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인 대부분 일상생활도 어려운 중증장애인, 자립은 꿈 같은 이야기

교인 대부분 일상생활도 어려운 중증장애인, 자립은 꿈 같은 이야기

[ 기획 ] <연중기획>이웃의 눈물 / 장애인사역자의 애환 … 한마음벧엘교회 김광열 목사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4년 05월 26일(월) 18:31
   
▲ 교회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광열 목사와 아내.

【남원=표현모 차장】 "장애인교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의 특수성을 먼저 이해하셔야 해요. 왜 장애인교회가 필요하냐고 하시는데 비장애인 중심으로 운영되는 일반교회에서 장애인들이 적응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습니다. 접근성의 문제도 있고 정서적인 문제도 있어요. 그리고 장애인들은 직업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 성도는 늘어도 오히려 예산이 늘어나기는 커녕 비용이 더 발생하죠."
 
본교단 남원노회의 한마음벧엘교회(김광열 목사 시무)는 지난 2003년 3월 23일 창립되어 현재 50여 명의 교인들이 출석하고 있는 교회다. 원래 장애인교회로 출발한 한마음벧엘교회는 비장애인 교인들이 늘어나면서 '장애인'이라는 글자를 교회 이름에서 뺐다.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어지고 수평적인 관계에서 교회가 운영되어야 한다는 김 목사의 목회철학 때문이다. 그래도 현재 교인의 70%는 여전히 장애인들이다.
 
출석교인들이 50여 명이면 자립교회가 되는 곳도 많지만 장애인 교인이 많은 한마음벧엘교회는 아직 자립하지 못했다.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장애인들은 직장을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 같아요. 간헐적으로 일을 하는 이들도 40~50만원의 수입이 고작이에요. 창립 이래로 성도는 늘어나는데 헌금은 안늘어요. 사실 교인이 늘수록 재정은 반비례해요. 저희 교회 예산은 고작 2천만원 정도인데 후원금도 줄면 줄었지 느는 추세는 아니에요."
 
장애인 목회의 특징을 설명해달라고 했더니 김 목사는 '통합목회', '대기상황'이라는 단어를 꺼낸다.
 
"장애인 목회는 주일날 예배드리는 개념의 목회가 아니에요. 장애인 중에는 친권자가 없는 이들이 많아 병원이라도 입원하려고 하면 저나 대리인이 가서 병원비를 치르고 수속을 밟아요. 생활 전체에 개입해야 하는 면에서 '통합목회'이고, 언제고 불려나갈 준비를 해야 해서 '대기상황'이에요. 그저 중증장애인들이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해 하죠."
 
그렇다면 장애인교회는 부정적인 특징만 있을까? 아니다. 김 목사의 설명에 따르면 한마음벧엘교회의 장애인 성도들의 헌신과 충성심은 그 어느 교회와 견주더라도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한마음벧엘교회 건물에는 한마음복지문화비전센터라는 간판이 함께 붙어 있다. 교회와 센터는 뗄레야 뗄 수 없는 한몸과 같은 관계다. 한마음벧엘교회의 태동이 한마음복지문화비전센터에서부터 비롯됐기 때문이다. 1985년 신앙을 가진 장애인들이 장애인 선교와 재활을 목적으로 벧엘장애인선교회라는 이름으로 창립한 이 단체는 후에 한마음벧엘교회가 창립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했다.
 
넉넉치 않은 재정과 인력난 속에서도 한마음복지문화비전센터는 지난 2005년부터 늘배움장애인야학교를 설립해 교육의 기회를 놓친 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 야학교를 통해 배움의 때를 놓친 이들이 검정고시에 응시해 다수의 합격자가 배출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이 되고 있는데 지역교회의 관심이 필요한 상태다.
 
야학교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또 다른 사역은 노인병원의 원목실 역할이다. 인근의 효사랑노인병원에 협동목사가 매주 오후에 예배드리고 있다.
 
선교회와 교회를 이끌고 있는 김광열 목사는 1995년 마흔의 나이에 늦게 신학을 시작해 2004년에 안수를 받았다. 20대 초반 평생 일어설 수 없는 장애를 가지게 된 김 목사는 428일간 전주예수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다가 은혜를 체험하고 퇴원해 '못말리는 예수쟁이'가 됐다. 1982년 부산에서 시계도장 기술을 배워 남원에 작은 시계방을 개업한 김 목사는 1984년에는 장애인수련회에 자원봉사를 온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 1986년에는 아들까지 낳았다. 그를 아는 이들은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결혼한 것도 기적이고, 아들을 낳은 것은 더 큰 기적이라고 말한다.
 
한 평도 안되는 작은 공간에서 생업을 꾸렸던 김 목사는 신학을 결심한 후에는 아내가 그 기술을 배워 시계방을 운영해 생활을 꾸렸다. 이 시계방은 지금도 운영된다. 교회의 사례비가 너무 적어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다. 또한, 교회의 장애인들이 기술을 배워 일을 하고 적은 돈이나마 벌 수 있는 일종의 재활훈련장이 되고 있다.
 
교회를 창립한 후 김 목사는 아내에게 단 한번도 생활비를 주어본 적이 없단다. 아내 최성실 씨에 따르면 "생활비를 주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교회에 큰 돈 나갈 일이 있으면 나에게 손을 벌린다"고.
 
이런 고생 속에서도 김 목사가 당당하고, 아내 최 씨가 불평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을 최선을 다해 돌봐야 한다는 철두철미한 목자로서의 사명감 때문이다. 담임목사실에는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잠언27:2)'는 성경구절이 눈에 띄게 걸려 있다.
 
김 목사는 "장애인 사역에 있어 재정적으로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이는 우리 뿐 아니라 전국 어디서도 비슷한 것 같다. 교인은 있는 것 같은데 자립은 못한다"며 "이곳 남원은 생산시설은 없는 소비도시라 일자리가 없다. 장애인들에게는 굉장히 열악한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목사의 목표는 자립교회로의 전환이다.
 
"우리 교회에는 지체, 지적, 뇌성마비, 시각장애인들 등 다양한 장애를 가진 분들이 많아요. 장로님들도 중증장애인들이시죠. 기성교회가 감당하지 못하는 사역을 감당하려면 자립을 해야 하는데 가슴이 답답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적으로 점점 약해져요. 척수를 다친 사람은 내장기관에도 필연적으로 문제가 있어 일상생활 자체가 쉽지 않거든요."
 
장애인교회의 부흥, 정말 답이 없는 것일까? 답답한 마음에 다시 한번 물었더니 김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구조적 한계 속에서 답을 얻으려고 하면 할수록 실망만 커져요. 그냥 질문과 희망을 안은 채 평생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저도 원래 부흥의 꿈을 가지고 살았었어요. 그런데 목회를 하다보니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왜냐하면 매일 숫자에만 집중하니까.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게 뭘까요? 이제 은퇴 11년 정도 남았는데 마음이 급해요. 장애인들 모두 천국 가게 만들어야 하거든요. 이제는 시행착오 겪을 시간도 없어요. 현실에서 고생이 되더라도 괜찮아요. 그저 천국에 가서 '너 정말 수고했다'라는 한 마디만 들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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