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9월 8~13일

[가정예배]9월 8~13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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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03일(수) 11:20

월-성경은 과연 진실한가?
본문 : 창 10:25
찬송 : 460장

창세기 1장부터 11장이 신화라고 가르치는 교수님들이 많이 있다. 심지어 설교를 하는 목사님들조차 하나님의 주권이라 하면서도 창세기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못 하거나 자신 있게 가르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성경은 증명되고 고고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성경은 증명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도입하면 창세기의 시간개념이 풀리고, 불가사의라고 말하는 유적들은 고고학의 발견과 성경을 증명해 준다. 수많은 증거들을 다 열거할 수 없어 일반적인 것 한 가지를 통해 성경의 진실을 설명하려 한다.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창 10:25)."
 
세상이 나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성학자들은 대다수가 언어가 나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에벨은 두 아들을 낳아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 때에 땅이 나뉘었음이요 그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대상 1:19)"
 
역대상에는 분명히 땅이 나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과학에서 말하는 대륙이동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에벨이 두 아들을 낳았을 때는 창세기 5장을 분석하면 노아 홍수 후 100년 되는 해이다. 홍수가 나던 날은 이렇게 기록되었다.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40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간단하게 기록되었지만 현재의 지질학적으로 보면 굉장한 격변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랜드캐년의 조개껍질과 해조류가 남아있는 벽들, 남미의 티티카카호수 등으로 유추할 때 지구는 큰 몸살을 앓았다. 지하 암벽판들이 깨어지고 균열이 가서 조금씩 움직이다가 서서히 한 덩어리었던 지구가 6개의 대륙으로 나뉘어진 것이라 주장한다. 티티카카호수는 해발 3810미터의 높이에 있는데 이 호수에는 페루와 볼리비아의 국경선이 있다. 호수 주변에는 수 천 만개의 조개껍질 화석이 존재한다. 이것은 아마 남아메리카 대륙 전체가 융기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현상이다. 그리고 이 호수에는 아직도 해양생물이 살고 있다. 즉 물이 바닷물이다. 이러한 현상을 과학도 증명하지 못하고 불가사의 한 일이라고만 이야기한다.
 
그러나 답이 있으니 바로 성경이다. 노아 홍수가 기원전 2500년에 일어났다. 그러므로 4500년전 땅이 나뉘일 때 대륙의 융기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 이론은 필자의 믿음의 가설이다. 과학자들의 주장도 가설이므로 두 가설의 충돌인 것이다.
 
성경의 진실을 믿기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이며 진리이다. 어설픈 과학 지식으로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 우주의 원리와 자연의 이치를 깨달으며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능력을 찬양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현우 목사
/꿈의교회


화-숲을 보며 시야를 넓혀라!
본문 : 출 16:1~3
찬송 : 377장

감사의 말, 기쁨의 말, 힘이 나는 말을 하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자신과 이웃을 피곤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아름답고 풍요로운 에덴동산을 선물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렇게 큰 복을 받은 사람이 그만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 하나에 집착한다. 에덴동산을 통째로 선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선악과 한 그루에 집착해서 사단의 유혹에 넘어지고 만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삶의 터전인 에덴동산을 주시며 안식일도 허락하시고 하와와 함께 서로 동역할 수 있는 길도 터 주셨다. 이 모든 게 실로 놀라운 복이었다. 그런데 정말 사소한 것에 흔들리고 말았다. 숲을 보지 못하고 작은 것에 붙들리면 그때부터 인생이 피곤해진다.

혹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만 가지를 뒤로 하고, 허락하지 않으신 한 가지에만 집착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러한 우를 범했다.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노예생활을 했다. 말할 수 없이 고되고 피곤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처지에 놓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참 자유와 생명을 구가하며 살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생활로부터 해방된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을 보내시고 모든 상황과 조건을 직접 이끄셔서 그들을 보듬어 건져내신 것이다. 출애굽 후 많은 여인들이 춤추며 노래하고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에 감사하며 경배하였다.
 
그런데 시내산을 향해 가는 도중 식량이 모두 떨어지자 불평이 시작된다.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서 떡을 배불리 먹었던 때가 좋았는데, 왜 이 황량한 광야까지 우리를 이끌고 와서 굶어 죽게 하는 겁니까?"
 
