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7월 7~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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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예배 ]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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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7월 03일(목) 13:51

월-탕자가 더 풍성한 삶을 살게 된 이유
본문 : 눅 15:11~24
찬송 : 304장

윌리암 바클레이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두려워하던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 가까이 하기에 너무나 멀었던 하나님을 날마다 찾고, 가까이 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예수님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인 탕자가 집을 나갔던 것은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면서, 그는 아버지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바로 아는 사람들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첫째로 하나님 아버지는 철없는 자녀에게도 기회를 주시는 분이다. 탕자의 아버지는 유산을 미리 달라는 철없는 둘째아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았다. 둘째가 사리를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인 것을 알면서도 왜 그에게 기회를 주었던 것일까?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 그 어떤 말로도 생각을 돌이키지 않을 아들인줄 알았기에 아버지는 엄청난 재물의 희생을 감수하면서라도 아들이 세상에 나가 인생의 쓴맛을 통해, 철이 들기를 바랬던 것이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꾸중하시기 보다 묵묵히 기다려주고 하나님을 온전히 깨닫고 철이 들 기회를 주신다.
 
둘째로 하나님 아버지는 풍성히 주시는 분이다.
 
모든 것을 잃고, 남의 집에서 돼지 치는 일을 하던 탕자는 내 아버지가 자기집의 하인들에게도 인색함 없이 풍성히 주시는 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 것이었는지를 깨닫는 순간, 탕자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깨닫게 된다. 풍성히 주시는 아버지 품이 은혜의 자리인 것을 깨달은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 아버지는 묻지 않고 용서하시는 분이시다.
 
탕자의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맞이하며 거리가 먼데 그를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며,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었다. 그러면서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다"고 말한다. 이것이 불효자 둘째 아들을 조건없이, 무조건적으로 용서하시는 아버지의 절대용서이고 절대사랑이다.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양자로 삼으시기 위해 독생자를 희생시키셨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바로 알고, 아버지와 바른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나라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무 자격없는 우리들을 용서하시고, 자녀 삼아주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에 더욱 힘쓰게 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창교 목사
/상남교회


화-나를 향한 다림줄
본문 : 암 7:7~9
찬송 : 289장

아모스는 독특한 사람이다. 아모스는 선지자로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시골 출신의 목자였다.
 
그런 아모스에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을 심판에 관한 다섯가지 환상을 보게 한다. 그 중에 한 가지 다림줄을 가지고 성벽 담 곁에 서신 주님의 모습을 보여 준다. 다림줄은 벽을 곧게 쌓을 때 필요한 기구로서 실에 추를 달아 늘어뜨려 중력방향의 수직을 맞추는 도구이다. 그래서 척량 줄이라고도 한다. 다림줄이 담의 수직과 수평의 기준을 제시하는 도구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에 담 곁에서 다림줄을 잡고 서신 주님의 모습은 다림줄을 통하여 주님의 기준에 잘못된 것을 밝히시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 이니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않으리니."(8절)
 
주님이 잡은 다림줄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재어보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만큼 이들의 삶이 어긋났다는 것이다. 어긋난 이들의 현실은 이삭의 산당들이다. 당시 백성들은 이삭을 존경하는 뜻으로 이삭이 예배하던 곳마다 산당을 세웠다. 이는 하나님을 버리고 사람을 숭배한 행위였기 때문에 주님의 다림줄에 어긋난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의 성소에는 우상을 즐비하게 세워두고 이방 신들과의 혼합이 난무해 하나님의 전은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들의 모습은 주님의 다림줄로 재어보면 더 이상은 용서될 수 없는 악행이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이 여로보암의 타락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다림줄은 오류가 없고 언제나 심판과 복의 기준이 된다. 주님의 십자가는 다림줄이다. 모든 것의 기준은 예수님이다. 지금 우리 곁에 다림줄을 들고 서신 주님이 계신다. 하지만 우리는 그 분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유는, 내 기준이 우선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어떤 상태인가? 나 자신을 살펴야 할 때이다. 내 고집, 내 방법을 앞세우는 인본주의적인 삶을 청산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다림줄로 삶을 재어보길 원하신다. 신앙의 기준은 언제나 주님의 다림줄, 말씀, 성경이다. 오직 말씀을 믿고 실천하면서 주님의 다림줄에 가까이 가야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내 기준을 고집하는 신앙인이 아니라 말씀을 믿고 실천하는 성령의 사람으로 삶 가운데 날마다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상례 목사
/한우리횃불교회


수-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본문 : 고전 16:15~18
찬송 : 220장

시원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한 계절이다. 몸이 시원하면 마음도 시원해질까? 오히려 마음이 시원해야 몸도 시원해지지 않을까? 본문 18절에서는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를 가리켜 마음을 시원하게 한 사람들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들의 삶이 어떠했을까?
 
