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왕국 네팔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복음

힌두왕국 네팔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복음

[ 땅끝에서온편지 ] 땅끝에서온편지/캄보디아 김정근 선교사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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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4일(화) 16:23
   
▲ 네팔 장애인들의 방치된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힌두왕국 네팔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복음

네팔선교사 김정근

'힌두왕국 네팔(The Hindu Kingdom Of Nepal)'은 7년 전 200여 년 통일왕정이 무너지기까지 네팔국가의 공식명칭이었다. 지금의 공식명칭은 'Nepal'로 다당제 의회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아직도 헌법이 재정되지 못하고 전통적으로 내려어던 임시법으로 정부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힌두왕국이라 함은 철저하게 힌두교정신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나라를 말한다. 지구상의 단하나 밖에 없는 힌두왕국 네팔! 힌두 교는 윤회사상과 함께 카스트 신분제도로 설명된다. 힌두교 신자들은 테어날 때부터 특정한 사회계급에 속하게 되는데 평생을 이 틀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출생시부터 직업도 정해지기 때문에 이들은 성직자나 상인, 대장장이 등으로 계급이 정해진 채 태어난다. 당연히 직업선택의 여지가 없으며 같은 계급의 일원과 평생 어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카스트제도는 1963년 법으론 폐지되었지만 전통이 워낙 뿌리 깊은 터라 오랜 사회의 관습을 바꾸기란 불가능해 보이며, 여전히 다른 계급과 결혼하는 일도 드물게 보이다. 숫다/어숫다(정결과 부정결)과 함께 힌두를 계승 전파하는 주요한 요소가 된다. 네팔선교 초기 필자는 '내가 섬겨야 할 장애인들은 왜 전생의 죄로 인해 테어 나서 케스트 신분제도하에서 가장 낮은 수드라 불촉계급보다 못한 사람대접을 받으며 소외되어 살아야할까'라고 고민하는 이들에게 답을 제시하는 것이 선교정책의 해결점이라고 생각했다.
 
시골민박을 위해 서부지역을 가는 버스 안에서 오스트리아에서 온 여대생을 만났다. 그녀는 UMN의 교육, 의료상황을 연구하기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둘러보는 중이라고 했다. 이미 학생들을 모아 놓고 작은 학교도 준비중이었다. 그 학생은 나중에, 내가 3년 동안 네팔어를 공부할 때도 같은 크레스메이터가 됐다. 그녀로부터 소게 받은 UMN의 두 번재 디렉터였던 조나단 린델의 저서 'Nepal and the Gospel of God (1979)'와 신디 페리가 쓴 'A Bibliographic Study of Nepal Church'을 읽게 되었으며, 나중에 '힌두교 입문', '히말라야의 눈꽃/썬다싱의 생애' 등을 짬짬이 읽게 됐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스스로 네팔 교회와 선교역사를 좀 더 자세히 공부하고 싶어졌다. 점차 네팔 교계 지도자들과 만남의 기회를 갖게 되어 많은 지혜와 정보를 얻고 도움을 받게됐다.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어려움과 시련 핍박속에서 소망을 가지고 네팔교회를 세워가는 일들 특히 협력하여 이루어가는 힌두왕국 네팔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조금의 이해를 하게 됐다.
 
간략하게 네팔선교와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대부분의 교회에 교파와 색깔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지금은 각나라와 선교사들의 선교정책에 따라 많이 달라짐) 이것은 1998년 네팔교회에서 부르는 찬송가(오선지에 단음악보로 옮김)가 처음 출판되었는데 592곡 중 영어찬송에서 번역한 것은 198곡에 불과하며 ,그나마 예배 중에 잘 불려지지도 않다. 현재는 복음송이나 찬송가 외의 성가들이 단행본으로 출판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카세트나 CD를 만들어 내고 있다. 대부분이 그들 특유의 리듬과 선율로서 때로는 민요곡조를 붙여서 찬송하기에 토속적인 향기가 있다. 절실한 민속 감성으로 찬송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1990년 전까지는 복음이 선교사들에 의해 전파되어 교회가 세워지고 키워졌다기 보다는 네팔 밖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돌아와서 박해를 무릅쓰고 믿음을 지킨 네팔인들에 의해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이 특징의 근원을 따져보면. 인도쪽에서 이주해온 인도 아리안 민족 체뜨리와 네팔 중서부 고르카를 중심으로 일으킨 '샤' 왕조가 카투만두 원주민 '네와르' 왕조를 무너뜨리고, 전 네팔을 하나의 왕국으로 통일하여 통치했다. 그 과정에서 영국의 동인도회사와 충돌이 있었고, 전쟁에 패하기는 했지만 식민지는 되지 않앗다.

이후 1951년까지 200여년간 인도와 영국을 제외한 어떤 나라와도 관계하지 않는 쇄국을 하였으며, 힌두교 외에는 모든 종교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마도 카스트 신분제도를 정착시키며 나라를 든든히 하려는 종교정책이기도 했다. 1951년 트리브번(Tribhuvan)왕이 큰 정치적 변혁을 주도했다. 나라의 문을 활짝 열고, 외국의 원조나 선교단체를 받아들이게 됐다. 물론 사람들을 개종시키지 않는다는 개종금지법(Anti-Conversion Law/힌두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시키면 6년간 감옥살이 후 추방법)은 여전히 존재한다. 인도북쪽 국경지대에서 일하던 여러 선교단체들은 '하나님께서 네팔 선교 문을 열어 준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함께 연합하여 선교하는 단체를 만들어 선교하게 됐다. 이것은 참으로 오랜 세월동안 선교가 이루어지는 나라에서도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NEB( Nepal Evangelistic Band)를 중심으로 1952년 INF가 조직되어, 포카라 네팔서부에서 결핵과 나병관리 등을, 1954년 형성된 UMN은 카투만두를 중심으로 보건, 교육, 농촌개발, 산업개발등의 사역을 했다. 이 두 단체를 중심으로 한 사역은 밖으로 들어나지 않고 네팔교회의 리더들은 네팔인들이 맡고 주일학교 교사나 훈련 등을 맡아 돕는 선교를 했다.
 
1950년 50여 명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진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1990년에는 3만 명으로 늘어났고, 1990~1993년 사이에는 세례 받은 자가 40만을 넘었다. 75개 행정구역에 적어도 몇 개 이상의 교회가 있으며, 카투만두에만 100개 이상의 교회가 있으며, 현재는 인구 4% 이상인 120만명이 기독교인으로 복음화율이 높은 나라 중에 하나가 됐다.
 
기독교인구가 늘어나면서 네팔에서 모든 종교가 평등하다는 의식도 커지고 있으며, 크리스마스도 국정공휴일로 지정됐다. 이러한 네팔 선교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계획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네팔 선교역사에는 본교단 네팔-인도 초대선교사이신 이성호 목사님(1982년 2월 네팔 입국, 본교단 원로선교사)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목사님은 네팔장로회신학교를 설립하셨는데 현재 26회 졸업생, 신학사 519명을 배출할 정도로 큰 업적을 남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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