불평을 쏟아놓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 상황을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돌보시고 이끄셨으며, 어떤 능력을 가지신 분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탓하지 않으시고 하늘 문을 열어 만나를 내려주신다. 하나님의 깊은 계획 속에 이미 만나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그들이 스스로 양식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사실도 잘 알고 계셨다.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식이 조금이라도 더 깊었다면 그들의 순종을 기다셨던 하나님의 속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에 집착하는 것,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인생을 피곤하게 만든다.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그분의 계획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기대하시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 구하기도 전에 예비해 주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선미 목사
/예지교회


수-행복을 위하여
본문 : 신 10:12~15
찬송 : 408장

사람들은 환경이 바뀌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금만 더 가지면, 지금의 고통이 지나기만 하면 행복이 올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지금의 모습 속에 있다. 지금의 내 모습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면 평생 행복의 파랑새만 좇다가 지친 영혼으로 살아가게 된다.
 
본문은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대답은 이렇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다.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즉 행복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면 저절로 온다는 것이다.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이기 때문이다. 본문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할 이유가 우리들의 행복을 위함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하나님의 소원도 택하신 백성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며 형통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그렇다면 행복을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다르게 나타난다. 가치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복과 불행이 나눠지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받아 행복한 삶을 누리며, 죽어서도 큰 상급을 받게 된다. 하지만 육체의 욕망을 좇아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진노로 불행의 늪에서 허덕이게 되며, 훗날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될 것이다. 물욕은 행복농장의 가시떨기와 같다.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마 13:22)." 재물의 유혹 즉 물질에 대한 집착이 행복 농장의 결실을 방해하는 가시떨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질보다 물질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다음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섬기는 인생은 행복하다. 본문 12절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에서 섬긴다는 것은 사랑의 외적인 표현이다. 사랑을 고백하고 사랑을 한다면 반드시 그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밖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러므로 섬기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말씀을 듣는 것으로 그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가 될 수가 없다.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 세상을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얻게 되는 것임을 명심하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섬겨 참된 행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세일 목사
/고산동부교회


목-새 삶을 시작하며
본문 : 신 26:1~11
찬송 : 588장

모세는 앞으로 가나안 땅에서 새 삶을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삶의 자세를 가르쳐 준다. 무엇보다 새로운 삶을 사는 이들의 가장 중요한 삶의 자세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모습이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감사를 하라
 
5~9절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파란만장했던 지난 과거의 역사가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는 고통과 고난의 역사 속에 함께 하셨던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게 만든다. 이처럼 우리의 감사는 자신의 인생과 삶 속에 동행하고 은혜 주셨던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모토로 해야 한다.
 
배은망덕이란 말이 있듯, 자신의 어려웠던 때를 기억하지 못하고, 그 생의 순간에 함께 하셨던 주의 은혜를 망각하는 자가 이에 해당한다. 은혜를 기억해 내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어여쁜 일이다. 마치 사진첩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기억을 되살리듯, 우리가 살아온 날들 속에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 은혜 속에 빠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감사하는 사람은 더 큰 감사의 열매를 얻는다.
 
하나님을 기대하는 감사를 하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에 거주할 때에…" 그리고 뒤이어 약속의 땅에서 나는 소산의 열매를 얻었을 때 해야 할 감사의 고백이 나온다. 앞으로 되어질 미래에 대한 감사이다.
 
이 고백을 드리는 이들은 지금 광야에 있다. 비록 뜨겁게 내리쬐는 광야 한 복판에서 아직 약속의 땅이 현실로 체감되지 않는 그 상황 속에 있지만 그들은 감사의 고백을 배우며 앞으로 그들에게 현실이 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기대감 속에서 감사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지난 세월 은혜 베푸셨던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는 변함없이 미래에도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하나님을 기대하며 감사하자.
 
풍성한 감사를 누려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기억과 또 하나님에 대한 기대 속에 드리는 감사의 봉헌은 더욱 확장되어야 한다. 우리가 더더욱 풍성한 감사를 누리는 방법은 그 은혜의 복을 그 감사함을 사람들과 함께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며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다.
 
감사가 있으면 아까움이 없어진다. 더더욱 나누고 싶고, 베풀고 싶고, 함께 하고픈 것이 감사의 성질이다. 감사의 클라이맥스는 '함께 더불어 나누는 삶'에 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의 복을 나누고 감사를 더 풍성히 나누자.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모습은 이와 같다.
 
