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7월 14~19

[가정예배]7월 14~19

[ 가정예배 ]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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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7월 10일(목) 14:14

월-꽃이 피는 마을
본문 : 고후 4:7~15
찬송 : 428장

우리 마을은 3월부터 12월까지 꽃이 피는 마을이다. 꽃이 많이 피는 마을이어서 개화동이라고 부른다.
 
이태극 시인의 '3월은'에 나오는 시구처럼 개나리 진달래 목련 철쭉을 시작으로, 아카시아 라일락, 배롱꽃 그리고 이름 모를 꽃들로 가득한 곳이다. 꽃이 계속 피는 마을에 교회가 있는데, 교회 이름도 '꽃이피는교회'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꽃이 피어 있을 때는 예쁘지만, '화무십일홍'이란 말처럼, 예쁜 꽃이라 해도 10일 이상 가는 꽃이 없다. 꽃이 피어 있나 했더니 쉬 지고, 쉬 떨어진다.  인생이 꽃과 같다. 성경은 인생을 비유하길, 들의 꽃과 같고, 안개와 같고, 질그릇 같다고 하였다. 깨지기 쉽고, 망가지기 쉬운 그릇이 흙으로 만들어진 그릇이다. 청년 땐 건강하고, 세상을 다 소유한 듯 지내는 것 같아도 어느 사이에 병들고, 약해지고, 늙어 쓰러지는 인생이 질그릇 같기 때문이리라. 이처럼 가치 없는 인생이 우리의 삶이다. 질그릇 같은 인생이 가치 있는 인생이 될 수 있다. 우리 마음속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진다.
 
질그릇 같은 내 마음 속에 보배를 담아야 한다. 보배를 내 마음 속에 담아 두면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가장 가치 있는 보배,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담으면 가치 있는 인생이 된다. 보배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가치 있는 존재로 삼으시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가 있는 사람은 시련이 올 때 넉넉히 이긴다. 사방에서 적들이 쳐들어와도 불안하지 않고 넉넉히 이길 힘을 주신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찬송하며 나아가게 하신다.
 
또 때로 답답한 일을 당하고, 난처한 일을 당하고, 소망이 끊어지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도, 절망하지 않게, 낙심하지 않게 인도하신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고난당하고, 또 다른 박해를 받는다. 그러나 큰 시험을 당한다 해도 질그릇을 깨뜨리지 못한다. 시험은 내 육체를 죽이는 것이지, 내 심령을 죽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해가 있기에 오히려 더 주님을 찬양하고, 더 주님을 바라보게 된다. 박해 때문에 더 큰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이다. 지금 당하는 박해보다 더 큰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내 우편에서 말씀하신다. 힘내라 용기를 내라, 내가 함께 하겠다 말씀하신다. '화무십일홍'이지만, 꽃이 피어있는 동안 화사하게, 성실하게, 가치 있게, 주님과 함께 지내고 싶다. 교회 앞 화단에 능소화가 피어 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예수 보배를 간직한 질그릇이 되게 하소서. 사방의 적들을 넉넉히 이기게 하시고 답답한 일을 당할 때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넘어져도 일어나게 하시고, 박해 중에 오히려 더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진수 목사
/개화동교회


화-말씀에 순종하면 구원을 받는다
본문 : 민 21:4~9
찬송 : 446장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순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도, 그 은혜를 금방 잊어버렸다.
 
하나님은 항상 그들의 걸음을 인도해 주셨지만, 그들의 원망은 그치지 않았다. 이처럼 반역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계속된다.
 
네겝 지방에 살고 있던 가나안 왕 아랏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다림 길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랏 왕은 이스라엘을 공격하였고 포로까지 잡았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은 간구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이 백성을 물리쳐 이기게 해 주시면, 저들의 성을 완전히 멸망시키겠습니다." 이스라엘의 간구에 하나님은 응답하셨고, 아랏 왕을 비롯한 가나안 사람들과 성을 완전히 멸망시켰다.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한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해서 행진했다. 홍해 길로 가야 했는데, 에돔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은 곧바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다. "왜 우리를 애굽에서 데리고 나와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 거요? 여기에는 빵도 없고, 물도 없소. 이 형편없는 음식은 이제 지긋지긋하오." 며칠 전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의 나팔을 불었음에도 금방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그들에게 독사를 보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광야의 독사는 맹독성이 있어서 손 쓸 틈이 없이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했다. "우리가 당신과 여호와를 원망함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여호와께 기도드려서 이 뱀들을 없애 주십시오."
 
