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기독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호야의 주일

제14회 기독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호야의 주일

[ 제14회 기독신춘문예 ] 동화-호야의 주일

김정애 webmaster@pckworld.com
2013년 01월 04일(금) 15:32
주일 새벽 호야는 할아버지를 따라 비탈진 언덕을 오르고 있습니다. 아직 주위는 어두어둑합니다. 할아버지께서는 힘드신지 숨을 몰아 내쉬며 멈춰스셨습니다.
 
"호야,좀 쉬었다 가자"
 
"네,할아버지"
 
호야는 할아버지와 함께 언덕 위 바위에 앉았습니다. 멀리 동쪽 하늘이 불그스럼해 지더니 훤하게 밝아옵니다.
 
"할아버지, 동쪽 하늘이 빨개지고 있어요"
 
"응, 동이 트고 있구나!"
 
그때 산 위로 눈부시게 해님이 고개를 쑥 내밀고 있었습니다.
 
"아! 해님이구나! 할아버지, 해님이 예요"
 
"그래, 이제 날이 밝았으니 빨리 가자. 농장에서 모두가 기다리겠다."
 
언덕을 내려가 큰 길을 건너면 할아버지께서 일하는 농장이 있습니다. 그 곳에는 사슴, 강아지, 토끼, 닭들이 살고 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할아버지를 졸라 농장에 따라 가게 되었습니다.
 
농장에 가까이 가니 여기저기서 강아지들이 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할아버지 발자국 소리를 듣고 아침 인사를 하나 봅니다. 할아버지가 농장에 들어서시며 "애들아, 잘 잤느냐?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되자."
 
할아버지 소리가 농장 안에 울려 퍼지자 여기저기서 '프드덕,푸드득,멍멍, 꼬꼬' 농장 안이 떠나갈듯 야단입니다. 할아버지는 동물 가족들에게 줄 아침밥을 준비하셨습니다.
 
"할아버지, 저도 같이 밥 주면 안 돼요?"
 
"응, 같이 주자꾸나."
 
호야는 사슴과 토끼에게 줄 싱싱한 풀을 뜯었습니다. 사슴장에는 엄마사슴 아기사슴 3마리 모두 5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농장 이곳저곳을 덩치가 큰 개 9마리가 지키고 있었고 강아지집에는 어미개와 강아지 6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토끼장에는 하얗고 까만 토끼가 셀 수 없이 많고 닭장에는 닭들이 꼬꼬 배고프다며 아침밥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호야는 막 뜯어 온 풀을 사슴들에게 주었습니다. 오물오물 맛있게 먹는 아기사슴의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릅니다. 호야를 쳐다보는 눈이 너무 맑고 깊어 호야의 마음까지도 뚫어 보는 것 같습니다. 호야는 이 아기 사슴에게 금방 마음을 뺏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강아지 집에서 새끼들이 어미 젖을 꼴깍꼴깍 먹는 모습도 귀여워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강아지들이 너무나 행복해 보입니다. 부러운 생각이 듭니다. 호야는 희미해진 엄마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엄마"
 
가만히 불러봅니다. 엄마가 너무 그립습니다.
 
"에험"
 
할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들립니다. 할아버지는 아침밥을 다 주시고 이곳에 청소를 하러 오시나 봅니다. 농장 안은 동물 가족들이 떼를 지어 자유롭게 풀을 뜯어 먹고 뛰어 다니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호야는 가장 마음에 들었던 아기 사슴과 함께 놀았습니다.
 
"휘익- 휘익-, 짝짝짝"
 
할아버지가 휘바람을 불고 손뼉을 치십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놀던 동물 가족들이 할아버지를 향해 오더니 각자 자기들의 우리 속으로 들어갑니다.
 
"잘 있어. 다음 주일에 또 올게"
 
해질 무렵이 되어 할아버지 하루 일이 모두 끝났습니다. 주일이면 이 곳에 와 할아버지 일도 돕고 동물들과 놀아야겠다고 말씀드리니 허락하셔서 호야는 너무 기쁩니다.
 
