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진재(大震災)를 겪고서

동일본 대진재(大震災)를 겪고서

[ 땅끝에서온편지 ] 땅끝에서온편지/일본 김병호 선교사편(9)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4년 09월 02일(화) 18:44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그 날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오후 2시 45분 1층의 목사 사택에서 혼자 있을 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큰 흔들림이 있었다. 그 흔들림에 본능에 따라 밖으로 뛰쳐나갔다. 동네 사람들도 모두 밖으로 나와서 가로수 등에 몸을 의지하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전신주의 전깃줄이 크게 흔들이면서 '휭휭'하는 소리를 내고 한참이 지나서야 멈춘 것 같이 집 안으로 들어와 보니 선반의 물건들이 넘어져 있었다. TV에서는 동경보다는 동북지방에 큰 지진이 왔으며 곧 큰 쓰나미가 도달한다면서 해안가의 사람들은 빨리 도망갈 것을 경고하였다. 동경만의 어느 매축지에서는 큰 건물이 무너지면서 화재가 났다고 중계를 하고, 인근 지바 현의 공업 단지에는 큰 기름 탱크가 폭발했다는 뉴스와 함께 동북지방의 생생한 피해 상황이 화면으로, 그리고 조금 후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큰 해일이 해변 도시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한국의 어느 교회에서 구호를 위해 발 빠르게 구호금을 가지고 당일 저녁 동경에 도착해서 동경지역의 선교사들에게 구호물품을 구매해서 재해 지역으로 가자고 하지만 모든 교통이 끊기고 통신도 끊긴 상태에서 갈 길이 묘연하였다. 즉 특공대는 탄알은 많이 가지고 왔는데 진작 총도 없을 뿐 아니라 전선에 투입할 만한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 아무런 정보도 없을뿐더러 계획성 없이 영웅 심리를 가지고 매스컴 기자를 대동하고 왔던 군중들에 불과할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후쿠시마(福島) 해변에 건설하여 가동 중인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게 됨으로 엄청난 방사능이 유출되었다는 소식에 온 세계가 발칵 뒤집힌 것이다.
 
동경에서 뉴스를 접하기만 하고 가슴만 조아리고 있었는데, 본 총회 사회봉사부 총무 이승열 목사로부터 연락이 와서 긴급 구호를 위해서 총회적으로 전국교회에 모금 요청을 하였으며 긴급구호를 위해서 동경으로 오겠다고 한 날이 대지진으로부터 5일째 되는 날이었다. 상황 파악을 위해 재해 지역으로 갈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3월 16일(수)에 동경 하네다 공항에 총무 이승열 목사, 간사 안홍철 목사, 기독공보 표현모 기자가 도착했다. 재동경 선교사들(조중래, 임태호, 강장식) 그리고 오사카에서 온 정연원 선교사와 함께 현지 대책위원회를 열어 재해지로 가기 위한 회의를 했지만, 300킬로가 넘는 재해 지역까지의 거리를, 고속도로는 파괴되어 못 다니고, 일반도로를 이용하여 우회할 경우에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고, 또한 자동차를 움직이는 휘발유 공급이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방사능 오염지역을 지나간다는 것도 엄청난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결국, 재해지 방문은 포기하고, 일본기독교단 총회장 이시바시 히데오 목사 일행이 며칠 동안 재해 지역 일부를 방문하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날 만나서 피해 상황 등을 청취했다. 그 내용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난 피해를 보고 많은 사람이 고통 속에 있는 것과 몇몇 교회들이 건물이 상하여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이고, 쓰나미로 인하여 교인들과 교인들 가족 중에 행방불명된 이가 많다는 것이었지만 아직 제대로 파악이 안 된 상태였다. 그리고 재해지 교회에서는 목회자를 중심으로 구호활동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상황의 보고였다. 현지 대책위원회와 총회 사회봉사부와의 긴급회의에서 우선은 상황을 좀 더 지켜보면서 필요한 곳, 적재적소에 긴급구호 활동을 해 나가자고 의논하고 이승열목사 일행은 귀국하였다.
 
한국에서는 매스컴이 일본의 극단적인 피해 상황을 뉴스를 하는 관계로 즉, 일본에 큰 재앙이 와서, 특히 방사능 유출과 오염 때문에 일본은 이제 살 수 없는 나라라고 하니, 저녁 9시 뉴스가 끝나면서 한국의 지인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빨리 철수하고 귀국하라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몇 안되는 유학생으로부터 시작해서 한국에서 온 교우들이 서둘러 일단 귀국을 하였다. 일본에서 출생하였거나 생활 근거가 일본에 있는 교우들을 제외하고는 다 귀국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파송 선교사들은 한국 본부로부터 빨리 귀국하라고 항공료까지 지급하기도 하여 지역의 감리고 선교사들은 가족들과 함께 일시 귀국을 하였고, 어떤 선교사는 가족들부터 먼저 귀국시키기도 하였다.
 
필자에게도 동료 목사 혹은 형제들이 귀국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권유가 있었지만 이곳에 교인들도 남아 있는 상태인데다가 한국 뉴스와는 달리 이곳은 복구를 위해 서로 도우며 노력하고 있으며, 방사능 오염에 관한 것도 후쿠시마에서 250킬로 떨어진 동경은 그런 데로 안심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일본인들이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있어서 귀국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일본교회와 재일대한기독교회에서도 모금 활동에 들어갔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식품이나 생필품에 관해서는 일본이 남아도는 형편인데도 한국에서의 구호 단체 등에서는 "뭘 보내 줄까?", "뭘 해가면 되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피해 지역의 센다이(仙台)의 일본교회 구호센터에 연락해 보면 제발 물건은 가져오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가보니까 일본 전국에서 보내온 식품 및 생필품이 창고에 가득 쌓여있었다. 구호센터에서의 요구는 물건은 가져오지 말고 물품을 운반하여 나눌 수 있는 교통수단을 제공해 달라는 것이었다. 실제 재해지에서 물건 운반할 트럭이나 봉고차자 부족하였고, 휘발유가 없어서 구호물품을 전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봉사부의 도움을 받아, 구호 지역으로는, 센다이를 중심으로 하는 대도시 재해 지역에는 매스컴의 눈도 많이 가고 구호의 손길이 넘치지만, 메스컴의 눈길이 많이 가지 않으며 구호에 좀 소외되는 오우(奧羽)교구의 지역을 집중적으로 지원활동을 할 것과 실제 구호에 요긴한 것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 하여, 전기가 끊어진 재해지에 태양열 랜턴 수 백 개를 봉고차에 싣고 일일이 방문하며 전달하였고, 교통이 불편한 재해지 교회의 구호 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수 십 대의 전동자전거를 트럭에 싣고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총회의 전국교회가 일본 재해 구호를 위해 헌금한 기금을 무너진 일본 교회 신축 공사에 보내어져 아름다운 예배당이 건축되어 헌당하였으며, 그 외에도 재해지 복구를 위해 수고하는 교회 교역자 및 신도들을 한국에 초청하여 위로하는 프로그램도 추진하였다.
 
앞으로도 선교적인 차원에서 아직도 제대로 복구되지 아니한 재해 지역 교회와 우리 총회의 노회 혹은 교회와의 계속적인 교류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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