오늘의 기도
 
새로운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새 삶을 살게 하소서. 감사로 우리의 삶을 채워가게 하시고, 무엇보다 주께서 주신 복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풍성한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안치석 목사
/생극교회


금-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옵소서
본문 : 시 90:10~12
찬송 : 450장

아이들은 방학을 마칠 때가 되면 굉장히 분주해진다. 방학과 함께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만 그동안 미루어 놓았던 숙제를 하느라 바쁘다. 선생님께 혼날 것을 생각하니 개학이 두렵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보냈을 때에는 사명을 주셨고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돕는 사람도 붙여주셨다. 하지만 우리는 사명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은 차일피일 미루어 놓을 때가 많다. 시간의 한계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시간을 지혜롭게 잘 사용하여 무익한 일에 사로잡혀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첫째로 지혜로운 마음은 우리의 인생이 짧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을 아는 것이다. 모세는 120세까지 살다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다가 하나님 앞에 갔다. 그는 삶을 통해 고백한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세월은 얼마나 빨리 가는 지 날아간다고 표현하고 있다.
 
둘째로 지혜로운 마음은 우리의 인생을 마치고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가 한 일에 심판이 있음을 아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동일하게 주어져 있다. 그래서 한평생을 얼마나 지혜롭게 살았는지, 특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얼마나 잘 감당했는지 드러날 것이다. 우리가정,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반드시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을 사랑한다 해놓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 거짓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믿음 생활을 하지만 형제와 이웃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주님 앞에서 드러날 것이다. 주님 앞에 섰을 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말은 듣지 않길 원한다.
 
셋째로 지혜로운 마음은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를 알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칭찬 듣는 일에 삶의 소원을 두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지혜로운 삶을 사는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할 일이 되고 해야 할일이 하고 싶은 일이 되어 즐겁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된다. 모세는 자기를 배신하고 원망했던 동족을 주님이 주신 사랑으로 끝까지 품고 심지어는 하나님이 진멸하려 할 때 생명을 걸어놓고 하나님께 중보 기도했다. 마침내 그는 그들을 가나안 입구까지 인도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믿지 않거나 믿음이 연약한 많은 사람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우리가 그들을 마음에 품고 중보기도하며 한 영혼이라도 주께로 나아가게 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인생이 짧음을 알게 하시고 잘 보낼 수 있도록 지혜로운 마음을 주시고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계획하도록 인도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성민 목사
/울산호계교회


토-구덩이에 빠진 요셉
본문 : 창 37:12~28
찬송 : 438장

세상에서 완벽한 가정은 없다. 요셉의 집안도 문제가 많았다. 형제가 서로 미워하고, 집을 떠나기도 한다. 아브라함 때부터 거짓말을 하는 나쁜 전통이 있었다. 그러나 이 가정에게 소망이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비전이 있기 때문이다.
 
도단은 요셉과 온 가족에게 있어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장소이다. 좌절의 장소이고 절망의 장소이다. 누가 꿈을 좌절시키는가? 원수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가족이다. 누가 상처를 주는가? 먼 사람이 아니라 가장 가깝게 신뢰하는 사람들이다.
 
꿈 많은 17세 소년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 끔찍한 도단의 구덩이에 빠진 사건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여정에서 중요한 교훈을 준다. 바로 십자가 체험이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경험이다. 필자는 목회를 '내가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자아'와 목회철학을 다 내려놓게 하셨다. 그리고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법, 하나님의 말씀의 제자가 되는 법, 자기를 부인하며 주님을 따르는 법,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섬기는 법을 훈련받게 되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달콤함의 단계가 있다. 기도가 응답되고, 사랑을 독차지하고, 만사가 기쁘고 행복하다. 청소년 요셉처럼 철없이 은혜를 자랑하기도 한다. 그러나 꿈이 성취되려면 시련과 연단의 과정을 통과해서 성숙해져야만 한다.
 
요셉은 달콤함의 단계를 거쳐서, 자기부인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의 상징인 채색옷이 벗겨지고, 절망의 상징인 구덩이에 빠지고, 노예로 팔려가게 된다. 낯선 십자가를 만난 것이다. 인간적인 변명이나 설명을 하지 않고 자기를 부인함으로써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뢰하는 훈련이다.
 
마지막으로 자유함의 단계에 도달한다. 주님과 동행하여 자유함과 형통함을 누리는 단계이다. 자기 부인을 배운 영혼은 노예가 된다 할지라도 자유를 발견하며 자유함을 누린다. 이후로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형통한 자가 된다. 하나님께서 시련의 때마다 예비하신 은혜와 사람을 준비시켜서 인도하시는 것을 경험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수와 상처까지도 사용하셔서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다. "나는 어두움을 좋아하도록 배웠다. 처해 있는 환경이 어두울수록 주님의 얼굴은 더욱 밝게 빛나기 때문이다."(잔느 귀용) 자신의 삶의 현장을 하나님의 안목으로 바라보라. 하나님은 지금 나와 함께 하고 계신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의 상처와 실수들까지도 주님께 의탁하오니, 인간의 악과 실수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덕영 목사
/삼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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