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6월 23~28일

[가정예배]6월 23~28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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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6월 19일(목) 10:43

월-욥의 갈망
본문 : 욥 19:25~27
찬송 : 380장

욥은 어느 날 사탄의 계교로 인해 재물과 자녀를 비롯하여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잃고 만다. 그 자신은 흉악한 악창이 정수리로 부터 발끝까지 온 몸에 돋아나 괴로움을 당하게 되었다. 진물이 흐르는 몸에서 나는 냄새는 숨 쉬기도 힘든 상태이다. 아무리 건장한 남자라도 죽고 나면 썩어지고 구더기를 모태로 삼을 수밖에 없다. 욥기 17장 14절을 보면 "무덤더러 너는 내 아비라, 구더기더러 너는 내 어미, 내 자매라 할진대 나의 소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소망을 누가 보겠느냐"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욥의 처지는 이만 저만 불쌍한 것이 아니다. 그 냄새와 진물과 고통, 아무도 옆에 있어주지 않는 삭막한 외로움 가운데 홀로 처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욥에게, 멀리서 소문을 듣고 욥의 세 친구가 찾아왔다. 위로하고자 찾아온 친구들이었지만, 칠일 칠야를 함께 지내면서 단 한마디도 그 입을 떼지않았다. 막상 와서 욥의 몰골을 보니 예사롭지가 않았다. '의인이 이렇게 고통을 당할 수가 있는가, 욥이 하나님 앞에 무언가 남모르는 죄를 지은 것이 분명하고 그 죄의 결과로 이렇게 고통당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가장 연장자인 엘리바스가 입을 열었다. "죄 없이 망한 자가 어디 있느냐,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느냐, 아무도 죄 없이 망한 자를 보지 못하였노라. 고난이란 죄의 결과로서 오게 마련이다." 욥은 강변한다. "내가 죄를 지어서 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처음에는 항변하고 동정을 구하던 욥이 그 태도를 바꾸어서 더 이상 인간에게 호소하기를 중단하고, 돌연 하나님에게로 그의 소망을 돌리고 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이것은 욥의 위대한 고백임과 동시에 욥의 갈망이다. 지금 살아 있는 동안에 하나님이 나를 회복시키시고 다시 살게 아니하신다 할지라도 나는 죽어서 육신의 가죽이 벗겨진 후에라도 하나님 앞으로 갈 것이다는 갈망을 품고 있다. 현재를 넘어선 하나님을 반드시 뵈오리라는 변함없는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 욥이 욥다운 것은 이러한 신앙의 면모 때문이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산다. 마지막 희망이 하나님께 있는 자는 다시 일어선다. 욥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갈망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2:5)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하나님을 다시 찬송할 새 은혜를 부어주신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욥의 신앙을 본 받아 어떤 고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힘든 세상을 살아내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안영호 목사
/생명의빛교회


화-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라
본문 : 왕하 5:1~7
찬송 : 459장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 경기에서 한국은 일본과 동메달 결정전을 벌였다. 한국이 이길 경우 동메달은 물론이고 덤으로 출전한 선수들은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병역 면제를 받는 조건은 경기에 나가 1분이라도 뛰는 것이다. 선수로 선발되었지만 경기에 나가 뛰지 않으면 한국이 동메달을 획득해도 병역 면제를 받을 수 없었다.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이 2대 0으로 일본을 이기고 있었고 경기는 마지막 1분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김기희 선수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은 경기를 뛰었다. 그런데 경기 종료 1분을 남겨 놓고 감독은 김기희 선수를 출전시켰다. 김기희 선수는 경기에서 4분을 뛰었다. 마지막 경기에서의 4분의 출전이 김기희 선수에게 병역 면제 혜택을 선물했다. 
 
우리는 큰 것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작은 것은 소홀히 하기 쉽다. 예수님께서는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 마지막 날에 양과 염소로 판가름 나는 원인이 무엇인지 말씀하신다. 그것은 작은 자를 얼마나 예수님처럼 귀하게 여겼느냐이다. 큰 것을 보고 판단하신 것이 아니라 작은 자를 얼마나 귀히 여겼느냐로 판단하신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는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등장한다. 나아만의 집에는 이스라엘에서 사로잡아 온 소녀가 있었다. 나아만은 소녀로 하여금 아내의 수종을 들도록 했다. 이스라엘에서 붙잡혀 온 소녀는 천대 받는 종으로 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의 주동자가 나아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녀는 이들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가졌을 것이고 작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큰 것도 소홀히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아만이 병에 걸렸을 때 소녀는 이스라엘에 있는 선지자에게 갈 것을 권한다. 이 말을 나아만의 아내가 들었고 나아만은 소녀의 말대로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간다.
 
