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하시는 하나님 <하>

치유하시는 하나님 <하>

[ 은혜의뜨락 ]

박정곤 장로
2014년 07월 25일(금) 11:45

박정곤 장로
수원영은교회

 
필자는 스스로 똑똑하고 잘 난줄 착각하며 살았다. 교만이 넘쳐서 중학교 3학년 때에 하나님을 멀리했다. 20세 때 발병하면 죽는다는 간디스토마병에 걸렸다가 살아났으면 낮아지고 겸손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대학졸업 후 원하던 대기업에 입사한 것은 똑똑해서가 아니라 당시 경제 성장 때문임을 모든 것을 잃어버린 뒤에야 알았다.

직장생활 2년 후 사표를 던지고 자신감 있게 사업을 시작했다. 주택담보도 부족해 부모님과 동생, 처가의 건물까지 담보해 은행 대출을 했지만 결국 파산했다. 친척들에게 빌린 돈은 20년 동안 나누어 갚았다.

사업이 부도처리 된 후에야 비로소 '나는 잘난 사람이 아니고 부족한 사람'임을 깨달았다. 필자의 교만이 문제였고, 더 큰 잘못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온 것이었다.

아내, 딸, 아들과 함께 살 집이 아니라 잠을 잘 방도 없었다. 참으로 막막해 몸부림치며 기도하던 중에 강남사회복지학교(현 강남대학교)에 재직하게 됐다. 수원에 방 한 칸을 마련해 처음으로 남의 집에 살게 됐다. 가난을 모르던 아내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족 모두 목욕은 부엌에서 하고 아이들 머리도 아내가 직접 잘랐다. 작은 급여였지만 절반 이상을 저금하고 또 적금을 들었다.

지금은 그 견디기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이 축복의 시작이었음을 고백하지만, 당시 우리 가족의 고통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주님 뜻대로 살기를 다짐했다.

우리는 새벽기도, 주일 낮, 저녁, 수요예배 뿐만 아니라 부흥회하는 교회를 찾아가서 기도하고 기도원에서 늦게까지 하나님에게 부르짖으며 기도했다.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지 않고 미루던 중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맨 후 지금은 특별한 경우 아니면 순종한다.

섬기던 교회가 장로 선임 문제로 갈등이 일어나 여러 개로 분리됐고 결국 당회에서 합의해 장로들은 타교회로 이명하게 됐다.

여러 해 동안 분규를 겪으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은 일은 교만이 원인임을 깨닫고 어느 교회든지 분규가 생기면 "하나님 저들을 용서해 주세요"하며 기도하게 된다. 2002년부터 수원영은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말씀과 찬양에 은혜 받아 감사의 눈물을 많이 흘렸다. 지금도 우리 교회는 새신자에게 따뜻한 사랑을 전하는 교회이다.

필자는 일가친척 중에 처음으로 교회에 출석한 '첫 믿음'이다. 포항에서 다섯살 때 포항대송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였다.

아버지의 10남매 중 큰아버지는 결혼 10년이 지나도록 자녀가 없었다. 아버지는 결혼하여 5년 만에 필자가 출생하자 할아버지의 뜻대로 집안의 대를 잇는 큰아버지의 양자로 삼으셨다. 그 후 큰아버지의 둘째 부인이 딸과 아들을 출산함으로 필자는 미운 오리새끼가 됐다. 모진 핍박으로 교회를 찾은 것 같다. 미신을 믿고 굿을 하는 집에서의 교회 출석은 쉽지 않았다.

여동생은 일찍 죽고 남동생은 어머니를 전도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33세에 천국으로 갔다. 동생을 잃은 아픔이 오래도록 나를 힘들게 했지만 천국에서 기쁨으로 만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동생의 가정을 위하여 기도했다.

부족하고 흠이 많은 필자를 위하여 기도의 끈을 놓지 않는 아내, 딸, 아들, 사위, 며느리에게 감사하고, 자손들 역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기에 필자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으며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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