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여유를 배우다

기다림의 여유를 배우다

[ 땅끝에서온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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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4월 29일(화) 14:11
   
▲ 히브리서 말씀 세미나를 마치고 기뻐하는 성도들

성원용 목사
총회 파송 프랑스 선교사

프랑스에 온 지 19년째가 되었다. 30대 초반에 왔는데 어느새 지천명의 언덕인 50살을 넘기고 말았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이 나이만 먹은 것 같아 부끄러울 뿐이다.
 
지난 19년 동안 프랑스에서 살고 사역을 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있다면 '기다림과 여유'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여유를 가지게 되며, 하나님의 일은 믿음으로 기다리면 되고, 또한 하나님의 때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헤밍웨이가 그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젊은 시절에 파리에서 살아보게 될 행운을 충분히 가졌다면, 파리는 이동하는 축제처럼 당신의 남은 일생 동안 당신이 어디를 가든 당신과 함께 머무를 것이다."
 
나는 이런 역사와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멋지게 사역해 보겠다는 부푼 꿈과 설래 이는 마음은 이곳에 도착해서 이국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시차가 극복되면서부터 그 꿈은 산산이 깨지기 시작했다.
 
역사와 예술이 어우러진 멋진 도시를 보면서 걷다보면 발밑에 물컹하고 밟히는 것이 있었다. 개똥인 것이다. 파리는 어디를 가나 개똥밭이었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은 개똥이 매설된 지뢰밭이었다. 나는 개똥을 밟지 않기 위해서 땅을 보고 다니느라고 주위를 감상하며 걸을 여유를 잃어 버렸다. 축제는 무슨…개똥 스트레스뿐인 걸….
 
체류증을 받으러 경시청에 갔다. 새벽부터 줄을 서서 겨우 번호표를 받아 창구에 갔지만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 돌려보낸다. 몇 번에 걸쳐서 체류증을 겨우 발급 받으면 금방 재발급 시기가 돌아온다. 그렇게 17년을 보냈고 지난해에 드디어 10년 장기체류를 받았다. 17년 만에 겨우 안정적인 체류허가를 받은 장기체류증을 받아 들고 마치 대학합격증을 받은 것처럼 기뻐했다. 참으로 오랜 기다림으로 얻은 기쁨이었다. 유럽 사회가 대부분 그렇지만 특히 프랑스라는 나라는 변화가 거의 없는 나라이다. 20년 전에 있던 말뚝이 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앞으로 100년 후에도 그곳에 그대로 있을 것이 예견되는 나라이다. 프랑스는 모든 것이 느리다. 오직 벌금과 세금 청구서만 빨리 날아 온다. 나머지는 모두 느리다. 이런 사회에서 무슨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무모하기까지 하다. 차라리 그 분위에 순응하는 편이 훨씬 속 편한 세상이다.
 
이런 환경에서 나는 교회개척과 한불선교협정과 유럽ㆍ아프리카 불어권 선교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사역을 진행시켜 나갔다. 실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 걸렸다. 프랑스 생활 7년 만에 이루어진 교회개척은 11년이 지난 지금에야 겨우 기반을 갖추게 되었고, 한불선교협정은 시도한지 17년 만에 겨우 이루어졌으며, 유럽과 불어권 선교는 이제 발을 내딛고 있는 상태이다.
 
생각하면 속이 터진다. 다른 지역에서는 안식년 몇 번은 보내고 사역의 꽃이 피었을텐데. 나는 아직 안식년이나 안식월 한번 보내지 못하고 사역 준비하고 기초 닦느라고 19년 걸린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배운 것이 있다. 기다림의 여유. 이것 하나 배우느라고 19년 걸린 것이다. 목회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인데 그것도 참 오래 걸린다. 변화된 줄 알았는데 어느 날에 보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있는 것이다. 그때마다 마음이 내려앉는다. 그래도 10년을 기다리니 가랑비에 속옷 젖듯이 변화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10년 세월에 교인들이 철이 든 것이다. 교인만 철든 것이 아니다. 목회자인 나도 10년 세월동안 철이 들었다. 지금에 와서는 그때 왜 그렇게 했을까 후회막급한 일들이 너무나 많다. 이제는 서로 바라보고만 있어도 서로 마음을 알고 통할 정도가 되었으니 감사하다.
 
이제는 개똥 스트레스도 거의 없다. 땅을 보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개똥을 피해갈 수 있는 선수가 되었고, 어쩌다 개똥을 밟아도 왼쪽 발로 밟았는지 어느 쪽 발로 밟았는지를 살피면서 "왼쪽으로 밟았으니 오늘은 행운이 찾아오겠구나!"라고 너스레를 떨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관공서와 기타 일들을 위해서 하염없이 기다리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묵상과 독서를 즐기는 여유도 생겼고, 어떤 일이 지체되어도 기다리다가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다림의 미학도 터득하게 되었다.
 
선교사로서의 18년, 디아스포라 한인교회 목회자로서 11년을 돌아보면서 나는 '내가 선교하고 교인들을 목회를 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선교와 교회를 통해서 나를 만들어가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주님의 은혜와 성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주님은 철부지 같은 나에게 '기다림의 여유'라는 놀라운 진리를 가르쳐 주셨다.
 
앞으로 남은 50대 60대에는 조급한 마음 대신에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 근거한 '기다림의 여유'를 가지고 즐겁게 사역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사역도 열심히 하고 더불어 이곳에서의 삶도 누리고 즐기면서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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