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

[ 법창에비친교회 ]

서헌제 교수
2014년 04월 24일(목) 09:41

지금으로부터 약 40여 년 전인 1973년, 예장 고신 소속교회 신자이었던 김해여고 학생 5명이 전교생이 모인 합동교련교육지도 시간 중에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한 적이 있다. 국기는 사람이 만든 물체로써 비인격인체이므로 국기에 대해 경례를 함은 우상숭배라는 것이다. 결국 이 학교는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를 학교 교육방침에 위배되는 행위로 보고 이들을 퇴학시키자 학생의 부모들이 그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는 유신체제가 출범하면서 사회 전체를 거대한 군사조직으로 재편하고 고등학교까지 전시 체제를 대비하기 위해 교련이라는 방식으로 군사훈련을 시키던 서슬시퍼런 때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어린 여학생들이 벌인 국기배례 거부는 마치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 거부로 인해 겪었던 고난의 역사를 다시 재현하는 것 아닌가 할 정도로 교회 안밖의 주목을 받았다.

이 사안에서 대법원은 "학교의 징계처분은 우상을 숭배해서는 아니된다는 종교적인 신념을 그 처분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고, 나라의 상징인 국기의 존엄성에 대한 경례를 우상숭배로 단정하고 그 경례를 거부한 행위자체를 처분의 대상으로 한 것이므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종교의 자유가 침해되었다고 할 수 없다"라는 취지에서 소송을 기각했다. 이 사건 이후에 국기경례거부가 소송으로까지 비화된 사례가 없어서 법원이 아직도 이러한 입장을 고수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국기에 대한 경례는 국가의식이므로 신앙의 자유와 무관하다는 판결의 취지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생명체나 인격체가 아닌 국기에 대한 경례를 '우상에게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 위반으로 믿는 사람들에게 경례를 강제하는 것은 신앙의 자유와 직결되는 문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2차 대전 당시 국기경례 거부로 학생들이 퇴학당하는 사태가 발생한 적이 있다. 미국 대법원은 애국심의 고취는 국기경례와 같은 강제적인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달성될 수 있으며, 따라서 국기에 대한 경례가 진행되는 동안 서 있기를 거부하거나 교실을 떠나는 것도 합법이라고 보고 있다.

현행 대한민국 국기법은 국기경례를 국기를 향하여 오른손을 펴서 왼쪽 가슴에 대고 국기를 주목하는 방식으로 정하여 기독교 신자들이 국기경례 문제로 더 이상 신앙양심의 갈등을 일으킬 소지는 적어졌다.

문제는 국기경례와 동시에 방송되는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는 맹세이다. 국가에 대해 '충성을 다하라'는 맹세의 문구에는 '국가가 최우선'이란 의미가 은연 중에 스며있어, 오직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뜻을 가장 우선적으로 따라야 하는 기독교인의 신앙양심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때문에 현행 국기에 대한 맹세문은 '충성할 것을 다짐합니다'로 고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서헌제 교수
중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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