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어머니(상)

그리운 어머니(상)

[ 은혜의뜨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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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23일(화) 13:55

박기상 장로
시온성교회

 
장로임직 10년을 지나면서, 과거의 일기를 꺼내어 보며 당시의 글들을 중심으로 은혜를 나눠본다.

30여 년 전 남해안 어느 해변 마을에 주일 아침이 찾아왔다. 그 중 어느 한 집의 풍경은 이러했다.

아침밥을 다 지은 어머니는 부엌에서 가마솥 뚜껑을 연 다음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곳에 얼굴을 숙이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하고 나서는 밥을 담기 시작했고, 앞마당에서는 초등학생인 막내 아들이 검정 고무신 뒤 축으로 무언가를 밟고 몇 번이나 뱅뱅 돌고 있었다. 그리고 신발 밑 흙 속에 묻힌 그것을 꺼내 마른 걸레로 닦아내니 반짝반짝 광이 나는 동전이었다. 마을 중턱에 있는 예배당에서 초종소리가 땡그랑, 땡그랑 울리자 밥을 다 먹은 막내아들은 반짝거리는 동전을 호주머니에 넣고 예배당을 향해 간다.

평상시 어머니의 삶은 이러했다. 매일 첫 새벽에 예배당에 나가 기도하고 돌아와 잠에 취해 비몽사몽하는 막내아들을 당신의 무릎에 뉘어 놓고 머리에 안수하며 축복기도 한 후, 에덴동산과 선악과 이야기, 노아와 방주 이야기,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요셉, 홍해와 모세 이야기, 힘 센 삼손 이야기, 다윗과 골리앗, 솔로몬의 재판 이야기,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 물 위를 걷는 예수님 이야기 등을 해주는데 어느새 잠이 깨서 말똥말똥한 막내아들은 당신 어머니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동 터 오른 아침을 매일 같이 맞이하곤 했다.

어머니의 성경은 낡을 대로 낡았지만 매우 두꺼웠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지만 최후의 금고인 그 성경책 속에는 아주 빳빳한 몇 장의 종이 지폐가 끼워져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 바치는 연보였다. 어머니는 아침밥 지을 때 쌀독에서 퍼낸 쌀에서 먼저 한 줌 떠내 성미 통에 넣고 7일 동안 매일 모아서 주일이면 성미를 냈다. 어머니는 손님이 가져온 선물과 논밭에서 거둬들인 곡식과 채소 그리고 앞바다에서 잡은 생선들 중에 크고 좋은 것을 양푼에 가득 채워 막내아들에게 들려서 목회자 사택 문턱이 닳도록 다니게 했다.

어머니는 주일 전 날이면 어김없이 물이 가득 담긴 물동이와 청소도구를 들고 막내 아들을 앞세워 예배당에 가, 나란히 무릎 꿇고 기도한 후 마룻바닥을 깨끗이 쓸고 닦고 청소를 했다. 어머니는 이웃마을 아낙네들이 읍내에 나가 나물이나 생선팔고 때 늦은 시간 허기진 배 움켜쥐며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집 앞을 지나갈 때 따뜻하게 밥 먹여 보내면서도 정작 당신은 밥이 떨어져 수시로 고구마로 끼니를 때웠다. 또 어머니는 나그네 장사꾼들이 많던 시절 그들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정성껏 대접하면서 예수님을 전했으며, 당신도 가난했지만 굶는 이웃들을 외면치 않고 밥을 퍼주고, 고구마를 삶아 주시며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셨던 분이셨다.

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가 열리면 교역자와 교사와 같이 온 아이들까지 빠짐없이 집으로 초청해 가난한 솥뚜껑을 여닫으면서 풍성한 기쁨으로 대접하는 환한 모습은 마치 흰 옷 입은 천사 같았다. 어머니는 교회 부흥회가 많던 시절 강사 목사님들이나, 또 교회에 어떤 모임이 있어 외부에서 교역자들이 방문하면 (교회를 설립하고 지켜온 1대 원로장로인 아버님에 이어 남편이 2대 장로인 가정이기도 했기에) 어느 교역자든지 오실 때 마다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주무시기에 불편함 없이 이불을 마련하고 바다와 논밭에서 거둬들인 반찬을 정성껏 준비하여 가난하지만 최선을 다해 섬기셨다.

