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9월 29일~10월 4일

[가정예배]9월 29일~10월 4일

[ 가정예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4년 09월 24일(수) 13:58

월-하나님께 나아가자
본문 : 히 10:19~25
찬송 : 245장

신앙의 모습은 있는데 믿음의 능력은 없어 보이는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 어떻게 해야 신앙 생활이 흥이 나고 하나님께 왔음을 알고 고백하며 느낄 수 있을까?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라고 누가 그러고 싶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머리로 아는 신앙이 아니라, 생활 속에 녹아져 있는 삶의 신앙이 없는 것이다. 삶으로 하는 신앙 생활을 위해 오늘 성경 말씀은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모이기에 힘쓰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왜 모임을 갖지 않으려고 할까? 모임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기타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없다. 교회의 의미는 어떻게 드러날까? 모이기에 힘쓰는 것이다. 나와 다른 신앙인의 신앙의 모습을 보면서 배우고 깨닫는 것이다. 기독교의 영성은 하나님과 나만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서로간의 다면적인 관계 속에서 발전한다.
 
둘째는 함께 모여서 '우리 믿는 도리의 소망'이신 예수님을 붙잡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해야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한다. 내가 먼저 믿음의 은혜를 나누어야 서로 은혜를 나눈다. 내가 교회에 와서 드라마 이야기를 하면, 그 모임은 전체가 드라마 이야기로 끝난다. 애써 예수님을 이야기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해야 한다. 그래야 모임의 의미와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셋째는 믿음의 사람들을 서로 사랑과 선행으로 돌아보아 격려하라는 것이다. 누가 모이는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다. 그런데 각기 다른 사람들이다. 그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말하면 다 다르다 틀렸다가 아니라, 돌아보고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는 것이다. 믿음은 누군가의 돌봄과 격려로 세워지는 것이다. 나를 향한 다른 성도들의 돌봄과 격려가 내 신앙의 성장의 동력이다. 그렇다면 '돌봄과 격려'는 어느 때 하는 것이고 필요한 것일까? 우리가 연약할 때 신앙 생활이 미숙할 때,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를 때 돌봄과 격려는 힘이 되는 것이다. 사랑으로 돌보고 선행으로 세워주시기 바란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가는 존재이다. 이 교회의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선 함께 하는 사람들이 믿음의 소망을 붙잡고, 서로를 돌아보고 격려해야 하며, 사랑과 선행의 실천이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내 힘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오늘의기도
 
머리로만 아는 신앙에 멈출 것이 아니라, 열심히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고 사랑하는 일을 통해 진보하는 믿음의 길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유현 목사
/태릉교회


화-범사에 감사하라
본문 : 살전 5:18
찬송 : 429장

세상 사람들은 성공의 비결에 대해서 많이 얘기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성공하는 비결은 삶의 태도를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것이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그것을 실천할 때 하나님께서 진정한 성공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그의 학력이 높든 낮든, 환경이 좋든 나쁘던, 경제력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성공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오늘 본문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항상 기뻐하며 사는 것이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사는 것이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3장 2절에 나오는 말세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에 대한 감사도 없다. 스승에 대한 감사도 없다. 생명에 대한 감사도 없다. 건강에 대한 감사도 없다. 소득에 대한 감사도 없다. 감사할 것이 없어서 감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감사할 것이 많이 있다. 하지만 감사하지 않는다. 감사를 잃어버렸다. 남들과 비교하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한다. 상대적인 박탈감 때문에 감사할 수 없다. 이것이 현대인의 불행이다.
 
그리스도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웬만한 일로는 감사하지 않는다. 주시지 않은 것들만 찾아서 불평한다. 범사에 불평만 한다.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져야할 하나님에 대한 예의이다.
 
오늘 본문에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단어가 있다. '범사에'라는 말이다. '범사'라는 말은 '모든 상황과 환경에서'라는 의미이다. 기쁘고 좋은 일에도 감사하고, 슬프고 좋지 않은 일에도 감사하라는 것이다. 건강해도 감사하고 건강하지 않아도 감사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실까? 모든 일은 하나님이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이 믿음이 있으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 하나님은 늘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을 원하신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다.’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옵소서. 삶의 환경과 조건에 따라 감사와 불평을 넘나들지 않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동성 목사
/명락교회


수-신앙의 존재감
본문 : 마 28:18~20
찬송 : 288장

하나님께서는 구약 계시의 말씀을 통해 알게 하시고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사랑이다.
 
