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권력 아닌 하나님 편에 서라

교회, 권력 아닌 하나님 편에 서라

[ 교계 ]

임상필 교수
2014년 01월 24일(금) 15:35

[2월특집] 교회와 정치 ①정교분리란?

교회, 예언자일뿐 권력 위에 굴림해선 안돼
객관적 시각으로 고통 당하는 국민 대변
하나님의 정의 실현에 '정교분리'는 무의미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국가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했다고 검찰이 발표한 후에 대통령과 정부의 사과를 촉구하며 다양한 시국 집회가 종교계의 주도하여 열렸다. 정부 여당은 그런 시국선언과 집회에 대해서 종교의 본연의 역할을 말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교회의 고유한 활동에 최선을 다해야지 정치에 관여하여 왜 사회를 혼란에 빠지게 하느냐고 핀잔 섞인 말을 하기도 한다. 이들은 '정교분리'라는 말을 하고 있다.

'정교분리'의 뜻은 사전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다. "정치와 종교, 국가와 교회 또는 사원의 분리의 원칙을 말하는 것인데 국가가 국민의 세속적(世俗的)ㆍ현세적 생활에만 관여할 일이지 국민의 신앙적ㆍ내면적 생활에는 간섭해서는 안 된다. 즉 국가는 국민의 종교 활동을 행하든가 특정의 종교단체를 지지해서는 안 되며 종교단체도 정치권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정교분리를 꺼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권력을 옹호하는 세력이다. 그들은 종교가 잘못을 지적하면서 수정하라는 비판과 권고를 잘하라는 충고로 듣지 못하고 왜곡하여 이해한다. 마치 자신들을 공격하여 끌어내리려는 것으로 판단하고 종교가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위해 기도해야지 왜 정치에 개입하면서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소비하느냐고 화를 낸다. 이 같은 행동들은 열등감의 발로이다. 열등감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충정어린 조언도 자신을 적대시하고 위험에 빠지게 하는 것으로 듣고 그 어떤 조언이나 충고의 참의미를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정교의 분리라는 말이 대두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면서 사회를 혼란시키고 억울한 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역사적으로 종교가 정치권력과 결탁하거나 대항하여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일이 많았다. 불교가 그랬고 기독교 그리고 유교가 그랬다. 또한 정치권력도 종교를 다양하게 이용한 사례가 많다.

종교는 정치 권력위에 굴림하여 권력을 좌지우지 하거나 반대로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자신만의 잇속을 챙기는 의미 없는 집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두 경우 모두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종교가 정치 위에 군림하는 일은 없다. 대부분 잘못된 정치를 일삼는 권력과 친밀히 결탁하고 권력의 정당성을 인정해주고 그 대가로 호의 호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런 경우에 정교의 분리를 이야기하고 잘못된 종교의 행태를 고치도록 해야 한다.

종교는 아무리 현실 정치 세력들이 잘못을 저지른다고 하여 자신들이 직접 나서서 정치를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종교가 직접 정치에 개입하여 성공한 경우는 찾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가끔 국회의원 선거철만 되면 명망 있는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기독당'의 이름으로 후보를 내서 기독교의 권위를 추락시켜 왔다.

종교가 정치권력을 향해서 해야 할 일은 오직 예언자적인 역할이다. 종교가 자신들이 속해있는 공동체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정의롭게 해결하게끔 정치사회 지도층에게 따끔하게 정의로운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다. 정치권력이 부정을 저지르고 국민을 억압하며 폭정을 서슴지 않을 때 분연히 일어서서 그렇게 하지 말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고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종교 본연의 임무이다.

세상의 정치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종교가 자신들의 예배 대상만을 위해서 하는 신앙 행위들은 의미가 없다. 참된 종교는 세상 공동체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언제나 일하면서 예배하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정교분리를 말하면서 세상정치가 어떻게 되는지 상관없이 교회가 무관심하고 모른척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종교의 직무유기이지 정교분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교회는 어떤 정치권력이던 간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 철저하게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관철하도록 용기를 내어 고치라고 정의를 외쳐야 한다.

요즘 변호인이라는 영화가 화재가 되고 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변호사가 된 사람이 안보이던 문제, 많은 세상의 이면을 피부로 경험한 후에 삶을 바꾸는 내용이다. 그 영화의 주인공은 아주 평범하게 돈을 잘 버는 그야말로 잘나가는 변호사였다. 정치라는 말은 그에게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치권력이 한 개인을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탄압하는 것을 알고 나서 그는 정치적인 사람이 되었다. 권력을 잘못 휘두르는 국가 권력을 대항하여 인권을 외치고 정의를 부르짖었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종교의 역할을 분명히 깨달을 수가 있다. 종교가 그 변호인처럼 존재해야 할 것이다.

성서의 수많은 예언자들은 정치권력이 타락하고 폭정을 일삼을 때 용기를 내어 사랑과 정의의 마음으로 잘못을 지적했다. 예언자 아모스는 정의가 하수같이, 강같이 흐르게 해야 한다고 외치고, 나단 선지자는 다윗왕의 파렴치한 행동을 묵과 할 수 없어서 두렵고 떨리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다윗에게 하나님의 정의를 선포했다. 세례요한도 그렇게 했다. 당시의 권력자가 부도덕하게 행동하였을 때 그 잘못을 지적하고 바르게 살 것을 외쳤다. 세상의 정치가 잘할 때는 맘껏 박수를 쳐주고 그렇지 못하고 부도덕하고 부정의 하여 사람들을 괴롭히고 억울하게 만들 때는 일침을 놔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이 교회의 정체성을 소금과 빛이라고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다. 소금과 빛처럼 세상의 부패를 막고 어두움을 물리치도록 힘써야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기독교는 언제나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여든 야든, 보수든 진보든, 정치세력이 국가를 잘못 이끌고 국민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만들 때 용기를 내어 그들이 잘못을 고치고 선정을 하도록 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 이 책임과 의무를 수행하는데 정교분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임상필 교수 / 서울장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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