첫째, 스데바나는 아가야의 첫 열매라고 밝히고 있다. 바울 사도가 철학의 도시 아테네에 가서 복음을 전했지만 복음의 열매를 거두지 못했다. 낙심한 후 찾아간 곳이 고린도였다. 그곳에서 다시 사명을 회복하게 되었고, 오직 십자가의 도만 전하겠다고 결단한다. 그리고 얻은 첫 열매가 아가야 지방의 스데바나이다. 스데바나는 스데반과 같은 어원으로 면류관이라는 뜻이다. 스데바나는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은혜였다. 바울에게 있어서 스데바나는 잊지 못할 하나님 나라의 면류관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 열매일 것이다. 그 기쁨과 감사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원한다.
 
둘째, 성도를 섬기는 사람이다. 누구든지 시간과 물질, 재능을 가지고 있다. 많고, 적고, 또는 종류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고 해서 성도를 섬기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많은 것을 갖고 있더라도 섬기지 못한다. 스데바나는 바울 사도에 의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믿음 생활 가운데 힘써 성도를 섬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교회를 섬겨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 스스로를 준비시켰다.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섬김이었다. 이런 모습을 본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시원했겠는가?
 
셋째, 그들이 온 것을 기뻐했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때문에 힘들었다. 서로 파당을 지었고,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서도 의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 이 세 사람은 바울 사도에게 만남 자체로 위로가 되었고 힘이 되었다. 더구나 고린도교회와 바울 사도 사이에 벌어진 틈을 메워주는 사랑의 가교 역할을 감당했다. 만나면 불편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남이 기다려지는 사람도 있다.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상처가 되는 사람도 있다. 생기가 넘치며, 다른 사람들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람이 되자. 우리와 관계 맺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시원함을 가져다주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믿음의 삶을 살면서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리며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세동 목사
/경주중앙교회


목-두 가지의 믿음 사이에서
본문 : 눅 5:1~11
찬송 : 545장

우리의 삶에서 사실이나 사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건에 대한 해석이다.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슬럼가에서 성장하는 청소년들과 부유한 지식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 성장하는 청소년들을 비교해 환경이 그들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했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환경이 일정 부분 청소년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환경이 청소년의 성장에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다. 오히려 청소년의 성장에 더 큰 영향을 준 것은 환경에 대한 각자의 해석이었다. 한 청소년은 좋은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나태함으로 오히려 좋은 환경이 방종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슬럼가에서 성장한 한 소년은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이를 극복해야겠다는 열정이 생겨 오히려 더 큰 성취와 성숙을 이루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러면 사건을 해석하는 해석적 틀인 인간의 가치관과 선택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믿음이다.
 
사람은 자신 안에 구축된 믿음의 체계에 따라 그의 삶을 만들어 간다. 오늘 성경의 베드로는 밤에 얕은 곳에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는다. 그런데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그는 그물을 거둔다. 다음날 또 밤에 얕은 데서 고기를 잡으려는 것이다. 왜 그는 실패한 방식을 다시 선택하는 것일까? 그와 그의 동네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밤에 얕은 곳에서 고기를 잡아야 한다는 믿음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날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지 않으셨으면 베드로는 실패의 방법을 고수하면서 가난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이 그를 새로운 믿음의 체계로 이끌고 가신다. 낮에 깊은 곳에서 고기를 잡는 것이다. 처음에는 머뭇거렸으나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며 깊은 곳에서 고기를 잡는다. 그리고 놀랄만큼 많은 고기를 잡게 된다. 믿을 수 없지만 믿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어디로부터 난 믿음인가? 예수님으로부터 난 믿음이다.어떻게 생긴 믿음인가? 예수님을 신뢰하여 순종을 통해 새롭게 경험된 믿음이다. 그를 찾아오셔서 믿을 수 없는 베드로를 새로운 믿음을 갖도록 인도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통해난 믿음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은혜이다.
 
그리고 더 큰 믿음으로 이끄시는 주님을 통해 새로운 믿음의 세계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는 결국 죽은 자가 부활한 현장에서 부활의 신앙으로 다시 나면서 열린 하나님의 나라를 본다. 그리고 그도 그 믿음으로 살면서 성전 미문에 있는 앉은뱅이를 새로운 믿음의 세계로 이끌어낸다.
 
어두운 밤의 인생, 실패한 삶을 반복하는 믿음의 체계를 깨뜨려야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는 새 믿음으로 오늘을 해석하고 살아야 한다.

오늘의 기도

오늘 하루를 주님과 함께하는 기적을 경험하며 주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하루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권석은 목사
/용전교회


금-하나님은 사랑의 표적을 주신다
본문 : 민 17:8~11
찬송 : 304장

하나님은 우리의 자녀들을 사랑하신다. 말뿐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다. 문제는 하나님의 이 사랑을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도 그것이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자신의 사랑의 증거를 보여 주신다.
 