호야네는 할아버지가 남의 농장 관리를 해주시며 할머니와 함께 3식구가 살아갑니다. 호야가 네 살 때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돈 벌러 집을 나가신 후 소식이 없습니다. 작년 초등학교 입학식 때도 할아버지 손을 잡고 학교에 갔고, 운동회 때도 할아버지가 오셔서 응원 해주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기관지 천식이 심하셔서 밖에 나오지 못합니다. 작년부터 할머니가 힘들어 하셔서 호야 스스로 방을 매일매일 청소하고 마당도 깨끗이 쓸었습니다. 이제 2학년이 되었으니 호야는 할머니를 도와드리는 큰 일꾼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학교 가는 길이 더욱 즐겁습니다. 즐거운생활 시간에 음악을 하기 때문입니다. 11학년 때는 실로폰으로 '학교종' '봄노래'를 배워서 쳤습니다 2학년에 올라와 교과서에 있는 노래를 배우면서 실로폰 채로 건반을 두드리면 데그르르 통통, 튀며 아름다운 곡조가 흘러나와 호야는 너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선생님도 깜짝 놀라며 말씀하십니다.
 
"호야, 너는 천재야, 훌륭한 연주 가가 될꺼야."
 
하시며 칭찬하십니다. 노래는 그다지 잘 부르는 편이 아니지만 실로폰을 잘 칠 수 있어 음악 시간이 너무너무 좋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데 냇가 저 편에서 집배원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오시며 물으셨습니다.
 
"너는 저 건너 외딴 집에 사는 아 이가 아니냐?"
 
집배원 아저씨는 어떻게 호야를 아는 지 반색을 하며 자전거에서 내리셨습니다.
 
"네, 아저씨"
 
"너의 집으로 가는 소포란다"
 
"누가 보내 주는 거예요?" "응, 박유식씨가 누구니?"
 
"아, 저의 아빠예요"
 
호야는 뛸듯이 기뻤습니다.
 
"아저씨, 이 소포 제가 가져가면 안돼요?"
 
아저씨께서는 호야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호야네 집을 향해 달렸습니다. 길가에 가로수들이 반짝반짝 손을 흔들었습니다.
 
'호야는 좋겠네. 아빠가 좋은 선물 주었나 봐.'
 
나뭇잎들이 속삭여 주었습니다.
 
"할머니, 아빠한테서 소포 왔어요."
 
호야는 삐걱거리는 나무대문을 열어 제치며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뭐,뭐라고. 아이고 감사합니다."
 
할머니는 숨을 몰아 쉬고 마루에 걸터 앉으시며 집배원 아저씨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집배원 아저씨께서는 하얀 포장지에 싸인 상자를 할머니께 드리고 도장을 받으신 후에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가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상자를 안고 '감사합니다'를 계속하셨습니다. 포장 겉면에 할아버지 성함과 '박유식'이라는 아빠의 이름이 또렷하게 써 있습니다. 조심스레 상자 뚜껑을 여니 노란티셔츠와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습니다. 돈 많이 벌어 돌아갈테니 그때까지 할아버지랑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있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반가운 편지였지만 할머니는 한숨을 쉬시며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계셨습니다. 호야도 아빠가 보내 주신 노란티셔츠는 펴보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가 멍하니 앉아 있습니다.
 
"아빠,나빠. 돈 많이 안 벌어도 좋 으니 빨리 돌아오셔서 할아버지 할머니 호야와 함께 살아요."
 
호야는 되뇌이며 울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얼마나 아빠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계신지 호야는 압니다. 그래서 더욱 눈물이 납니다. 그때 할아버지가 농장에서 돌아오셔서 편지를 보고서 호야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무릎에 앉히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빠가 잘 살고 있다고 하니 다행이구나. 할아버지 할머니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고 있으면 아빠가 빨 리 올꺼야."
 
"네, 할아버지"
 
호야는 흐느끼며 대답했습니다.
 
"그래, 내 새끼, 이 옷 입어보렴."
 
호야는 할아버지가 입혀 주시는 옷을 뿌리치고 뛰어나왔습니다. 매일 아빠가 오시기만을 기다리던 호야는 아빠가 원망스럽기만 하였습니다.
 
그날 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소식 없던 아들이 잘 있다는 소식에는 마음이 놓였지만 여든이 넘은 나이로 손주를 어떻게 길러야 할까 하는 걱정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할머니 병이 더 깊어지셨습니다. 아침 밥도 할아버지가 지어 놓고 농장에 가셨습니다. 호야가 일어나 보니 머리 맡에 아빠가 보내 주신 티셔츠와 할아버지의 쪽지 편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호야, 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신데 아침 차려 놓았으니 먹고 2시간만 공부하고 오너라. 아빠가 사 주신 옷 입고 가거라.'
 