첫째, 우리를 구원하신 사랑을 전하자. 구약의 말씀을 통하여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언급하시고 말라기 예언자를 통해 주님이 오실 것을 말씀하셨는데 말라기와 마태복음은 종이 한 장 차이지만 그 기간은 무려 400년이다. 마태복음 11장 10절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이 말씀을 통해 다시 세례요한과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까지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말씀대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신 주님의 사랑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놀라운 사랑이다. 이 사랑을 입은 우리들에게 존재감을 가질 것을 요구하시는데 존재감은 자녀로서 또한 제자로서 합당한 모습을 가졌을 때 나타난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작은 제자가 되어 계속적으로 주님 오시는 날까지 하나님의 뜻인 계시를 나타냄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그 사랑을 전파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둘째, 그 사랑을 전파하는 삶을 살자.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은 이제 권세있는 자들로서 당당하게 주님의 가르침과 사랑을 전파하며 그들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사도바울도 오직 주님의 영광만 바라보며 어떤 환난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그를 통해 수많은 영혼들이 회심하고 돌아오는 은혜의 통로로 선용하셨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된 생명을 가져가시고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의 풍성함과 하늘과 땅의 권세를 주셨기에 이제 우리가 예수의 생명을 담은 최고의 보석들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그 사랑을 전해야 한다.
 
셋째, 끝까지 동행하시는 축복을 누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신앙의 존재감을 요구하신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환경에서라도 주저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 나타내게 하기 위함이었다. 제자들이 성령 충만함 속에 신앙의 존재감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택한 영혼들이 회복되는 놀라운 역사는 계속되었다.
 
우리도 또 다른 제자가 되어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신앙의 존재감으로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또한 은혜의 통로로 선용하시며 주의 나라를 확장해가는 주인공들로 삼으시고 끝까지 동행하시는 축복가운데 우리 행보를 보장해주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마지막 시대에 겸손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담대함으로 주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은혜의 통로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경숙 목사
/보석교회


목-겸손의 유익
본문 : 빌 2:1~10
찬송 : 341장

그리스도인에게 겸손이라는 영역은 쉽게 이룰 수 없는 영역이다. 이 귀한 보물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인이라면 도전해봐야 하는 덕목이다.
 
이땅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포기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인 자존심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자녀답게 자존감을 높여서 수준있는 삶을 살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 전적으로 포기하는 삶을 보여주셨고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하고 의존하는 삶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아무것도 잃지 않는 멋진 삶이 되었다. 예수님의 겸손은 주위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일을 행하든 상관없이 기뻐하시는 일을 자신 안에서 행하셨다. 겸손의 유익이 있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첫째로 겸손은 천국생활의 모습으로 축복받는 비결이다. 교회를 섬기는 많은 목회자들과 직분자들 그리고 선교사와 복음을 전하는 일꾼들은 모두 좋은 사람을 만나길 원한다. 사람을 사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 사귀는 것이 쉽지 않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복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그렇다면 누가 좋은 사람인가? 함께 하면 복이 되는 사람이 있다. 복이 되는 사람은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둘째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존귀한 자는 겸손한 사람이라는 약속이 있다(마 20:26-28). 파스칼은 사람을 가리켜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했다. 인간은 갈대처럼 약해서 흔들리기 쉽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르게 생각해보면 나쁘게도 생각할 수 있는 일을 좋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똑같은 상황이지만 절망을 느끼기도 하고 희망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자신을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간다. 반면에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 맡겨져 있기 때문에 불안 초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우선이다. 이미 성경에서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붙들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셋째로 겸손은 가장 첫째된 제자됨의 본질이다. 주님께서 겸손하셨다는데 우리가 겸손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우리의 겸손과 교만의 정도에 따라 우리가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운지 그리고 예수님과 얼마나 닮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 거룩해질수록 겸손하게 표현되어 진다.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우리의 자아가 죽고 자존심이 죽어져 겸손한 행동이 나타난다. 우리가 겸손해지면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음을 기억하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게 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시고 불안과 초조함에서 자유함을 허락하옵소서, 겸손함이 몸에 베여나오게 하셨어 모두에게 기쁨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봉림 목사
/신성교회


금-그날이 오면
본문 : 사 27:1~13
찬송 : 550장

이사야 27장에는 '그 날에'라는 단어가 4번 나온다. 그날은 언제인가? 애타게 기다리는 그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간절한 바램이다. 아마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는 그 날을 의미하는 것 같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 137:1)." 시온, 예루살렘, 그 거룩한 성! 얼마나 그리운 고향인가.
 
