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관람료 '유감'

문화재 관람료 '유감'

[ 법창에비친교회 ]

서헌제 교수
2014년 04월 15일(화) 14:04

얼마전 설악산 국립공원에 설치된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입장하려는데 공원입구 매표소에서 '문화재 관람료' 3600원을 받고 있었다. 매표소 직원에게 신흥사에는 갈 생각이 없는데 문화재 관람료를 받는 근거가 무어냐고 따지니까 설악산 꼭대기까지 다 신흥사 땅이니 무조건 관람료를 내라는 것이다.

정부는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를 폐지해 모든 국민이 국립공원을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허용했다. 도심의 삭막함에 찌든 국민들에게 국립공원이 주는 자연의 혜택을 누리게 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그런데 국립공원 내에 소재하는 사찰들이 정부의 묵인하에 멋대로 공원입구에 매표소를 설치해 이른바 '문화재 관람료'라는 명목으로 상당한 금액의 입장료를 받고 있다. 국민들은 왜 입장료를 내야하는지, 입장료가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르고 자기가 주인인 국립공원에 꼬박꼬박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억울함을 당하고 있다. 법원은 '문화재 관람료'란 사찰이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를 관람할 의사를 가지고 사찰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만, 그리고 사찰 입구에서 받아야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즉 사찰들이 국립공원 입구에 매표소를 설치해 문화재 관람 의사가 없는 국립공원 입장객에게 강제로 받는 것은 불법이므로 받은 문화재관람료를 돌려주라는 것이다. 그러나 거듭된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사찰들은 계속 공원입구에 매표소를 설치해 강제로 입장료를 징수하고 있다. 이는 민사소송에서의 판결은 그 소송을 제기한 사람들에게만 미친다는 기판력의 한계 때문이다. 억울하면 계속 소송해야 하고, 입장료 3600원을 돌려받기 위해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모되는 소송을 할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 체념하고 입장료를 내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가? 문화재 관람료 징수의 근거가 되는 문화재보호법 제49조의 위헌성을 헌법재판소에서 다투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문화재보호법 제49조는 "국가지정문화재의 소유자 또는 보유자는 그 문화재를 공개하는 경우 관람자로부터 관람료를 징수할 수 있다. 관람료는 해당 국가지정문화재의 소유자, 보유자 또는 관리단체가 정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관리단체'는 사찰의 경우 종단으로서 대부분 조계종이 된다. 이 규정에 의하면 관람료를 얼마로 하고 또 징수방법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국민의 대변기관인 국회가 관여할 수 없고 이를 받는 자에게 포괄적으로 맡겨버린 셈이다.

국민의 부담이 되는 관람료의 액수 결정과 징수 방법, 그리고 관람료를 어떠한 용도로 사용하였는지에 대해 국가가 감독을 완전히 포기한 채 이를 특정 종교단체에 포괄적으로 위임한 것은 법률유보원칙과 포괄위임금지원칙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위헌적 처사임은 물론이다. 또한 문화재 보호라는 명목아래 특정 종교에 대한 엄청난 국가적 지원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헌법 제20조가 선언하는 정교분리원칙의 중대한 위반이 아닐 수 없다. 사찰은 법위에, 아니 헌법 위에 있는 셈이다. 국민의 대변인으로 자처하는 국회에서 한때 문화재 관람료 결정을 문화재청장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법 개정 움직임을 보였으나 불교계의 반발에 부딪쳐 곧 철회한 바 있다. 정치적인 표를 의식해서 헌법이 천명하는 정교분리원칙 위반에 눈을 감고, 국민의 권리가 명백히 침해되는 것을 방치하는 국가가 무슨 민주국가인지 묻고 싶다.

서헌제 장로
중앙대 교수ㆍ들꽃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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