쌀이 부족해 보리밥 많이 먹던 시절 간혹 쌀이 떨어져 이웃에게 조금 빌려 온 쌀로 교역자들에게 따로 쌀밥을 해 드리고 때론 밥 속에 당시로서는 귀했던 달걀을 넣어 몰래 대접하셨던 어머니는 엘리야를 대접한 사르밧 과부 같았으며 엘리사를 대접한 수넴여인이었다.


150호 쯤 되는 마을에 만나는 사람마다 손을 붙잡고 "예수님 믿자"고 전도하시면서 쌈짓돈 꺼내 쥐어주며 예배당 올 때 헌금하라며 전도하셨고, 동네에 아픈 환자가 있으면 찾아다니시며 위로하고 눈물로 기도하시던 어머니는 16년 전 교회 부흥회를 앞두고 며칠 동안 집집마다 심방하고 예수님을 전한 후에 마지막 날 모든 심방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시다가 당신의 대문 앞에서 과로로 쓰러져 14일 만에 65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별세하셨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동네가 울었고 교회가 울었다. 어머니는 예수님을 너무 사랑한 여인이었다. 어머니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천사였다. 그러기에 그 어머니는 교회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했다. 어머니는 예수님과 함께 한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막내아들에게 보여주고 떠나 가셨던 것이다.

"어머니! 사랑하는 막내아들입니다. 보고 싶은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 너무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에게서 평생 욕 한 번 듣지 못했고, 화 한 번 내는 것 보지 못하며 컸던 저는 당신을 예수님 닮은 천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배고픈 시절 당신 젖이 부족해 밥을 씹어 우리를 먹이고 키워 가면서 주변의 배고픈 자를 위해서는 주저하지 않고 밥 퍼 주었던 당신은 사랑의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가 새벽마다 필자를 안고 기도할 때 그분의 뜨거운 눈물이 얼굴에 맺혀 아롱거리다 나의 얼굴에 떨어져 같이 울며 기도한 적이 그 얼마나 많았던가.

어머니는 필자를 도회지의 고등학교로 유학 보내면서 당신 품에 안고는 "내가 매일 너를 품에 안고 기도 못해주니 너는 아주 큰 예수님을, 그 쪽에서 팔을 붙들고 기도하고 나는 이쪽에서 팔을 붙들고 기도하면 서로 통할 것이다"하시며, 기도로 교통하는 지혜를 가르쳐주셨다.

어머니 영결식 날 하늘이 하도 울어 많은 비가 내렸고, 온 동네 온 교회 사람들이 동구 밖까지 나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천국으로 향한 천사 같은 어머니를 송별했다.

어머니, 어머니가 무척이나 보고 싶다. 막내인 필자가 커서 요셉같은 사람이 되라며 늘 축복하셨던 어머니의 기도를 어찌 하루라도 잊을 수가 있었겠는가? 어머니의 그 많은 일상이 감동적인 신앙의 삶인데 짧은 글로 노트에 남기려하니 다 기록하지도 못하고 어머니를 다 표현하지도 못해 죄송할 뿐이다.

어머니의 삶의 모습이 필자의 삶의 지표가 됐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요셉처럼 견디고 인내하는 자, 사명감으로 책임을 다하는 자, 베풀고 돌아보는 자 주의 법도를 떠나지 않는 자, 선하고 좋은 열매 맺는 자 되어 여러 곳에 꼭 필요한 어머니의 아들이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어머니! 어머니가 사랑하는 이 막내 아들이 장로가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삶과 신앙을 본받겠습니다. 어머니가 저에게 매일 아침 기도해 주신 것처럼 어머니의 막내 며느리가 학교 가는 아이를 보듬고 유치원 때보다 훌쩍 커버린 지금까지도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늘 그렇게 했던 사랑하는 어머니를 떠올리곤 한답니다. 그런데 어머니! 이제는 세상도 교회도 풍부해져서 교회에 성미도 없어지고, 교회를 지키고 청소하는 분도 계시고, 새 돈을 쉽게 구할 수 있어 헌금하기도 좋고, 참 편해진 교회 생활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방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막내아들이 되겠습니다. 어머니 천국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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