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변증이 필요하다

기독교 변증이 필요하다

[ 목회·신학 ]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김도훈 교수
2014년 02월 18일(화) 15:47

과학은 하나님의 부재를 입증하는가?

오늘날의 신무신론자들은 과학을 마치 전지전능한 신처럼 생각하여 과학으로 하나님의 부재(不在)를 증명할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자연 안에 하나님의 흔적이 있다면 과학으로 찾을 수 있을 텐데 아무리 찾아도 발견할 수 없으니 하나님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논리적 순환일 뿐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과학의 정의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학을 자연현상에 대한 최적의 설명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유물론적 설명을 찾는 것이라고 본다. 어떤 우주의 지적설계자가 추론될 수 있는 결과가 과학 방법의 결과로 나타날 때, 그들의 결과를 스스로 부정하고 다른 가설을 내세운다. 신은 없어야 하니까. 빅뱅이론이 발견되자 많은 과학자들이 당황했다. 더구나 도킨스류의 신무신론자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 비과학적이어서가 아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도 있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빅뱅이론보다 증거가 더 빈약함에도 다()우주 혹은 다중우주론을 가정할 수밖에 없었다.

과학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신에 대한 믿음은 망상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이것이 그들의 신조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은 진화가설을 도입하였다. 모든 복잡한 것은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원리다. 신은 그 어떤 존재보다 복잡하므로 논리적으로 가장 나중에 생긴 것이며, 나중에 생긴 존재가 최초의 우주를 창조했을 리 없으므로 신은 존재할 수 없으며, 결국 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망상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심지어 물질적 증거만 참 증거이니 신()도 화학등식으로 증명해보라고 우겨댔다. 과학교조주의자가 아니고서는 어찌 이런 주장을 내뱉을 수 있는가. 그들은 신을 잘못 생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진화론을 전제하고 이야기 하는 것이므로, 결국 동어반복이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그들은 스스로 논리적 함정에 빠질 뿐이다. 이것을 애드거스는 다음의 대화를 통해 잘 비판해 주었다. “만물은 누가 만들었나? 신이 만들었다(유신론자). 그럼 신은 누가 만들었나?(무신론자1). 우리가 만들었다(무신론자2). 그럼 우리는 누가 만들었나(유신론자). 진화가 우리를 만들었다(무신론자) 그럼 진화는 누가 만들었나? 진화는 만물의 일부다(무신론자). 그럼 만물은 누가 만들었나?

정말 과학은 모든 것을 증명해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유명 변증가 크레이그는 과학으로 입증할 수는 없지만 합리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다섯 가지 요소들을 언급한 바 있다. 수학과 논리학, 형이상학적 진리, 윤리적 판단(히틀러가 나쁘다는 것은 과학적 증명없이 누구나 인정한다), 미학적 판단(아름다움 역시 과학적 증명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 자체(과학적 방법이 진리를 발견한다는 믿음은 과학적 방법 자체를 통하여 증명 될 수 없다.)가 그것이다. 하버드 생물학자였던 굴드 역시 과학이란 객관적인 정보수집과 지난날의 미신을 파괴하면서 이루어지는, 진리에의 가차 없는 행진이 아니다. 평범한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자들도 무의식적으로 그 시대의 사회정치적 제약을 그들의 이론에 반영한다, 문명비평가 리프킨은 자연과학의 논리도 문명이 결정한다, 토마스 쿤은 하나의 자연과학이라는 것은 기존의 설명모델이나 모형을 새로운 모델로 대체하면서 일어난다고 보았다. 이것은 자연과학도 신념체계이며 과학적 자료와 통계와 결과들을 해석할 때는 이미 과학자 자신 안에 자신만의 철학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정말 권위 있는 과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가? 무신론자들은 사실들을 왜곡하면서까지 진정한 과학자들은 신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과연 그러한가. “과학연구에 진지하게 참여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연법칙이, 인간보다 더없이 우월한 영, 그 앞에서 초라한 능력을 가진 우리가 겸손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영의 존재를 드러낸다고 확신하게 된다.” “불가해한 우주에 드러나 있는 우월한 이성적 능력을 가진 존재에 대한 깊은 확신이 내 안에서 신의 개념을 형성한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그는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영성가였다. 그만 아니다. 막스 플랑크,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에어빈 슈뢰딩거, 폴 디랙, 폴 데이비스, 폴킹혼, 존 배로, 프랜시스 콜린스 등 훌륭한 과학자들이 모두 신의 존재를 인정하거나 종교적 영성을 인정했다. 도킨스의 논리대로 이들은 계몽되지 못한, 과학적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인가? 맥그라스가 탄식한 대로, 신무신론자들은 과학의 역사나 과학철학에 그토록 무지하다니 놀랄 정도다.

과학적 발견은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가?