고라 자손의 반역으로 이스라엘 공동체는 많이 흔들렸다. 하나님이 세우신 모세와 아론의 권위가 많이 흔들렸다. 이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여라. 지파별로 지팡이를 하나씩 거두되, 각 지파의 지도자에게서 지팡이 한 개씩 모두 열두 개를 거두어라. 그리고 지팡이마다 각 지도자의 이름을 써라. 레위 지파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써라. 각 지파의 우두머리마다 지팡이가 한 개씩 있어야 한다. 그 지팡이들을 회막에 두되, 내가 너희를 만나는 언약궤 앞에 놓아 두어라. 내가 한 사람을 선택하면 그 사람의 지팡이에서 싹이 틀 것이다. 너희에게 늘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버릇을 내가 없애 버리겠다"고 말씀하셨다.
 
모세는 열두 개의 지팡이들을 여호와 앞에, 곧 회막 안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다음날 모세가 장막에 들어갔을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 있었다. 레위의 집안을 나타내는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텄던 것이다. 특히 싹이 자라고 꽃이 피더니 살구열매까지 맺혔다. 말라버린 나무 지팡이에 싹이 트고 열매까지 맺혔다는 것은 아론을 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마음을 상징했다. 아론은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였던 것이다.
 
모세는 여호와 앞에 있던 그 지팡이들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지고 나갔다. 모든 사람이 지팡이들을 보았다. 그리고 각자 자기 것을 가지고 갔다. 이때 하나님은 아론의 지팡이를 다시 언약궤 앞에 가져다 놓을 것을 명하셨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언제나 반역하는 이스라엘을 향한 표적으로 삼기 위함이었다.
 
"그 지팡이는 언제나 나에게 반역하는 이 백성에게 표적이 될 것이다. 이 지팡이가 나를 향해 백성이 불평하는 것을 멈추게 하여 그들을 죽지 않게 할 것이다."
 
하나님은 진실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셨다. 매번 반역하였음에도 말이다. 하나님은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통해서 그들의 구원을 위한 표적으로 삼으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도 많이 사랑하신다. 매번 하나님을 잊고 있지만,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기억하시며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 그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 사랑의 표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매순간 바라보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매순간 기억하며 찬양하게 하소서. 사랑의 표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매순간 바라보게 하시고,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을 실천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위홍수 목사
/한우리교회


토-나무처럼 살자
본문 : 시 92:1~15
찬송 : 79장

필자가 섬기는 교회는 산밑에 위치하고 있다. 새벽마다 산에 오르고 나무를 본다. 나무를 보면 윤석정의 '소리없이'란 시가 생각난다. 나무 숲에 들어가/한참을 서 있다가/잠시/나도 나무가 되었다/
 
좋은 나무의 조건은 무엇일까?
 
첫 번째, 뿌리가 든든해야 한다. 자작나무는 단단하고 길고 추위에 잘 견디지만 뿌리가 약하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쉽게 뽑힌다. 우리도 많이 소유했다고 할지라도 뿌리가 약하면 쉽게 뽑힌다. 뿌리는 믿음이다. 믿음이 있어야 여러 시험을 이길 수 있다.
 
두 번째, 기둥이 든든해야 좋은 나무라 할 수 있다. 지리산 제석봉에 구상나무가 많이 있었다. 자유당 말기 농림부 장관의 삼촌이 정권을 이용해서 지리산에 목공소를 차려 놓고, 좋은 나무들을 마구 벌목하여 돈을 모았다. 도벌 사건이 문제가 되자 증거를 없애려고, 제석봉 산에 불을 질러 버렸다. 모든 나무들이 불탔는데 구상나무만 불탄 고사목으로 남아 있다. 기둥이 든든한 나무는 비바람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든든한 기둥은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기둥 같은 성도는 흔들리지 않는다.
 
세 번째로 나무는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나무는 한번 그 자리에 심기면 평생 그 자리에 있다. 나무는 심겨진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는다. 비가 와도 눈이 내려도 다 맞으며 불평 없이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우리 성도들도 항상 그 자리에 있으면 좋겠다. 교회도 한번 정했으면 그 자리에서 기도하는 성도가 되자.
 
네 번째로 나무는 시간이 지나면 열매를 맺는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 성도는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와 같이 신앙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라고 했다. 백향목처럼, 종려나무처럼 살라는 말씀이다. 나무처럼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거짓 없이 사는 것을 말한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다고 했다. 사랑은 진실하다고 했다. 사랑은 하나님이라 했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님은 사랑이고, 진실이고, 진리이다. 나무처럼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내 마음에 모시며 사는 것이다. 그리고 나무는 뿌리와 기둥이 좋아도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받아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 있다. 말씀과 기도가 필요한 이유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나무 같이 뿌리가 든든하고,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늘 공급받으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진수 목사
/개화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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