첫째,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했다.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이 말씀의 적용 의미는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신앙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었다. "너희도 가려느냐?" 제자들은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어디로, 뉘게로 가겠습니까?"라고 답했다. 베드로는 예수님 곁에 항상 머물렀고, 가까이 했다. 이유는 영생의 말씀 때문이다. 예수님 제자 중 한 사람 가롯유다는 주님께 영생의 말씀이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깨닫지 못하니 배반자가 되었다. 다른 제자들은 영생의 말씀이 있음을 깨달았다. 마지막에 모두 순교하였다. 인격적으로, 인품적으로 볼품도 없고, 매력도 없는 베드로였다. 하지만 항상 예수님 곁에 있었다. 예수님을 위해 최후엔 목숨까지 버린다. 최고의 인물이 된다.
 
둘째,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이 말씀의 적용적 의미는 예수님을 위해 버리는 신앙이다. '곧'이라는 단어는 '즉시, 당장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베드로가 주님을 만났을 때에 즉시 그물과 배와 가족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이다. 모든 생계수단을 다 버리고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헌신하겠다는 신앙이다. 예수님의 제자 자격 요건은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최후 팔을 벌려 순교하였다.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리고 가리라." 이 말씀의 적용적 의미는 순교의 신앙이다. 베드로가 최후에 팔을 벌렸다는 것은 순교했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 네로 황제가 AD 64년경 기독교를 탄압하고 미친 광기로 로마시에 불을 지른 화제의 책임을 기독교에 물었을때 베드로가 대표자로 처형당했다. 베드로는 순교자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특별한 나라이다. 전국 곳곳에 순교의 피가 많이 뿌려져 있는 나라이다. 하나님은 대한민국을 사랑하신다.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북녘 땅에도 찬송 소리, 기도 소리, 복음이 선포되어 지는 외침의 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 자격 요건은 마지막 이 시대에 순교자의 신앙을 회복하는 것이다. 순교자의 신앙으로 이 복음을 외치고, 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주님의 제자로 주님을 바라보며, 따라가며, 순교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엄영식 목사
황성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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