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십자가를 세우다

인생의 십자가를 세우다

[ 은혜의뜨락 ] 은혜의뜨락

안영환 장로
2014년 03월 18일(화) 15:54

필자는 김제 죽산에서 5남 1녀 중 삼남으로 태어났다. 먼저 교회에 나가던 누님 안영녀 권사의 손을 잡고 초등학교 이전부터 명량교회에 다니게 됐다. 당시 부모님과 조부모님은 교회를 다니지 않았으나 반대하시지 않아 참으로 평탄하게 예수님과의 만남을 가졌던 것 같다. 그 이후 누님의 전도를 받아 모든 가족이 예수님을 섬기게 되는 은혜를 입었다. 늦게 시작된 믿음의 가정이었으나 매일 뜨겁게 기도하시던 어머니 문종옥 권사의 믿음이 바탕이 되어 3형제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큰 형님 안영목목사와 두 아우 안영진목사, 안영표 목사가 주님을 섬기고 있다.

젊은시절 명량교회 안에서 성도들과의 교제에 기쁨으로 참여하며 신앙적으로 많은 성장을 했다. 돌이켜 보니 16세부터 교회학교 교사를 시작해 아이들을 가르치며 주님에 대해 배웠다. 그것이 기회가 돼 20세 때 아동부전국연합회 활동을 하게됐으며, 쉬지않고 일하다 보니 하나님께서 아동부전국연합회 회장직까지 허락하셨다. 또한 행사때마다 많은 임원들이 참여해 진정한 연합을 이루는 가운데 기쁨과 보람으로 한 회기를 마감할 수 있는 귀한 은혜도 주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업과 가정보다도 연합회 활동에 즐겁고 기쁘게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을 매일 매일 새롭게 주셨기 때문인 것 같다.

하나님은 필자에게 참으로 사람이 줄 수 없는 많은 가르침과 연단의 기회를 주셨다. 광고업에 종사면서 관공서가 주무대 이기에 접대할 상황이 많아 술, 담배의 유혹도 많았다. 억지로 술을 먹이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많았다. 하지만 타협하지 않고 모든 일에 여호와를 경외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그들은 필자의 신앙심을 알아보았다. 그 밖에 여러가지 문제들에 있어서도 신앙 양심을 속이는 섣부른 관계를 맺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며 접대나 로비도 하지않고 일로서 승부를 걸었다. 돌아보면 김제의 시골 동네에서 전주로 나와 터를 잡은 지 35여 년 동안에 몇 가지 사업을 진행하다가 광고업에 뛰어들어, 이제는 주님께서 건실한 (유)일오삼광고공사를 운영하도록 이끄셨다.

광고 업계로 들어오기 전에는 특수도색분야의 사업을 했다. 그 때 전북의 대형 업체와 경쟁하게 됐고 정정당당하게 경쟁할 것을 제안했지만 경쟁업체 사장은 횡포와 속임수로 다가왔다. 간접적으로 누명을 씌우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비방을 퍼뜨리기도 했다. 폭행과 위협도 이어졌다. 지금은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80년대 후반엔 이런 일들이 가능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처음에는 교회에 들어가 기도할 생각도 나지않아 차를몰고 인적이 드문 시골 산길로 차를 몰고가 길가에 세우고 울부짖으며 기도하기도 했다. 그 경쟁사 사장은 이런 횡포로 이미 여러 업체를 그만두게 만들었던 사람이었다.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원수 갚는 것이 주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저 묵묵히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누명이 벗겨지고 음해 시도가 무산되면서 필자를 막지 못한 경쟁사 사장은 그동안 해 온 일을 직원에게 인수하고 업계를 떠났다. 이 과정을 통해 누가 나를 해하려 할 때, 같은 방법으로 원수 갚는 것이 아닌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고 인내 하는 것이 중요함을 배웠다.

주님을 섬기면 섬길수록 그분은 제 삶에 더욱 소중한 분이 되셨다. 교회학교연합회를 섬기면서 생업은 종종 뒷전이 되었다. 거기다 비둘기선교인형극단까지 만들어 실감나고 재미있는 줄인형으로 이곳 저곳 아이들을 위해 뛰어 다녔다. 공연 요청으로 목적지가 정해지면 그 교회 일대를 돌며 가두방송과 어깨띠를 메고 전도지를 들고 아이들은 물론 어른에게까지 전도를 했다. 줄 인형극에 필요한 자료집을 국내에서 구할수 없던 시절, 영국으로 팩스를 보내 기어이 책자를 받아 번역까지 한 후 직접 인형제작을 하기도 했다. 줄 인형은 목재를 깎아 만드는 조각 작업으로 인형이 움직일 수 있도록 관절도 원활하게 맞춰야 하기 때문에 각별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멤버들과 함께 각자 직장이 끝나면 교회로 퇴근을 해 늦은 시간까지 교회 지하에서 힘든 줄도 모르고 인형 제작과 대본 연습을 반복했다. 참으로 주님은 섬기면 섬길수록 존귀한 분이셨다.

광고 업계에서 신뢰를 얻은 후 한국옥외광고협회 전주시지회 지회장이 됐다. 업계의 회원들 중에서 크리스찬 모임인 '예닮애드 선교회'를 만들고 그들과 함께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실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활용해 농어촌 산간 벽지 미자립 교회에 불 꺼진 십자가를 찾아 복음의 빛을 밝히는 일을 시작하게 됐다. 광고협회 전주지회 9명의 신앙인들이 전북 지역 초교파 단체, 노회, 아동부연합회 혹은 그 지역 큰 교회에서 정보를 얻어 분기별로 어려운 교회를 찾았다. 어떤 교회는 6개월 만에, 혹은 3년 만에, 심한 곳은 십자가만 만들어 놓고 네온 설치 비용이 없어 13년째에 비로소 불을 밝히기도 했다. 10년 동안 무료 봉사로 이 일을 계속하게 된 것은 주님의 사랑하심과 신실하심이 필자를 인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일을 전국으로 확산하고 싶은 소망은 처음 시작할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아직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엘이디 십자가 발명 특허를 출원하고 대형 교회에 보급하고, 미자립교회에는 다소나마 혜택을 드리며 전국으로 보급하게 됨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할 것도 없는 필자의 인생에 주님이 찾아 오셨다. 누나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나가던 작고 어린 아이가 이제는 60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가 되어 간다.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 필자의 머리에도 서리가 내려 앉은 모습이 낯설지만, 그래도 필자의 마음에 주님께서 사랑을 부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안영환 장로
전주 전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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