할아버지 편지를 읽은 호야는 그 날 결석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많이 아프신 할머니를 혼자 두고 학교에 갈 수 가 없었고 아빠가 사주신 티셔츠도 입고 가기 싫었습니다. 할머니 밥도 떠 넣어 드리고 다리도 주물러 드리고 물도 떠다 드리고 시중을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호야 손을 만지작거리시며 웃음을 짓곤 하셨습니다.
 
할머니가 잠든 사이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마당 한 구석에 봉숭아꽃이 활짝 피어 웃고 있습니다. 호야의 마음을 모르나 봅니다. 작년 이맘 때 할머니는 이 봉숭아꽃을 따서 물을 들였습니다. 호야는 봉숭아 물을 들이고 학교에 갔는데 민수가 여자라고 놀리던 생각이 납니다.
 
'올해는 내가 할머니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여 드려야지. 봉숭아야, 할머니 나으실 때까지 활짝 피어 있으렴.'
 
해가 뉘엿뉘엿 서쪽 하늘을 빨갛게 물들일 무렵이 되어서야 할아버지는 할머니 드실 죽을 사가지고 오셨습니다.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셨습니다.
 
결석 3일째 되던 날, 냇가 건너 편에 사는 민수가 선생님을 모시고 호야네 집에 왔습니다. 언젠가 할아버지가 학교에 오셔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후로 선생님께서는 학용품도 주고 조그만 일에도 칭찬을 많이 해 주시곤 했습니다. 오늘도 라면과 김을 한 박스 씩 사오셨습니다. 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신 것을 보시고 안타까워 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호야, 할머니께 호야의 악기 연주를 들려 드리면 어떨가? 할머니도 기운 이 나시지 않을까?"
 
그러나 호야의 집에는 아무런 악기도 없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로 음악시간에 실로폰 연주를 뛰어나게 잘 하는 것을 알고 선생님은 더욱 놀라셨습니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나도 학교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주일에도 농장에 가지 못합니다. 학교 생각도 나고 아기 사슴도 보고 싶고 젖 먹던 강아지들의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할머니 병이 더욱 심해 지셔서 호야는 두럽고 슬픕니다. 혼자서 할머니를 지켜 보고 있기가 너무 힘듭니다. 오늘은 할아버지가 다른 날보다 일찍 오셔서 마음이 놓입니다. 마당에 나와 보니 봉숭아 꽃이 시들어 가고 있습니다. 호야가 쪼그리고 앉아 떨어진 꽃잎을 줍고 있는데 대문이 삐걱하고 열리며 선생님이 또 오셨습니다.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뛰어 나오시며 인사를 하셨습니다. 방으로 들어오신 선생님께 할아버지는 한숨을 쉬며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호야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네요. 내 나이 여든 다섯인 데 농장 다니는 것도 힘들고 할머니는 아주 몸져 누웠으니 호야 때문에 어찌 눈을 감겠습니까? 학교도 보내 야 할텐데 선생님 죄송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선 일을 도와 줄 수 있는 사회복지사나 봉사자를 알아보고 호야는 제가 데리고 가서라도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도와 드릴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 말씀이 끝나자 할아버지 얼굴에는 근심이 걷히면서 선생님 손을 잡으며 어찌할 줄을 모르십니다.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위로가 됩니다. 만약의 경우 우리 호야를 잘 부탁합니다. 염치 없는 일이지만……"
 
"그런 말씀은 마시고 오래오래 건강 하게 사셔야죠.호야를 생각해서라도요"
 
선생님께서는 당장이라도 데리고 가면 어떠냐고 하시면서 간단하게 짐을 챙겨달라고 하였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며칠 기다렸다 보낸다고 하시면서 허리를 굽실거리셨습니다.
 
할아버지와 선생님이 나누는 이야기가 방문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호야의 두 눈에는 눈물이 하염 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호야, 선생님이 호야가 좋아 하는 것을 가지고 왔는데."
 
선생님이 나오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은 까만 가방에서 빨간 종이 상자를 꺼내셨습니다. 그 속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하모니카가 들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하모니카 계명 위치와 부는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호야는 실로폰으로 잘 치던 곡이라서 금방 하모니카로 쉽게 불 수 있었습니다.
 
"역시 호야는 천재야, 훌륭한 연주가 가 될꺼야. 너무나 놀라운데."
 
선생님은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말씀하셨습니다. 실로폰보다 훨씬 아름다운 소리에 호야는 빠져들었습니다.
 