그들의 회개에 하나님은 구원의 방법을 제시하셨다. "구리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매달아라. 뱀에 물린 사람은 그것을 쳐다보면 살 것이다." 터무니없는 말씀이었지만, 모세는 말씀하신대로 구리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았다. 놀랍게도 뱀에 물린 사람은 누구든지 그것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매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한다. 그러나 그 은혜를 망각한 채 또다시 원망하는 우리를 일깨우기 위해서 고난을 주시기도 한다. 그때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구리뱀을 본 누구든지 살아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말씀에만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소서. 하나님을 향해 원망했던 모든 언행을 진심으로 회개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위홍수 목사
/한우리교회


수-나를 누구와 동일시 할 것인가?
본문 : 눅 18:9~14
찬송 : 455장

우리는 드라마를 보며 극중 인물 중 주인공이나 혹은 의인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목회자들의 고민 중에 하나는 문제있는 성도들이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문제를 보지 못하고, 남의 문제만 찾아낸다는 것이다.
 
본문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신 말씀이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는데,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요, 또 하나는 세리였다. 바리새인은 따로 서서 기도하며 자신은 저 세리와 같은 죄인이 아닌 것을 감사한다고 했다. 반면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나는 죄인이요! 나를 용서하소서!"라며 하나님께 간구했다. 두 사람 중에 누가 의인인가? 하나님께서는 세리를 의롭다 여겨주셨다고 말씀하시며,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첫째, 나는 둘중 누구와 동일한가? '세리'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바리새인과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나를 '의인'의 편에 동일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비유를 대하기에 앞서 먼저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고, 극중 인물 중 나를 누구와 동일시하며 이 비유를 이해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그래야 주님이 말씀하시는 교훈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다.
 
둘째, 누가 의로운 자인가? 의롭다 여기심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하나? 내가 죄인임을 알고, 겸손히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자리에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바리새인의 가장 큰 문제는 '나는 죄를 짓지 않다'는 착각과 그를 착각하게 만든 교만이다. 우리가 감사할 이유는 세리처럼 자신의 죄를 볼수 있어서 감사, 그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진정성 있는 눈물의 회개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만약 우리에게 이런 감사가 없다면 우리는 심각하게 나의 믿음을 점검해야 한다.
 
이제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자. 지금의 나는 누구와 닮아 있는가? 그리고 이제부터 내가 동일시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 이제부터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과 내가 취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결단해 보자. 이것이 우리를 성장하게 하고 성숙하게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안에 스스로 의롭다 여기는 마음을 꺽으시고, 늘 겸손히 죄인임을 고백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창교 목사
/상남교회


목-여호와만 섬기게 하라
본문 : 수 24:14~24
찬송 : 289장

어느 시대든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가나안 축복의 땅에 정착했건만 처음 가졌던 마음들은 사라지고 또 다시 위기를 만난다. 위기는 기회도 되지만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남기기도 한다. 이 사실을 수십 년 동안 온 몸으로 체험했던 노장 여호수아는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어 다급한 마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들을 모두 불러 모으고 무엇이 문제인가를 설명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버리고…"

문제의 핵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한 것이다. 여호수아의 '나와 내 집은'이란 표현을 보면 너희가 어떤 결정을 하든지 나와 내 집은 이미 결정했으니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는 말은 지도자로서 너희가 어떤 결정을 하든지 나는 책임이 없다는 태도로 보인다. 정말 여호수아는 나와 내 집 외에는 아무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이런 말을 던졌을까?
 
여호수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얼만큼 사랑하시는지를 잘 아는 지도자다.
 
하나님은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다"는 여호수아의 고백으로 '올바른 신앙을 내 집 곧 자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 어떤 것도 감수하겠다'란 믿음의 결단을 백성들 앞에 먼저 보이게 함으로 모든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결단을 보고 하나님을 섬기고, 그 신앙을 자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모든 것을 내어놓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어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물려주는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여호수아의 결단을 하나님의 심정으로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긴 것을 돌이키고, 신앙의 바른 고백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깨닫고 여호와께 돌아오고, 서로가 증인이 되어 신앙의 협력자로 이방 신들을 치워 버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청종하는 새로운 결단과 새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의 신앙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와 내 집이 믿음 위에 바른 신앙으로 서 있지 않으면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한결같이 체험되어야 한다. 진심으로 마음을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보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보이지 않는 마음 속에 있는 것까지도 청산하고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며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게 하라. 임마누엘의 주님이 삶속에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믿음의 가정으로 삼아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지금의 신앙을 잃지 않고 신앙인으로 날마다 삶속에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상례 목사
/한우리횃불교회


금-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본문 : 삿 16:15~22
찬송 : 254장

삼손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하나님의 일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그가 해야 할 일은 20년 동안 괴롭힘 당한 블레셋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해내는 것이었다. 하나님께로부터 택함 받았고, 그에 따른 능력과 힘도 가지고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결국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잡혀 죽을 날을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런데 본문 21절에서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는 한가닥 희망의 말씀을 발견하게 된다. 삼손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을 생각해보자.
 