일반적으로 과학과 종교가 대립관계처럼 보이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이것은 종교를 망상이니, 폭력적이니, 비이성적이니, 반과학적이니 비난하며 종교를 말살해야 할 것으로 주장하고 행동하는 신무신론자들 때문이다. 이들이 과학을 무기로 전선을 확장해 왔기 때문에 변증가들은 그들의 질문을 진지하게 고려하면서 다시 과학으로 대응하고 있다. 가이슬러는 과학적 무신론에 반증할 수 있는 자연과학적 이론으로 열역학 제2법칙, 우주의 팽창, 빅뱅으로부터 방출된 복사선, 우주의 씨앗들, 일반상대성이론을 열거하고 있다. 이 모든 과학이론들은 우주의 시작과 끝을 언급하는 이론들이며, 그러므로 우주의 시작이 있으니 그 시작을 가능케 한 존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과학이 기독교의 진리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잘 입증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잠시 언급한 빅뱅 이론이다. 빅뱅은 우주가 시작이 있음을 말하는 과학이론이다. 변증가들은 이 이론을 전형적으로 우주론적 증명의 하나인 칼람 논증과 연결하여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였다. 칼람 논증이란 존재하기 시작하는 무엇이든 원인을 가진다, 우주는 존재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우주는 원인을 가진다는 논증이다. 간단하지만 깨뜨리기 쉽지 않은 논증이다. 아인슈타인 이전까지만 해도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위의 논증은 기반이 허약했다. 그러나 과학 자체가 빅뱅이론을 통해 우주의 시작을 입증해 주었기 때문에 이 논증이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이 논증은 사실 모든 것이 우연이라는 생각에 충돌되는 논증이었다. 특히 신무신론자들은 생명의 우연한 발생을 주장하기 때문에 더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호일이라는 과학자는, 우연에 의한 생명발생은 마치 고철덩어리를 쌓아놓은 야적장에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니 갑자기 보잉 747이 만들어진 것과 같은 불합리한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무신론의 거두였다가 유신론으로 회심하여 무신론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앤터니 플루(A. Flew)는 과학적 증거를 따라가다 보니 무신론보다는 유신론이 우주를 설명하는 더 적절한 원리라는 것을 인정하고 결국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전향하였다. 유전자 연구의 대가인 콜린스(F. Collins)도 미세조정(fine tuning)된 우주나 엄청난 정보를 담고 있는 DNA에 흔들려 무신론에서 유신론으로 전향하였다. 플루는, 만일 어느 호텔에 들어갔는데 제일 좋아하는 음악이 흐르고, 집에 있는 액자와 동일한 액자가 걸려있고, 제일 좋아하는 향수가 뿌려져 있으며, 미니바에는 제일 좋아하는 음료와 간식거리가 있다면, 그리고 책상위에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놓여있고, TV를 켰는데 좋아하는 채널이 켜있다면, 이 모든 것을 우연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마치 우주가 이처럼 인간이 미리 올 것을 예측이나 한 듯이 미세한 부분까지 조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 우주는 우연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렇게 설계해놓았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우연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조금 관점을 달리하여 재미있는 원숭이 실험을 소개해본다. 생명이 우연히 생겨날 가능성을 옹호하기 위해 만든 비유로서, 한마디로 원숭이들이 컴퓨터 자판을 무한히 두들긴다면 마침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가 나온다는 원숭이 정리를 반박하기 위한 실험이다. 원숭이 6마리로 한 달 동안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게 했고, 원숭이들은 50페이지나 되는 글자를 타이핑했는데, 의미 있는 단어가 단 하나도 없었다는 실험이다. 결코 우연은 없다는 반박실험인 셈이다.

미세조정은 우주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매우 세밀하고 조정되어 있어서 극히 적은 수치만 달라졌어도 오늘날의 우주는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며 또 생명이 살아가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실 신적 설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교하게 조정된 우주와 생명 현상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예를 들어 빛의 속도, 핵력, 우주 안에 있는 물질의 양, 전자의 질량, 전자기력의 힘, 산소의 수준, 대기의 투명도, 중력, 이산화탄소 농도 등이 그런 요소들이다. 그래서 물리학자 폴 데이비스는 하나님을 우주의 정교한 조율자라고 불렀다. 놀랍지 않은가? 산소가 조금만 많거나 부족했다면, 이산화탄소 농도나 빛의 속도가 지금보다 조금만 많거나 적어도. 중력의 힘이 조금만 크거나 적었다면, 우주나 우리는 존재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빅뱅 이후에 일초에 해당하는 팽창비율이 천억 분의 백만 분의 일만큼이라도 더 작아졌다면, 우주는 현재의 크기에 이르기 전에 붕괴하였을 것이다.

결국 무엇이 문제인가?

사실 과학적, 논리적 증거나 증명에 의해 무신론자들은 유신론으로 돌아설 것인가.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논리를 계발하여 신의 부재를 입증하려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과학이나 증거때문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 뒤에 있는 신념 때문이다. 동일한 학교에서 동일하게 생물학을 전공하고 동일하게 무신론자였던 맥그라스와 도킨스가 유신론과 무신론자로 바뀐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결코 과학의 문제가 아니다. 도킨스의 과학 논리대로 하자면 이 세상에 신을 인정하는 과학자가 단 한명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는 과학자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면 결국 그들 마음속에 있는 신념의 문제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믿는 믿음과,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는 믿음의 차이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결국 선택의 문제이고 결단의 문제임을 우리는 직시할 할 필요가 있다. 무신론자들이 무신론자인 것은 자연 안에 하나님의 흔적이 없어서가 아니라 볼 눈을 가지고 있지 못해서이다.

변증은 이 시대의 매우 중요한 그리스도인들의 과제이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셨는지 깊이 인식해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맥그라스의 말을 인용하고 마치고자 한다. "변증은 신학교 강의실에서만 쓰이는 기술이 아닙니다. 기독교사역에 관계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필수적인 도구입니다. 이것은 보다 효과적인 전도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교회사역에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기 이해서도 중요한 도구입니다. 변증은 보다 효과적인 전도를 할 수 있도록 합니다. 동시에 기존 기독교인도 신앙의 질적 깊이를 더하고, 그들의 헌신 속에 적절한 이해와 확신이 갖춰질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김도훈 교수(장신대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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