"호야, 할머니께 이 아름다운 하모니카 연주를 해드리면 빨리 나으시겠다. 호야는 주일 날 뭐하니?"
 
"할아버지 따라 농장에 다녔는데 요즈음은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못가요."
 
"선생님은 주일에 교회에 가는데 어 려운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하면 들어 주신단다."
 
"정말요? 그러면 저도 기도 할래요."
 
"그래,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해보렴."
 
호야는 그래서 선생님이 늘 기쁜 얼굴로 지내시고 마음이 착하시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밤이 깊었습니다. 할아버지도 피곤하신지 할머니 옆에서 깊은 잠에 빠지셨습니다.
 
달님이 호야 방 깊숙이 비쳐 줍니다. 호야는 선생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처음으로 무릎을 끓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소원을 꼭 들어 주실 것 같아서입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은 모두 믿어졌으니까요. 빨리 할머니가 나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할아버지 할머니 곁을 떠나 선생님과 함께 사는 일이 없을 테니까요. 호야는 자기가 좋아하는 선생님이지만 함께 산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하나님, 할머니 병을 고쳐 주세요"
 
신음하듯 연거푸 되뇌며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창 밖의 귀뚜라미도 숨을 죽이고 달님도 가만히 호야의 방에 서 나와 담쪽으로 기울어 가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다녀가신 후 봉사하는 아줌마가 오셔서 도와주시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호야는 툇마루에 앉아 열심히 하모니카를 불고 있습니다. 퇴원하시면 들려드리려고 열심히 연습을 합니다.
 
벌써 할머니가 입원한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할아버지가 병원에 갔다 오시는 길에 호야가 좋아하는 붕어빵을 사 가지고 오셨습니다. 주름진 얼굴에 웃음이 가득 하십니다. 호야는 분명 할아버지가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웃으시던 모습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좋은 일이 있으세요?"
 
"그래, 할머니가 월요일에 퇴원한단다."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 주셨네요."
 
호야는 좋아서 깡충깡충 뛰었습니다. 호야는 밤늦게까지 하모니카를 불었습니다. 월요일에 할머니가 오시면 들려드릴 하모니카 연주를 생각하면 신이 납니다.왼딴 집 호야의 하모니카 소리는 가을 바람을 타고 아름답게 울려 퍼져나갔습니다.
 
오늘은 학교에 가지 않는 토요일입니다. 호야는 학교를 오가며 보았던 교회에 갔습니다. 앞문에는 '추수 감사절 발표회'라는 현수막이 커다랗게 붙어 있습니다. 앞문을 들어서니 노오란 국화꽃이 가득 피어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어디선가 바이올린 소리가 조용히 흘러 나오고 있었습니다. 가만가만 소리 나는 쪽으로 갔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니 지하실 첫째 방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유리창으로 살짝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그 곳에 호야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민수도 아름이도 있었습니다. 추수감사절 발표회 준비를 하기 위해 오늘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연습이 끝났나 봅니다.아이들이 문을 열고 나오고 선생님께서도 뒤따라 나오셨습니다.
 
"선생님!"
 
쭈빗쭈빗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호야를 왈칵 끌어 안으셨습니다.
 
"호야가 왔구나! 정말 잘 왔어"
 
"선생님이 왜 여기 계세요? 이 교회 다니세요?"
 
"그래, 주일에는 교회 친구들과 함께 찬송가도 부르고 예배도 드리고 성경 공부도 한단다. 호야도 내일 올 수 있으면 좋겠는데."
 
선생님은 한참을 호야 등을 토닥토닥 하시더니 빨간 리본이 달린 비닐 봉지를 주셨습니다. 그 속에는 초코렛과 과자가 들어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오시면 같이 먹으려고 침만 한번 꼴깍 삼키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주일 날 아침입니다.
 
"오늘은 호야도 농장에 갈까?"
 
"할아버지, 학교 가는 길 언덕에 교회 있잖아요. 그 교회에 먼저 갔다가 농장에 갈께요. 혼자 갈 수 있어요"
 
"교회라니?"
 
"지난 번에 그 교회에 갔는데 우리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시면서 저를 보고 얼마나 반가워하셨는지 몰라요. 우리 반 친구도 있어요. 선생님 이 초콜렛도 주시고 교회 친구들이 얼마나 친절한지 몰라요."
 
"그랬냐?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었어?"
 
