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없는 늙은이들 말 안들으니 목숨 걸고 말할 수밖에"

"힘없는 늙은이들 말 안들으니 목숨 걸고 말할 수밖에"

[ 교단 ] 르포/밀양 송전탑 건설현장 방문, 인권위원들 위로와 격려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4년 03월 10일(월) 17:43
   
▲ 밀양송전탑 농성현장을 방문한 본교단 산하 노회 인권위원들.

【밀양=표현모 차장】 "우리 보상금 더 받으려고 이러는거 아닙니다. 한푼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예전처럼 평화롭게 살고 싶을 뿐입니다. 힘 없고 돈 없는 사람들이라고 우리 이야기는 귓등으로도 안듣습니다. 평생을 살아온 우리 터전에 아무런 협의도 없이 76만5000볼트 송전탑 건립을 무작정 진행하고 귀를 막아버리니 우리는 목숨을 내놓고 이곳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4일 총회 인권위원회 임원 및 각 노회의 인권위 관계자들이 찾은 경남 밀양 부북면 대항리 평밭마을에서 만난 '할매들'은 한국전력측이 전경들과 함께 올라와 기습적으로 공사를 강행할 것을 대비해 129번 송전탑 건축 예정지 앞에 움막을 짓고 주민들 15명 정도가 함께 공동생활을 하고 있었다. 공동생활이라고는 하지만 간이로 지어놓은 허름한 움막이라 전쟁 피난민을 연상케 했다. 생업도, 개인생활도 포기한 채  모여 사는 이유는 오로지 송전탑이 세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인권위원들이 할머니들의 손을 잡고 뒤늦은 방문에 미안함을 표했다. 이에 할매들은 "아닙니더. 관심 갖고 와 주신신 것만으로도 힘이 납니더"라고 고마워했다.
 
현장에서 확인한 마을주민과 한전측 간의 갈등의 골은 생각보다 깊고 심각했다. 밀양시에 건설될 예정인 765 킬로볼트(kV)의 고압 송전선 및 송전탑의 위치 문제를 두고, 지역 주민과 한국전력 사이에서는 총알 없는 전쟁 같은 상황이 진행되고 있었다. 현재 공사가 중단된 곳은 신고리~북경남 송전선(총연장 90.5km로 예정)의 제2구간으로, 송전선은 완공 이후 울산 신고리원자력발전소 3호기에서 생산한 전력을 창녕군의 북경남 변전소로 수송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러한 갈등의 시작은 2001년 5월 한전이 송전선로 경유지 및 변전소 부지 선정을 하고, 2007년 11월 정부가 신고리 원전에서 북경남변전소 756㎸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승인하면서부터다. 2008년 7월부터 해당 지역의 주민들은 송전선로 백지화 요구 첫 궐기대회를 시작으로 지리한 싸움을 시작한 것.
 

   
▲ 마을주민을 포옹하며 위로의 말을 전하는 인권위원.

이 과정에서 2012년 1월 이치우 할아버지가 분신 자살을 하고, 2013년 12월에는 유한숙 씨(71세)마저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했다. 자신들의 뜻이 전해지지 않자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울분을 표현한 것이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뜻이 조금도 반영되지 않고 이야기조차 들으려 하지 않는 정부와 한전측에 마음이 심하게 상한 상태였다. 여기에 공사를 강행하는 과정에서 경찰, 용역, 인부들과 몸싸움을 하다가 부상을 입기도 하고, 견딜 수 없을 만큼 심한 모욕도 당한 상태다.
 
한옥순 씨(67세)는 "인부들이 우리를 '워리워리'하면서 개 부르는 시늉을 하는 등 얼마나 인격 모독을 심하게 했는지 모른다"며 "이곳에 철탑이 세워지면 우리도 아프고 땅도 아프고 하나님도 아프실 것"이라고 말했다.
 
한 씨는 기자를 데리고 송전탑 건설예정 부지의 움막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곳곳에 쇠사슬이 매달려 있고 한쪽에는 기름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한 씨는 "한전에서 강압적으로 공사를 진행하면 우리 주민들은 이곳에 모여 쇠사슬을 목에 묶고 결사항전을 하면서 결국에는 죽음도 불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약 7분 간격으로 계속해서 헬기가 심한 소음을 내며 날아왔다. 건축자재를 이동시키기 위해 헬기는 쉴  새 없이 오갔다.
 
부북리에서 마을주민들을 돕고 있는 NGO '에너지정의행동'의 활동가 정수희 집사(부산새날교회)는 "원래 헬기는 공사 현장 중 6곳에서만 사용하기로 했는데 마을주민들과 갈등이 생기자 36곳에서 사용해 시도 때도 없이 심각한 소음공해를 일으키고 있다"며 "6월까지 공사 완료 예정이라 앞으로 한전측에서 무언가 행동을 할 것으로 예상되어 마을 주민들이 긴장해 잠을 제대로 못자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정 집사는 "지금 현재 4개면(단장, 산외, 상동, 부북)에 52개의 철탑을 만들려고 하고 있는데 이제 14개가 완공된 상태"라며 "외부에서는 밀양 송전탑 문제가 끝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생각보다 공사가 많이 진척된 것은 아니고 되돌릴 수 있는 상태"라며 한국교회의 관심을 호소했다.
 
   
▲ 마을주민들을 통제하고 있는 송전탑 건설 현장에서 기도하고 있는 인권위원들.

이남우 씨(72세)는 "국가적으로 필요한 기간산업인 것은 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인간존엄을 짓밟고 거짓말을 일삼는 것은 도저히 못참겠다"며 "이러한 불의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주민들을 위해 매주 한차례 마을을 방문해 위로를 전하고 있는 본교단 김경태 목사(평화마을교회)는 "마을주민들은 엄청난 보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송전로의 노선변경 혹은 기존 선로에 증설하는 방법, 지중하 방식(땅에 묻는 방법) 등 대안을 고려해달라는 것"이라며 "이치호 어른 같은 경우 자신의 논밭에 철탑이 박히게 돼 가슴을 치다가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밀양765kv송전탑대책위원회의 김준한 신부는 "765000볼트라는 초고압 송전탑은 외국에서는 사람들 거주하는 곳에서는 건립하지 않는다. 미국의 네바다 사막이나, 캐나다와의 국경지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서만 이용한다. 너무 전압이 높아 절연하기 위해 감쌀 수 있는 물질이 없어 엄청난 전자파가 발생한다"며 "송전탑 건설계획과 함께 이분들의 땅은 매매 자체가 안되고 건강도 큰 위협을 받는다. 평생 살아온 땅과 건강을 다 잃는데 보상은 1인당 400만원이다. 평생 땅과 함께 살아온 마을주민들의 생태감수성으로 자신들의 땅에 송전탑이 세워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분들인데 한전과 정부는 어르신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막고 있어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현장을 방문한 총회 인권위원들은 마을주민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인권선교정책협의회에서 헌금한 위로금을 마을 주민들에게 전달하며 격려의 인사를 건냈다. 이 자리에서 인권위원장 김일재 목사는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께서 고통받는 주민들의 상한 마음을 감싸고 위로해주시길 바라고, 이 땅에 반드시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앞으로도 관심을 갖겠다"고 말했다.
 
이날 함께 방문한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안홍철 목사는 "지금 우리가 이분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처럼 현장에 와서 위로하고 함께 예배드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며 "송전탑 문제가 사실 이 땅의 에너지 소비구조 문제로 불거진만큼 이 부분에서 기독교인들의 반성과 회심이 필요하다"며 에너지 사용에 대한 교인들의 각성과 밀양 송전탑 문제에 대한 기도를 당부했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