나아만의 아내와 나아만이 어떻게 이 소녀의 말을 신뢰했을까? 이 소녀는 나아만의 아내에게 작은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을 것이고 신뢰를 얻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소녀의 말대로 나아만은 이스라엘로 간 것이다. 소녀의 말대로 나아만은 고침을 받았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기로 결단한다.
 
추측컨대 소녀는 나아만의 집에서 딸 같은 대접을 받았을 것이고 큰 선물과 함께 이스라엘로 보내졌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아만은 하나님을 섬기고 살면서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고치신 하나님을 전했을 것이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영향력 있는 삶의 비결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보잘 것 없는 우리를 위해 귀하신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은 것에 충성하게, 작은 자를 귀히 여기도록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명종 목사
/왕궁제일교회


수-통(通)하는 성도, 통(通)하는 가정
본문 : 잠 15:1~4
찬송 : 569장

'갑돌이와 갑순이는 사랑을 했더래요'라는 노래가 있다. 그런데 왜 갑돌이와 갑순이가 사랑을 이루지 못했을까? 소통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대화는 표현하는 것이다. 인류 최초의 아담과 하와의 비극도 바로 이 대화의 단절에서 왔다. 하와가 아담과 대화가 되었다면 뱀의 유혹이 와도 남편에게 이에 대해 물었을 것이고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일을 남편과 상의도 하지 않고 왜 단독으로 결정했을까? 평상시 대화가 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를 진실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대화가 필요하다. 대화가 되면 닫혔던 인간관계의 문이 열린다.
 
하나님과 솔로몬의 대화는 어땠는가?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린 그날 밤 기브온에서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셨다. 그때 하나님께서 묻는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이때 솔로몬은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라고 답한다. 이에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주의 마음에 든지라"고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의 마음에 든 것은 듣는 마음이다. 경청이 소통의 최우선이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고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 했다. 유순한 대답과 온순한 혀가 되기 위해서 잘 들어야 한다.
 
예수님은 비유를 말씀하실 때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면서 경청을 강조하셨다. 80% 듣고 20% 말하자. 80%를 듣고 나면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뭘 원하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20%를 온순한 혀로 유순한 대답을 할 때 통한다. 대화가 통하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다.
 
통하는 성도, 통하는 가정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죄이다. 언어는 범죄의 결과이다. 인간들은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교만한 마음으로 바벨탑을 쌓았고 하나님께서는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공사를 중단시키셨다. 언어를 잘못 사용하면 죄의 도구로 이용당한다. 사탄은 교묘하게 말로 관계를 깨뜨린다. 서로를 미워하게 하는 중상과 비방의 말을 상대방에게 퍼뜨리면 관계가 악화되고 깨진다. 결국 소통을 잃어버린다.
 
예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로 단절된 불통의 세상을 소통의 세계로 열어주는 소통의 교차로이다. 예수 십자가의 사랑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
 
사랑을 실천하여 통하는 성도, 통하는 가정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듣는 마음을 우리에게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윤호 목사
/대농제일교회


목-용서와 관용으로 미래를 열어가자
본문 : 삼하 19:21~23
찬송 : 342장

사람이 살아가면서 남을 용서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특히 나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적인 손해를 끼친 사람을 용서하기란 더욱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인이기에 용서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같은 죄인을 용서해 주시고 자녀로 받아주시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며 사랑하신 그 은혜를 생각하며 묵상할 때마다 모든 이들을 반드시 용서해야 할 사명을 깨닫는다. 용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출발하는 것이요 타인이 용서받을 만한 자격이 있고 내게 용서를 빌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 가운데 용서를 체험한 성도들은 무조건 용서하며 살아야 한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우리 심령에 평강의 복이 임하는 것이며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러한 자들에게 미래를 열어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안에 있는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롬 14:17-18)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로 반란군 압살롬을 무찌르고 다시 왕권 복귀의 길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그때 다윗이 반란군을 피해 도망할 시 심한 저주와 욕설을 퍼부었던 시므이가 베냐민 사람 일천명과 요단강으로 다윗을 맞으러 나온다. 가장 먼저 다윗을 영접하러 나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해 달라고 애원한다. 이때 옆에 있던 아비새는 그를 죽이려 한다. 하지만 다윗은 용서를 베풀어 그의 안전을 보장해 준다. 시므이도 품어야 할 백성이기 때문이다. 관용은 그 사람의 폭과 깊이를 드러내 준다. 용서하기 힘든 상황이라도 죽을 죄인인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용서를 기억하며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다윗의 이러한 용서와 관용은 주변 사람들을 다윗에게로 돌아오게 하고 온 나라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혼란하던 나라를 안정시키고 새로운 번영의 미래로 나아가게 한다.
 