"할아버지도 같이 가셔요."
 
"할아버지는 농장에 가봐야 하지 않니? 할머니 다 나으시면 할아버지도 같이 한 번 가 보자. 그럼 교회 끝 나면 농장으로 오너라."
 
할아버지는 바람이 쌀쌀하다고 하시며 할머니가 작년에 떠 주신 노란 목도리를 목에 둘러 주셨습니다. 호야는 할아버지가 교회에 못 가게 할까봐 선생님께 아무 말씀도 못 드렸는데 허락해 주셔서 띌듯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편찮으신 후 보고 싶은 동물 가족을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농장에 가니 너무 좋습니다.
 
호야는 신이 나서 한 걸음에 달려 교회에 갔습니다. 이제 두 번째 교회에 오지만 교회에 다니게 되어 기쁩니다. 할머니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 했더니 병이 나아 내일은 퇴원을 하시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오늘은 아빠가 빨리 돌아오시게 해 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벌써 교회에는 친구들이 찬송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호야는 살금살금 들어가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빠를 빨리 돌아오게 하시리라고 호야는 믿고 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친구들이 호야를 둘러싸며 모여들었습니다. 이렇게 호야를 반기며 좋아하니 너무나 좋습니다. 학교에서는 외톨이 였는데 이렇게 교회가 좋은 곳인 줄은 몰랐습니다. 민수와 아름이도 학교에서 보다 더 친절하여 호야는 어리둥절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오라고 손짓을 하셨습니다. 호야가 달려가니 잘 왔다고 하시며 안아주셨습니다. 엄마 품 속처럼 포근하였습니다.
 
"호야, 추수감사절 발표회 때 네가 하모니커 연주를 하면 멋진 발표회가 될텐테. 할 수 있겠지?"
 
"네, 선생님, 잘 할 수 있어요. 지금 농장에 가서 동물 가족들에게도 들려 줄꺼예요."
 
호야는 주머니에서 하모니카를 꺼내보이며 씩씩하게 대답하였습니다. 교회를 나오며 호야는 이런 기분을 처음 느꼈습니다. 농장으로 가는 길에 피어 있는 들꽃들의 미소가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농장 입구에 들어서니 호야 발자국 소리에 이곳 저곳에서 인사하느라 야단들입니다. 제일 먼저 젖을 먹던 강아지들이 얼마나 컸는지 궁금하여 강아지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강아지들이 많이 자라 서로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꼬리를 흔들며 달려들어 안아 주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미개가 쫓아와 으르릉 거립니다. 호야는 젖 먹이던 어미개를 보고 울었던 그 때가 생각나며 다시 엄마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엄마, 하늘 나라에서 잘 계시지요?"
 
"아빠, 빨리 돌아오셔서 함께 살아요. 네?"
 
호야는 하늘을 보고 크게 외쳤습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호야의 외침이 농장 안을 돌아 하늘 높이 울려 퍼졌습니다. 사슴장으로 가니 아기사슴이 여전히 호수 같은 맑은 눈으로 호야를 바라보고 입을 오물거리며 반겨줍니다.
 
할아버지는 사육장 청소를 하시나 봅니다. 이곳저곳에서 동물 가족들이 떼를 지어 풀을 뜯어 먹기도 합니다.
 
햇볕이 농장을 따뜻하게 비추었습니다. 호야는 높이 쌓인 짚더미에 기대 앉았습니다. 할머니가 떠 주신 목도리에서 할머니 냄새가 나서 너무 좋습니다. 주머니에서 하모니카를 꺼내서 불기 시작하였습니다.
 
'붕붕붕붕…….'
 
호야가 한 번이라도 불렀던 노래, 들었던 노래가 끝없이 흘러 나왔습니다. 동물 가족도 멍멍멍 꼬꼬꼬 흥흥흥, 하고 함께 노래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하였습니다.
 
농장 저 끝에서 뭉게 구름을 타고 노란셔츠를 입은 호야가 아빠 엄마 손을 잡고 함박 웃음을 지으며 오고 있습니다. 스르르 눈을 감고 더 신나게 하모니카를 불었습니다. 아름답고 감미로운 하모니카 소리는 농장를 넘어 마을 멀리멀리 울려 퍼져나갔습니다.
 
"엄마, 아빠, 추수 감사절에 하모니카를 연주하는데 꼭 오세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오실꺼예요."
 
호야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중얼거렸습니다.

