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넘어서(上)

한계를 넘어서(上)

[ 더불어함께 ]

이만규 목사
2014년 05월 13일(화) 11:37

여성 리더십 선출 노력은
교회 온전히 세우기 위함
 
우리교단이 여성을 진정한 동역자로 받아드린 여성 안수 허락 20주년을 맞았다. 사실 이것은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무슨 시혜(施惠)를 베푼 것이 아니라 교회를 온전케 하려는 우리교단의 자랑스러운 시도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여성 안수를 허락하지 않고 아직도 여성을 동역자로 받아드리지 못하는 교단들에 비해 우리 교단의 결정은 자랑스러운 시도임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경사로 받아드렸고 이제 뭔가 양성평등의 시대가 열리는 듯 기대하기도 했다. 성도의 70%를 차지하는 여성의 대표가 당회원으로 참여해 교회를 세워가는 일에 지혜를 나눌 수 있고 또 여성목사가 목회 동역자가 되어 남성들이 생각하지 못할 세심한 배려로 성도들을 돌보고 목회를 동역할 수 있음은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분명 축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성안수를 허락하여 여성을 목회 동역자로 받아드린지 20년을 지난 오늘 우리의 현실은 선배들의 용단 앞에 부끄럽고 떳떳하지 못한 형편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교단 역시 아직도 총회 여성 총대가 1% 선에 머물고 아직도 여성총대 할당제가 논의되어야 할 형편이다.

'여성들과 더불어 함께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모두가 다 인정하면서도 이런 정도의 수준에서 제자리걸음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물론 신앙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유교 윤리를 바탕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문화적 편견이나 사회 인식의 영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목회자들이나 당회의 여성에 대한 편견이나 의도적인 여성 비하 때문이 아니라 준비되지 못한 성도들의 의식 문제도 한 몫을 담당했으리라 생각 한다. 교회가 무슨 여성 소외정책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을 지도자로 받아드리기에는 아직도 미흡한 사회적 인식의 탓도 있을 것이다. 많은 교회들이 여성 지도자를 세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여성 지도자가 세워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경우에도 청빙하여 세울 수 있는 부교역자는 8명 중 3명을 여자 목사님으로 모실 수 있었지만 여성 장로님은 이제 겨우 한 분을 세울 수 있을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것도 어느 정도는 의도적인 노력의 결과이고 더 이상은 현실적으로 역부족임을 실감한다. 물론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시겠지만 한국사회와 교회의 문화적 한계이기도 하다. 이는 사실 성서적이거나 신앙적 문제이기 보다는 인식의 문제요, 남성들의 가부장적 오만 만의 문제이기 보다는 여성들의 스스로의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까지 교회 지도력을 독점한 목회자들이 양성평등의 성서적 진리를 바로 가르치지 못했거나 남성우월주의 문화를 개선하려는 노력의 부족의 탓도 있겠지만 인식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이 문제는 양성평등이나 여성 인권의 문제이기 보다는 교회를 바로 세우고 사역을 온전하게 하는 문제이다. 우리는 지금 당연한 일을 특별한 일로 착각하는데 문제가 있다. 여성 지도자를 세우는 것은 여성에 대한 배려이기 보다는 교회를 온전하게 세우기 위함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양성평등의 문제, 여성들의 권리를 회복하는 문제, 사회 운동이나 여성 운동의 차원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한 문제이고 성도들을 바로 돌보고 사역을 바로하기 위함이다. 양성평등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온전성의 문제이다. 교회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바로 세우는 것이 교회지도자의 역할이라면 여성의 역할이나 지도력을 결코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과 함께 더불어 목회하는 것은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함이며 여성 운동이 아니라 참된 교회 운동이다. 함께 더불어 교회를 세우는 아름다운 교회를 꿈꾼다.

신양교회 이만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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