자신감이 있으면 마음이 넓어진다. 물론 이러한 자신감은 주님을 향한 믿음에서 나온다. 우리가 관용을 베풀지 못하는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가졌다는 자신감과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날 수 있는 승자임을 기억하며 옹졸함을 버리고 용서를 베풀어야 한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먼저 용서하고 관용함으로 가정에서 축복된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우리 모두 평화의 사도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용서와 관용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하시고 가정과 이 민족의 미래를 축복으로 열어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학 목사
/관악중앙교회


금-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
본문 : 요 4:20~26
찬송 : 8장

정통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멸시하고 상종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주님께서는 친히 그들에게 가셨고, 부도덕한 여인을 인격적으로 만나주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다. 모든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예수님께서 경멸의 대상인 이 여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생수 되신 예수님을 믿게 하심으로 자연스럽게 온전한 예배자로 세워 주신 것이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발길이 닿는 곳 어디에서든지 복음을 전하셨다. 사마리아 여인은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 수가성을 복음화 시켰다.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신령한 예배를 드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신앙의 대상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예수님과의 대화가 생수에서 참 예배로 바뀌었다. 예수님께서 "나를 믿으라" 하심은 '나를 신앙의 대상으로 확실히 믿기만 하면 너를 죄에서 구원해 주겠다'는 약속을 성취시켜 준다는 것이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죄 용서함을 통하여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심겨졌다. 그녀는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우리도 사마리아 여인처럼 신앙의 대상을 분명히 갖자.
 
둘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사마리아인들이 그리심산에서 드린 예배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예배, 즉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예배였다. 자기만족을 위해 드리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드리는 예배만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사람의 뜻대로 드리는, 인간적인 것이 개입되는 예배는 인본주의적 예배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자.
 
셋째,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다.
 
예수님 전까지의 유대인들이 드린 예배는 장소적인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그들은 소, 양, 염소, 비둘기를 드렸다. 그러나 이제는 희생의 속죄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완전한 제사로 구약의 제사를 완성하심으로 마무리 하셨다. 이제 예배드리는 장소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영이라는 것이다. 예배의 참된 장소는 우리의 마음이다. 몸만 성전에 나와 있는 것은 신령한 예배가 아니다. 오직 믿음으로 순종하며 겸손히 마음을 다해 예배를 드려야 한다.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외식적인 것이 없이 온전하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마음의 중심을 다해 정직하게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은 지금도 찾고 계신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로서 신앙의 대상을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온전한 예배자로 살아가자.
 
오늘의 기도
 
우리가 걷는 걸음마다, 하는 말마다 오직 주님의 복음만을 증거하는 삶을 살게 해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하연 목사
/열매맺는교회


토-하나님만 바라보라
본문 : 삼상 18:10~16
찬송 : 278장

다윗은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기기도 했다. 사울의 총애를 받아 군대의 장관이 되고, 전쟁에서 지는 법이 없었다. 승리하고 돌아올 때는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왕의 사위까지 되었다. 또 요나단과 같은 좋은 친구가 있었다. 이런 것들을 의지하여 그의 인생은 하늘을 높이 나는 비행기처럼 치솟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그가 의지하던 버팀목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제일 먼저 사라진 것은 지위였다. 다윗은 갑자기 출세를 하였다. 이러한 다윗의 인기와 명성이 사울의 시기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다윗의 지위가 장군에서 천부장으로 떨어졌고, 마침내 완전히 쫓겨나게 된다. 게다가 아내 미갈까지 빼앗기게 된다.
 
이 때 다윗은 사무엘을 만나 그에게 자기의 처지를 말했다. 요즈음 말로 하면 상담을 한 것이다. 우리도 다윗처럼 이 세상의 의지할 만한 것들을 다 잃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들이 찾아가야 할 곳은 바로 교회이고, 영적 스승인 목사이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이 땅에 교회와 목사들을 세워 주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다윗은 사무엘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얼마동안 은신했는데, 결국은 그곳에서도 떠나야 하는 형편에 놓이게 된다.
 
분명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셨고, 그를 특별히 사랑하시고 축복하셨다. 그런데 왜 그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왜 때때로 우리가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빼앗아 가실까?
 
그 답이 고린도 후서에 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왜 우리가 의지할 만한 것들을 다 빼앗아 가실까? 우리로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우리가 의지할 만한 것들을 잃게 하심으로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것이다. 그래서 훈련이 다 되면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주신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늘 주님만 바라봄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남선 목사
/늘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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