그곳에서 예배드릴 때의 감격을 간절히 기다리는 백성들의 애절한 마음을 이사야 선지자는 표현했다. 이스라엘과 대한민국은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 남과 북이 분단되었고 외침을 많이 당한 민족 1위, 2위이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이 목숨이 끊이기 전에 와 주기만 할양이면,/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두개골이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기뻐서 죽사오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그날이 오면/심훈)
 
조국광복을 기다리는 한맺힌 글이다. 광복을 기다리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광복을 주셨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애타게 기다려야 할까?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조국의 통일을 기다리며 오늘의 본문을 묵상하자. 통일은 꼭 이루어져야 한다. 필자의 교회는 개척교회지만 탈북자들이 개척한 '새 생명교회'를 돕고 있다. 교인들의 이야기는 눈물없이 들을 수 없다.
 
자유가 그립고 배고픔이 싫어 탈북했는데 동상으로 두 다리를 잃은 성도님은 "두 다리를 잃었지만 자유를 얻었고 새 생명주신 예수님을 만났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어떻게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가? 마음껏 찬양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데도 복에 겨워 감사를 잃어버리고 조그만 시련이 와도 넘어지는 나약한 성도로 변하지는 않았는가?
 
통일을 염원하며 기도하고 목숨을 걸고 탈북하여 정착하는 그들을 도와야 한다. 특히 탈북자들이 개척한 교회는 도움이 절실하다. 구약의 성도들은 메시야를 고대했다. 그러나 막상 메시야가 오시니 영접하지 않았다. 십자가에 못밖는 큰 죄를 범한 백성들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주님 재림의 날을 고대해야 한다. 그 날이 오면 여호와는 포도원을 지키신다. 그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현대의 교회이다.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족속이요 그가 기뻐하는 나무는 유다사람이라."
 
그 이스라엘이 오늘의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고 있으며 재림의 그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오늘의 기도
 
대한민국을 사랑하시고 자유를 허락하신 하나님, 감사를 잃어버리고 나약한 우리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재림을 고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현우 목사
/꿈의교회


토-어디로 가리이까?
본문 : 삼하 2:1~11
찬송 : 459장

요즈음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회복할 신앙의 모습은 무엇인가? 본문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께 유다 어느 땅으로 올라가야만 좋겠느냐고 묻는 장면, 다윗의 기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헤브론을 허락하시는 장면, 그리고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사람들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되는 장면 등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이 본문 말씀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먼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라고 하신다. 본문 1절에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그러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올라가라." 그러나 다윗이 또 묻는다. "어디로 가리이까?" 그러자 "헤브론으로 갈지니라"고 말씀하신다. 사실 다윗은 사울 때문에 오랫동안 쫓기는 인생을 살았다. 그 와중에 블레셋 시글락에 머물고 있던 다윗은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유대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인간적으로 보면 너무 오랫동안 나라를 떠난 망명생활을 했고 또 자기를 죽이려 하던 사울도 죽었으므로 이제는 나라 안에 들어와서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이젠 가도 될까요? 간다면 어디로 갈까요?"라고 하나님께 묻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께 묻는 다윗의 믿음이 바로 다윗 되게 한 것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하나님의 방법에 순종하라고 하신다. 다윗은 사울 왕과 그의 세 아들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원수가 죽었다고 기뻐했을테지만 다윗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조가를 지어 불렀다. 이제 다윗은 얼마든지 전 이스라엘을 무력으로 통일하고 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기다린다. 15년을 기다려 유다족속의 왕이 되었는데도 헤브론에서 7년 6개월을 기다렸다. 하나님의 때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적인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식과 법에 순종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기다리는 동안 그 시간동안 하나님이 준비하신 일들이 일어난다. 5장에 가면 온 백성들의 마음이 다윗에게로 모아지게 되고, 다윗은 명실공히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된다. 하나님이 섭리하사 사람들의 마음이 다윗에게 향하도록 하셨다. 이렇게 하나님의 때와 방법에 순종하는 다윗의 믿음이 바로 다윗을 다윗 되게 한 것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자의대로 살았던 모습을 돌아봅니다. 하나님의 때와 법에 순종하였던 다윗의 믿음을 닮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선태 목사
/대현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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