첫째, 삼손은 자기 눈에 좋은 대로 행했다.
 
사사 시대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행한 때로 특징지어진다. 그렇게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본문의 삼손이다. 자기 눈에 좋은 대로 끊임없이 이방여인과 기생 그리고 본문의 들릴라까지 눈에 끌리는대로 살았다. 아름다운 여인들을 좇아가며 세상에서 즐길만한 것을 찾기에 분주했던 눈이 마침내 뽑혀버렸다. 육체적으로는 저주를 받았으나 그 순간부터 삼손은 구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육신의 눈을 잃음으로써 영혼의 눈을 얻게 되었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듯이 세상을 향한 눈이 감겨질 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눈을 뜨게 된다.
 
둘째, 삼손은 이방 여인의 무릎에 누워 버렸다.
 
본문 16장은 삼손이 들릴라의 무릎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잡지 않고 여인의 무릎을 베고 누워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영적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때 블레셋 사람들은 머리를 밀어버렸고, 두 눈을 빼 버렸으며, 놋줄로 묶어 감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했다.
 
지금 서서는 안 될 자리에 서 있지는 않는가? 누워서는 안될 자리에 누워 있지는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속히 일어서서 그 자리를 떠나는 은혜를 구하자.
 
셋째, 삼손의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제 삼손은 끝났는가? 22절에서는 "그의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손은 실족했고 유혹을 참지 못해 하나님 앞에 범죄했으며 하나님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진노 중에서도 긍휼과 사랑을 잊지 않으셨다.
 
우리도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는 한, 우리는 회복될 수 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오늘의 기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로 실패하고 넘어지지만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을 발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세동 목사
/경주중앙교회


토-기적은 사랑을 타고
본문 : 막 6:34-44
찬송 : 299장

우리 모두는 기적에 목마르고 복 받기를 갈망하고 산다. 왜일까?
 
이유는 우리의 탐심과 욕망은 크고 모든 욕망을 채우기에 우리의 능력과 여건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법은 둘 중의 하나다. 탐욕을 채우고도 남을 만한 기적과 복이 매일 넘치도록 충만하게 일어나거나 아니면 우리의 욕망을 스스로 조절하는 것이다.
 
인간이 욕망과 탐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선 존재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데 쉽지 않다. 그러면 기적은 일어날 수 없는 것일까? 아니다. 기적은 일어난다. 특히 믿음의 세계는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기적 안에서 사는 삶이다. 그러면 어떻게 기적이 일어날까?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현장 속에서 일어난다. 성서의 기적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의 삶의 현장 안에 나타날 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곧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직면한 홍해의 곤고함 앞에 나타날 때 홍해는 갈라진다. 기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삶에 나타나도록 할 것인가에 해답이 있다. 그리고 그 해답은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의지에 우리가 믿음으로 동참할 수 있느냐에 초점이 있다.
 
분문은 기적을 믿지 못해 기적을 막는 빌립과 기적을 일으켜 사람들을 먹이시려는 주님의 마음이 부딪히는 현장을 고발한다. 빌립의 문제에 대한 해석과 처방은 아주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며 명쾌한 것이다. 그러나 그 분석적인 사고가 기적을 막는다. 그러나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임재와 그의 구원이 나타나야할 이유를 붙잡으시면서 그 문제를 하나님의 영광의 빛 안에서 해결하려고 하신다. 그것이 주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다. 불쌍히 여김의 원어적 뜻은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은 아픔으로 공감함'이다. 그래서 하늘을 찢어서라도 하나님의 구원이 지금 이곳에 임하기를 바라는 간절함이다. 이 간절함이 기적을 만드는 생명의 에너지이다. 문제는 기적을 바라지만 스스로 기적이 일어날 수 없다는 빌립과 같은 우리의 냉정한 마음이다. 예수님께서는 한국교회에 간절함이 있느냐고 우리에게 물으신다.
 
"네가 나의 이 간절함에 동참할 수 있겠느냐?" "그러면 너는 오늘 오병이어의 기적을 매일 네가 내 이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간절한 마음을 우리에게 부어주시고 기적에 동참하는 성도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권석은 목사
/용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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