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도 국가도 우릴 우습게 봐"...저무는 인생, 탄식은 늘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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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 <연중기획>이웃의 눈물 /약자의 눈물/1. 탑골공원에서 만난 노인들의 이야기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4년 07월 21일(월) 14:48
   
▲ 말벗이 그리워 탑골공원을 찾는 노인들은 쓸모없는 존재로 바라보는 이 사회의 시각을 거부한다.

지난 3일 늦은 장마로 서울 하늘에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멈췄다를 반복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울 종로 2가에 위치한 탑골공원에는 적지 않은 노인들이 모여 있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팔각정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이 많았지만 추적추적 내리는 비 속에서도 나무 밑 벤치에 앉아 간간히 내리는 비를 아랑곳하지 않고 앉아있는 노인들도 적지 않았다.
 
사적 제354호로 지정되어 있는 탑골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도심 내 공원이다. 고려시대 흥복사가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1465년(세조 11년)에 원각사가 세워졌었다. 지금도 공원 내에는 국보 제2호인 원각사지십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고종 34년 영국인 브라운의 설계에 의해 공원으로 조성된 이곳은 1920년 '파고다공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원했으나 1992년 옛 지명을 따 탑골공원으로 개칭했다. 이곳은 1919년 3ㆍ1운동이 일어났던 곳으로 시민들과 학생들이 이곳에 모여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러한 유구한 역사를 지닌 탑골공원이지만 현재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보다 갈 곳 없는 노인들이 모여 여가를 보내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 1919년 학생 대표가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던 팔각정에는 1차적으로 가정에서 밀려나고, 2차적으로 사회 변화에 따라 밀려난 노인들이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휴식처가 됐다.
 
도시의 인위성에 밀리고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들이 강 하구의 삼각주에 쌓여 가는 모래섬처럼 몰려드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홍익대 조형대학장을 지낸 오근재 교수는 탑골공원을 '퇴적공간'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이곳에 오는 이들은 과거 사업을 크게 했던 사람도 있고, 학자, 고위 공무원이었던 사람도 있다. 할아버지들에게 말을 걸어보면 영어를 섞어가며 말을 하는 할아버지들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갖가지 사연을 안은 수많은 노인들이 습관처럼 이곳을 찾는 이유는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90세의 김방원(가명) 할아버지도 이와 다르지 않다. 김 할아버지는 9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매일 같이 오전 10시면 이곳 탑골공원을 찾아온다. 자주 만나 친해진 또 다른 할아버지들과 11시 30분 정도까지 담소를 나누다가 인근 불교단체에서 주는 무료급식 봉사를 찾아 점심을 해결한다. 점심식사 후 다시 탑골공원을 찾아 마음 맞는 술친구와 함께 막걸리를 마시러 간다. 오늘 파트너는 83세의 이정세(가명) 할아버지다. 인근의 식당에서 막걸리는 한병에 1500원, 안주는 순두부찌개를 먹는데 식사로 먹을 경우는 2000원, 안주로 먹을 경우는 4000원이다. 5000원 정도의 막걸리 값은 한 쪽에서 특별히 공돈이 생기지 않는 한 '더치페이'다. 술을 드시고 벌겋게 취하면 다시 탑골공원으로 와서 술을 깬 뒤 저녁 먹을 때가 되면 귀가하는 것이 김 할아버지의 변하지 않는 일상이다.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이 일상은 변함없다.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에는 탑골공원으로 왔다가 추위를 피해 종로3가 지하철역으로 간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오전 이곳에 와. 10시쯤 나와서 저녁 다 되서야 집에 들어가. 난 집에 있을 수가 없어. 재미도 없고 식구들도 내가 집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고. 매일 와야 친구들도 만나고 심심하지 않지."
 
막걸리 집으로 향하는 김 할아버지 일행과 인사하고 다시 탑골공원으로 돌아와 벤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 명의 할아버지를 만났다.
 
81세, 80세인 할아버지 두 분도 이곳에서 만나 친해진 사이다. 옆에서 둘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치 이야기였다.
 
80세의 정현오(가명) 할아버지는 척 봐도 다리가 불편한 노인이다. 집도 인근이 아닌 강서구란다. 정 할아버지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매일같이 탑골공원에 온다고 한다. 정 할아버지들은 서울복지센터 무료급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하루종일 탑골공원에서 소일한다.
 
"집에 있어봐야 눈치만 보인다고. 자식새끼들은 지 아버지가 언제 죽나 하는 눈으로 바라본다니까. 손주들도 지 할애비는 안중에도 없어요."
 
정 할아버지는 말을 잇다가 갑자기 화가 났는지 톤이 높아진다. 왼손에는 아직 아물지 않은 20cm는 넘을 것 같은 심한 상처가 있었다. 계단에서 넘어져 다쳤는데 그냥 놔두고 있단다.
 
"우리들은 보릿고개 넘고, 6.25 전쟁도 경험하면서도 한국을 이렇게 잘 사는 나라로 만들었는데 가족이나 국가에서는 우리 노인들의 공로를 우습게 아는 것 같아. 전부 다 꼴보기 싫어."
 
정 할아버지는 요즘은 한살 위인 할아버지와 짝궁이 됐다. 탑골공원을 찾는 대부분의 할아버지들은 친한 할아버지들이 많다. 그럼에도 공동체가 형성되지는 않는다. 많은 할아버지들은 이곳에서 같은 처지의 노인들로부터 위안을 받으려고 오지만 '탑골공원 할아버지'로 취급받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저 다른 노인네들은 어떤가 한번 와보고 있다고 대답하는 할아버지들이 많다. 아마도 탑골공원의 일원이 아닌 관찰자로 남고 싶어하는 노인들은 몸은 이곳에 있어도 마음은 바깥세상, 다시 말하면 인구통계로서만 의미있는 존재가 아닌, 생산하고 인정받고 아직은 쓸모있는 존재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수많은 노인들이 있지만 내일 갑자기 안보여도 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만약 내일 안보이면 어디가 아픈가 할 것이고, 며칠 안보이면 저세상 갔겠구만 하는거지."
 
옆에 있던 방영국(가명) 할아버지가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황혼처럼 서서히 저무는 인생에서 할아버지들은 서로 만나고 헤어짐을 무표정하게 반복할 뿐이다. 정에 굶주린 방 할아버지는 이야기할 사람을 잡으면 좀처럼 놓아주지 않는다. 기자도 그 자리에서 수십분 동안 인생교훈을 경청해야 했다.
 
탑골공원을 나서며 방 할아버지가 한 말이 귓가에 남았다.
 
"쓸모가 다해 이제 이곳에서 시간이나 보내며 서서히 저무는거지 뭐. 나도 젊었을 때는 무서운 게 없는 사람이었는데. 살아놓고 보니 인생 정말 금방 간다고."
 
성경에서는 흰머리가 영화의 면류관(잠 16:31)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돈의 가치로 환산하려 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풍토 속에서 이제 '흰머리'는 더 이상 의미 있는 것을 생산할 수 없는 '잉여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성경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을 대해야 하는 마땅한 자세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는 센 머리(백발)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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