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 종손녀 "애국가 작사자 논란 종지부"

윤치호 종손녀 "애국가 작사자 논란 종지부"

[ 교계 ]

박성흠 기자 jobin@pckworld.com
2014년 02월 18일(화) 10:06

윤치호 '친필 애국가 가사' 확인

애국가 작사자를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한 가운데 좌옹 윤치호의 종손녀 윤경남 권사(캐나다 토론토 거주)는 최근 "애국가 작사자 논란이 종지부를 찍었다"고 주장해 관심을 모은다.

   
 찬미가
최근 '문화재 제자리 찾기'의 대표 혜문스님과 안민석 의원(민주당) 김준혁 교수(경희대) 등이 미 애틀란타 소재 에모리대학을 방문하고 윤치호가 직접 쓴 '애국가 친필본'을 열람하고 윤치호 친필 애국가와 일기 원본을 확인했다. 이 친필 애국가 가사는 1945년 9월 작성된 것으로 확인됐으며 안 의원 등은 "유력한 작사자가 스스로 밝힌 문서라는 점에서 애국가 작사가 규명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윤 권사는 안 의원 등의 에모리대학 방문과 관련해 윤치호 친필 애국가 가사와 일기 원본이 에모리대학에 보관된 경위를 설명하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남편 민석홍 장로의 '친필 애국가 이야기'를 근거로 1907년 윤치호가 애국가를 포함한 찬미가를 역술(譯術-번역과 저술)한 사실 등 14개 항목을 제시하면서 애국가의 작사자를 안창호로 보는 일부의 시각이 잘못된 것임을 강조했다.

   
 찬미가에 포함된 애국가
그는 "복음찬송에 익숙한 윤치호는 애국가를 찬송가 형식으로 4절까지 쓰고 후렴을 넣어서 작사 하였다. 이것은 교회와 학교에서 애국심을 고취시켜려 했던 것이다. 국가에 4절과 후렴이 있는 나라는 오로지 한국의 애국가뿐"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국내외에서 애국가 작사자로 안창호 선생이 오르내리는 것에 대해서도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08년에 대성학교를 설립하면서 윤치호 선생을 초대 교장으로 모셔갔으며 윤치호 선생은 대성학교 학생들에게 애국가가 포함된 이 '찬미가'를 부르게 한 것이 분명하다"고도 주장했다.

한편 '문화재 제자리 찾기'의 에모리대학 방문으로 애국가 작사가 문제가 재점화되면서 언론들이 주목하고 있다. 논란을 종합하면 애국가 작사자는 △윤치호 △안창호 △윤치호 안창호 공동작업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이와 관련해 윤 권사는 "에모리대학에 소장된 윤치호의 친필 애국가와 일기는 외손자 정태웅 씨가 '대한민국이 윤치호선생을 애국가 작사자로 공인 하면 그때 독립기념관에 돌려주기로' 하고 1990년에 윤치호의 모교에 맡긴 것"이라면서 우리나라에서 윤치호가 애국가 작사자로 공인되지 못한 현실을 아쉬워 했다.

   
 에모리대학교를 방문한 윤경남 권사. 오른쪽에서 두번째.
윤 권사는 또 윤치호 선생이 친일인사이기 때문에 애국가 작사자로 인정할 수 없다거나 애국가를 바꾸자고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박영효가 도안한 한국의 상징인 태극기도 바꾸어야 하느냐? 최남선이 쓴 기미 독립선언서는 없던 것으로 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지금 부르고 있는 안익태 선생이 작곡한 애국가는 어찌해야 하는가"고 묻고 "돌이킬 수 없는 허물이 있어도 성경역사에서 존경을 받는 위대한 지도자들을 생각해 본다"면서 사람의 공과를 떠나 역사적인 사실은 인정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윤 권사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2015년에 "애국가 작사자가 '미상'이 아니라 '윤치호'로 공인이 되기를 기도한다"면서 기독교계의 관심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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