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홀로서기

여성의 홀로서기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sscc1963@daum.net
2014년 07월 15일(화) 16:51

와즈다 (감독: 하이파 알 만수르, 드라마, 전체, 2014)

(스포일러 있음)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 문화의 특성상 이슬람 지역의 여성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에 대한 보도가 끊이질 않고 있다. 때맞춰 아랍 지역의 여성 인권의 실태를 고발하는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그을린 사랑', '더 스토닝', '그녀가 떠날 때' 등은 아랍지역 여성들 혹은 그 지역 출신 여성들의 인권이 어떻게 유린되고 있는지를 직접적으로 다룬다.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최초의 여성 감독 알-만수르는 이들 작품과는 조금 다른 길을 선택했다. 이전 영화들처럼 여성인권에 대해 드라마틱한 상황을 연출하지 않으면서도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현실들을 직접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채택하였다.
 
결과적으로 볼 때, 극적인 표현은 이슬람권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와즈다'는 현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실적인 표현을 통해 법을 자극하기는커녕 오히려 법을 수정해 여성들이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만들 정도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비결이 있다면 무엇보다 사실주의가 물씬 풍기는 연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감독은 자신은 물론이고 스탭들의 생명을 노리는 갖가지 경고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제 현실을 담으려 노력하였다.
 
감독은 여성으로서 흔히 겪을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모습들을 보여주는 몇 개의 장면을 연출하였다. 여성들은 자기 돈을 주고 타는 자동차라도 기사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고(여성들은 자동차 운전이 금지되었다), 남자들이 보는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놓고 노는 것을 수치로 여기도록 교육 받는다. 좋은 조건의 일자리지만 남자들과 함께 일한다며 남편이 반대해 결국 포기한다.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뒷받침 해주는 것도 아니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성은 남편의 또 다른 결혼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한다. 여성은 끊임없이 남편의 맘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자전거도 타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밖에 나가면 언제나 신체를 가려야 한다. 여성은 홀로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지만 결코 홀로 설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엄마와 함께 사는 어린 와즈다는 이런 환경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자유를 만끽하며 산다. 학교에서 금지된 일들을 하고, 코란을 외우는 일에도 소극적이다. 여자라고 해서 남자에게 뒤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와즈다가 자전거를 타고 싶은 이유는 그녀의 뒤를 따르는 남자 아이와의 달리기에서 지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자전거를 살 수 있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그렇게 하기 싫어하는 코란 공부를 한다. 마침내 원하는 일등을 하여 상금을 탔지만, 상금으로 자전거를 사겠다는 와즈다의 말을 들은 교장은 오히려 기부를 강요한다.
 
자전거는 누구를 의존하지 않은 상태에서 운전자의 힘으로 구동되어 움직이는 이륜차다. 자동차는 기계 엔진이 있고 또 운전자가 있어야 하지만, 자전거는 자기 스스로 움직여야 탈 수 있다는 점에서 홀로서기를 표현하는 데에 적합한 상징이라고 생각된다. 다르덴 형제가 만든 영화 '자전거를 탄 소년'(2011)은 해체된 가정 출신의 한 문제 소년의 홀로서기를 표현하면서 자전거를 소재로 사용하였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이탈리아 로마를 배경으로 한 작품 '자전거 도둑'(1948)의 자전거 역시 전후 시대의 어려운 상황에서 직장 생활의 기반이 되면서 경제적으로 홀로 서기를 가능하게 하는 삶을 상징한다.
도둑맞은 것은 단순히 자전거가 아니라 경제적인 홀로서기였고 한 가족의 미래였다. 그러기에 마지막 순간에 아들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은 경제적인 자주권마저 도둑맞은 어려운 현실에서 삶의 희망은 서로 손을 잡는 것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자전거가 갖는 이런 상징적인 의미는 '와즈다'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어린 소녀 와즈다가 자전거에 집착하는 모습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홀로서기를 추구하는 여성들의 갈망을 표현한다. 빼앗긴 자유와 침탈당한 홀로서기 때문에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와즈다를 남편을 잃은 엄마가 위로하며 대신해서 자전거를 사주는 것은 사회적인 약자의 연대가 갖는 의미를 한층 더 부각시켜 준다. 이 영화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이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일은 여성 인권 해방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다. 여성인권을 보호하고 또 신장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남성 우호적인 사회제도들을 철폐하는 일이지만, 무엇보다 여성들의 홀로서기가 가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알-만수르 감독의 스토리텔링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알 만수르 감독의 연출에서 뛰어난 점은 무엇보다 여성인권 유린의 현실에 대한 분노를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여성들이 부조리한 사회현실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최성수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