김정애



2013년 신춘문예 동화당선작 심사평
 
"동화는 동심으로 노래하는 문학… 동화의 속성이나 밀도면에서 작가 역량 돋보여"
 
동화는 어린이와 동화(同化)되어 동심으로 노래하는 문학이다. 어른의 입장에서 내려다보는 자세가 아닌, 어린이의 생활을 그들의 언어와 감각으로 담아 생명력 있는 감동을 안겨주어야 한다. 이러한 대원칙 하에서 창작에 따르는 제약을 감수하며 해마다 '기독공보'를 통해 신선한 울림이나 향기 넘치는 작품들이 빛을 발하게 됨에 박수를 보낸다.
 
올해도 큰 힘을 가지고 놀라움의 세계를 펼친 동화들이 여러 편 눈길을 끌었다. '가슴에 별이 뜨면' '아빠를 만나다' '양치기 소년' '웅이가 웅이를 만났대' '나팔꽃처럼' '가을 운동회'들이다. 두어군데 다듬으면 당선작으로도 손색이 없을만큼 돋보이는 작품들이었다. 이 분들께는 동화문학의 저변확대를 위해 계속 정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최종까지 남아 우열을 겨룬 작품은 '망태할아버지' '패밀리 레스토랑에 간 방아깨비' '호야의 주일'이다. '망태할아버지'는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엄마가 등장시킨 가상인물인데, 아이가 망태할아버지라고 생각했던 그 할아버지가 나중에 산타할아버지로 바뀐다. 반대 개념을 가진 망태할아버지와 산타할아버지를 대비시킨 착상이 반짝였고, 깔끔한 문장의 예쁜 작품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에 간 방아깨비'는 교회학교에 잘 다니는 경호가 오랫만에 나타난 방하에게 선생님의 사랑을 빼앗겼다고 믿어 고민과 갈등으로 방황하다가 오해가 풀려 선생님을 좋아하고 방하와도 친하게 되는데 톡톡 튀는 아이들의 숨결이 그대로 전해온다.
 
'호야의 주일'에서 호야는 결손가족 어린이다. 팔순의 할아버지와 병든 할머니 품에서 자라며 학교 담임선생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으로 위로를 받는다. 그 선생님이 교회학교에서도 선생님이란걸 알고 호야는 기꺼이 교회에 다니게 된다는 밝고 따뜻한 줄거리다. 심사숙고한 끝에 '망태할아버지'는 기독정신의 부족이 아쉬움으로 남아 먼저 내려놓았다. '패밀리 레스토랑에 간 방아깨비'는 구성에서 보인 약간의 허술함이 옥의 티가 되어 가작으로, 동화의 속성을 살려 밀도있게 그려 낸 '호야의 주일'을 당선작으로 올린다.

심사위원 김영자



제14회 신춘문예 동화 당선자 소감
 
▶ 김정애

구리시 인창성당 출석
1946년 12월 8일 출생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초등학교 교사 퇴임

"아이들의 얼어 붙은 마음에 꽃이 피길 소망하며 열심히 걸어갈 것"
 
   
울창하고 거대한 산이 우뚝 서 있습니다. 그 사이로 해님이 둥실 떠올라 환하게 비치고 있습니다. 아직 아무 것도 준비 되지 않았는데 저 높은 산을 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앞섭니다. 알지 못하는 그 세계를 한 발 한 발 열심히 걸어가렵니다.
 
지난 교직 생활 40여 년 동안 많은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불우한 가운데서도 꿈을 버리지 않고 순수한 마음을 간직한 채 예쁘게 자라는 아이들과 함께 하며 보람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들이 내 가슴 깊이 자리하고 있어 세월이 이렇게 흘러도 그 때를 생각하며 행복에 젖기도 합니다.
 
요즈음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마음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교육이 실종되었다고 하기도 하지만 자기 밖에 모르고 행동에 문제가 많은 아이들에게 학교 교육만으로 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습니다.
 
교실 속 아이들에게 내 가슴 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사랑하는 그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만나게 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 만나는 순간 무엇인가 느끼게 되겠지요. 꽁꽁 얼어 붙었던 마음이 녹아 내리고, 그 위에 파릇파릇 새싹이 돋고 꽃이 피는 따뜻한 마음으로 바뀌지 않을까요? 작은 꿈으로 시작한 일이 이제 큰 꿈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꿈을 꾸기에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 저에게 손을 잡아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도전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신 주님께 이 모든 영광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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