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냐 '평양'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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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계 ] 기독교역사학회 정기발표회에서 하나의 연합대학 설립과정 재조명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0년 02월 08일(월) 17:39

올해로 한일 강제병합 1백주년이다. 1911년 초기 선교사 사회에는 정치적 여건의 변화와 재정적 상황 등을 이유로 연합교육기관 설립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이를 위해 '교육사업을 위한 선교사공의회'가 결성됐다. 이렇게 논의가 시작된 '연합기독교대학'의 위치를 둘러싸고 선교사들의 확연한 입장차이가 존재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 한국기독교역사학회는 지난 6일 새문안교회에서 정기학술발표회를 가졌다. 이날 학회에는 아더 베커를 중심으로 연합기독교대학의 설립과정이 재조명됐다.

지난 6일 새문안교회(이수영목사 시무)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역사학회(회장:한규무) 정기학술발표회에는 북감리교회 교육선교를 이끌었던 아더 베커(Arthur L. Becker)를 중심으로 하나의 연합대학 설립과정을 재조명한 연구논문이 발표됐다.

안종철교수(인하대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이날 발제를 통해 "언더우드를 제외한 대부분의 북장로교 선교사들은 평양 설치안을 선호했고 감리교 선교사들은 대체로 서울을 선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1912년 선교사공의회 이사회 기록에 보면, 감리교 소속인 아더 베커 또한 기존의 활동지역이 평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한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나있다.

이는 과학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로 조선에 입국한 베커가 전문적인 신학훈련을 받은 선교사들과 분명한 입장 차이를 지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안 교수는 "베커는 사무엘 마펫(Samuel A. Moffett)이 주도하는 평양 선교부가 기독교인들을 선교하기 위해 과학수업이 줄거나 약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며 "베커의 이러한 입장은 교육 자체의 목적성을 강조한 언더우드의 생각과도 통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이어 안 교수는 "오늘날 기독교대학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뒤, "목회자가 되기 위한 예비학교의 성격이 강했던 숭실과 '기독교와 세속학문'이라는 관점에서 다양한 학문과 관련을 맺어야 한다는 입장을 지녔던 연희전문학교의 관계는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했다.

한편 이와관련 서정민교수(연세대)는 "미묘한 온도차일뿐, 기독교학교로서 연세와 숭실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양한 성격의 학교가 공존할 필요가 있다"며 "기독교 대학의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고 개인적인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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